[투고] ‘의사가 의사에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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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의사가 의사에게’1
  • 편집국
  • 승인 200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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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단 봉직 의사가 다른 봉직 의사들에게…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봉직의사가 같이 근무하는 동료 봉직 의사들에게 의료법 개정안 관련 장문의 글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보내왔다.

<한 말단 봉직 의사가 다른 봉직 의사들에게 -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우리의 이해와 병원협회의 이해는 같지 않습니다 designtimesp=4518> 라는 제목의 긴 글에서 이 의사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동료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펜을 들었다”면서 의사의 입장에서 진료를 보면서 느꼈던 고민을 기초로 이번 의료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차분한 논리로 입장을 밝혔다.

본지에서는 글 전문을 싣는다. 단, 필자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 익명으로 처리한다.
편집자



한 말단 봉직 의사가 다른 봉직 의사들에게…
-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우리의 이해와 병원협회의 이해는 같지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은 어떤 전환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전환기라고 말한 것은 이전의 시스템으로는 한국 의료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 의료 기사 할 것 없이 병원 직원 모두가 뼈 빠지게 일해도 병원 경영진은 늘 경영 수지를 들먹이며 더 많은 환자를 보며 더 많은 시간을 일하도록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병원 의사를 비롯해 모든 직원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환자들의 병원 만족도는 그리 높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환자들은 늘 병원 서비스의 질을 문제 삼고, 그러다보니 환자와 의료인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 탓을 해보기도 하지만, 의사가 환자 탓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임을 우리는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상시적으로 경험하면서 더 이상 한국 의료가 이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서는 병원 직원도, 환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그간 한국 의료는 나름대로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료에 대한 지출은 적은 데 반하여 평균 수명, 영아 사망률 등 보건의료 지표는 그런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각국의 GDP대비 보건의료 부문의 정부 지출 수준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적다는 의미겠지요. 정말 그랬습니다. 어디 지금까지 어느 정부에서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이루어진 적이 있나요.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나마 보건의료 지표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의료인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역량을 갖추고 있었고,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의료인들의 능력과 헌신에 기초해 있던 한국 의료의 ‘저비용 고효율’ 신화도 이제는 더 이상 이어가기가 힘들어진 듯합니다. 이러한 현실의 단면이 처음에 언급한 여러 상황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지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한국 의료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어정쩡한 한국식 ‘저비용 고효율’ 구조가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은 크게 보아 두 갈래 길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미국식 의료 시스템이요, 또 하나는 유럽식 의료 시스템입니다. 물론 유럽식 의료 시스템이 단일하지 않고, 미국식과 유럽식 사이에 수많은 ‘제3의 길’이 있지만, 최대한 단순화하여 보자면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시스템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미국식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자본을 민간 부문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매우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돈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의료접근권의 제약이라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평균 수명과 영아 사망률은 선진국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지요.

유럽식은 병원의 자본을 주로 사회적으로 조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하거나 공익재단이 기부하는 식이지요. 그 결과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누구나 거의 무상으로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환의 경우 대기 시간이 길고, 최첨단 의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디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나 영아 사망률 수준 등 보건의료 지표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요.

이와 같이 매우 다른 선택의 양 갈래 길에서 한국 의료는 어떤 선택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아니 선택의 여지는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우리는 한 방향의 선택만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간의 정부가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해 온 결과, 10여 년 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몇 가지 경향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미 어느 한 방향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한국의 병원 문화를 보면 몇 가지 경향을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병원의 대형화 경향입니다. 대형병원은 말할 것도 없이 중간급 규모의 병원도 요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병상 증축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미 한국의 급성기 병상은 과잉 공급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상은 규제 없이 더 만들어지고 있고, 신기하게도 그러한 병상들은 환자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신기한 게 아니지요. 그 이면에는 중소 규모 병원과 지방 병원의 어려움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종소 병원과 지방 병원의 무덤 위에 대형병원과 수도권 지역 병원의 병상이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경향이 환자들에게 이로울까요? 일반 국민들은 병원이건 기업인건 상점이건 무조건 큰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사들이 보기에도 그런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의료기관이 지역에 고르게 분포되고, 의료전달체계가 적절하게 갖추어지는 것이 환자를 위해서나 의료인을 위해서나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라고 배워오지 않았습니까?

둘째는 고가의 의료장비 구입 ‘러쉬’입니다. 그야말로 이를 ‘러쉬’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요즘 병원들을 보면 역시 너나할 것 없이 고가의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병원별 MRI 보유 비율, 병원별 PET 보유 비율 등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이 역시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고가의 의료 장비를 보유한 병원이 훌륭한 병원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물론 고가의 질 좋은 의료 장비가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좋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장비를 너나할 것 없이 들여 놓는다면 이는 낭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낭비는 단순한 낭비가 아닌 것이, 이 비용을 의료 인력에 투자했다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의과대학 다닐 당시 몇몇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더랬습니다. ‘명의는 결코 의료기기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의사가 의료기기에 의존하는 순간 기술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러한 교수님들의 말씀은 21세기에는 정말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셋째는 병원의 멀티플랙스화입니다. 90년대 초반 재별 병원들이 들어서면서 장례식장, 주차장으로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병원에 각종 아케이드를 만들어 상업 행위를 하게 되자, 이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따라하고 있는 경향입니다.

단지 현재 의료법상 의료법인이 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에 의료법인들만이 약간의 제약을 받고 있을 뿐, 학교법인, 종교법인 등은 병원을 심할 정도로 멀티플랙스화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일반 국민들은 편한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과연 그렇습니까? 이렇게 되면 병원이 환자를 진료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이러한 사업으로 쉽게 돈을 버는데 더 혈안이 될 것입니다.

환자한테 써야할 치료 재료와 의료 인력의 인건비 등을 아껴서 이런데 투자하는 병원에서 우리는 우리 일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상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는 한국 의료의 몇 가지 경향을 한 마디로 단정 지어 얘기하자면 ‘의료의 상업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형화, 기계 의존, 가외의 수익 사업 창출 등은 상업의 논리이지 의료의 논리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상업의 논리가 의료 영역에 깊숙이 파고 든 것은 정부가 이를 눈감고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돈도 투자하지 않고, 아무 일도 안하고 뒷짐진 채 있을 때, 이 빈자리를 메우려고 들어온 것은 재벌병원과 병원자본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이 이들의 입맛에 맞게 한국 의료를 재편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이미 한국 의료의 방향을 어느 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식 시장주의적 의료입니다.

정부 지출은 최소화한 채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의료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 돈 돌아가는 원리와 흐름에 의료의 원칙을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러한 의료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 작업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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