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검진제도 특집①] ‘요지경’ 학생구강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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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검진제도 특집①] ‘요지경’ 학생구강검진!
  • 이현정 기자
  • 승인 2007.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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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학교·학생 모두 울려…치과의사 공중보건 '낮은 인식'도 문제

 

학생 구강검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마다 검진 시즌이 되면, 검진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구강검진제도 문제의 해결이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며, 오히려 더 획기적으로 갖춰 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게 한다.

본지는 학생 구강검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집중조명하고 대안을 함께 찾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제1부 ‘요지경 학생구강검진’은 그 서막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일선의 사례들을 모아 종합했다. 정신없이 저마다 들쑥날쑥하게 진행되고 있는 검진 실상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본지는 앞으로도 구강검진제도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룰 계획이다.

편집자

서울 A치과의원.

열댓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장난을 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구강검진을 받으러 같이 온 학생들...

A치과 원장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해 달라"는 신신당부를 덧붙여 학교구강검진을 하겠노라 했지만 부탁은 말짱 도루묵이 됐다.

그저 시장판처럼 산만한 진료실 분위기에 난감해 하고 있는 A치과 원장.

경기도의 B치과의원.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학생구강검진을 해 온 B치과 원장은 올해 학교 측으로부터 뜬금없는 통보를 받았다. 올해 학생검진을 하려면 치과에서 구강검진통계를 내야 하니 25만원 상당의 통계 프로그램을 구입하라는 것.

내키지 않았지만, 이 원장은 동네 학부모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될까 싶어 울며 겨자먹기로 통계프로그램을 구입, 올해 구강검진에 나섰다.

매년 학생구강검진을 실시할 때면,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터져나온다.

앞에 이미 언급한 일부 사례에서도 보는 것처럼, 구강검진을 둘러싸고 반복해 연출되는 난감한 상황으로 인한 동네 치과의사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멍 뚫린 ‘검진제도’…‘골치 아픈' 치과의사

이렇듯 치과의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이로 인해 검진 기피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구강검진제도 자체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엉성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일선 치과의사들의 지적이다.

현행 학교보건법 상에 명시된 학생구강검진 대상은 초등학교 1, 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생. 나머지 학년의 검진 여부는 시·도 교육청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행히도 구강건강관리의 특수성을 인식한 각 교육청이 올해부터는 비록 초등학교로 제한되긴 하지만 전 학년에 걸쳐 구강검진을 실시키로 하는 매우 고무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고무적인 결정에도 불구, 현실에선 박수만 치고 있을 수 없는 노릇. 체계적으로 자리잡혀 있지 않은 검진제도는 치과의사들에게 큰 짐을 안겨주고 있다.

먼저, 치과의사들은 '학생들의 내원에 대한 지도·관리'가 학교 측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어려움으로 호소했다.

한동안 오지 않던 학생들이 어느 날은 한꺼번에 몰려 와 일반 환자들 상관없이 진료실을 시장판처럼 만드는 경우나 해당 학교 검진 기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니던 치과에 검진표를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의 경우 모두가 병원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또, 검진 기간 자체가 준수되지 않아 몇 달을 계속 검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C치과의원 원장은 “검진을 시작할 당시 1~2개월 정도의 기한을 두고 진행했는데, 실제로는 4~5개월 정도로 검진 기간이 늘어져,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로, 치과의사들이 지적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적이지 않은 검진비.

의무검진대상 학년의 구강 검진비는 올해 3,170원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학년의 구강검진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더구나 검진 대상이 아닌 학생들에 대한 검진비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책정할 수 있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실제 경기도의 구강검진비는 한 학급당 15,000원. 그나마 작년까지 1만원이었던 검진비가 올해 조금 올랐다.

학급당 인원이 약 40명이라고 가정할 때 1인당 검진비가 3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또한 광역시 가운데 광주지역의 경우는 1인당 약 500원 정도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다른 지역도 이것보다 낮은 액수이거나 그리 높지 않은 액수여서 '검진비 현실화'가 또 하나의 과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시치과의사회 한성규 치무이사는 “턱없이 낮게 책정된 검진비도 치과의사들이 학생구강검진을 기피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내원검진으로 진료실의 불편까지 감수하며 낮은 검진비를 받자면, 아무래도 일선에선 그 시간에 일반 환자 더 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나마 지역 중에서 서울은 올해 전체 학년 검진비를 3,170원으로 통일해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이 외에도 검진비가 제 때 입금되지 않는 사례 등 검진비와 관련한 치과의사들과 보건 교육 당국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검진과 관련한 복잡한 행정절차도 치과의사들이 난감함을 호소하고 있는 부분. 검진기관 선정 계약이 개별 계약형태로 바뀌면서 일선 치과의사들이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진 것이다.

경기도 D치과의원 원장은 “사업자등록증부터 의사면허증, 의료기관 개설신고서, 지방세 국세 납입 증명서, 검진계약서 등등 학교에서 제출하라는 서류가 너무 많았다”면서 “몇 번을 학교, 동사무소, 은행에 들락날락하고 나야 비로소 검진이 시작되더라”며 번거로운 행정절차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또한 행정절차를 밟기 위한 학교 측과의 접촉 과정에서 보여진 학교측의 고압적인 태도가 검진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제기한 이도 있다.

서울의 한 치과의사는 “학교측이 치과의료기관을 검진 하청업체쯤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보건교사 “치과의사 공중보건 인식 아쉬워”…학생 “다니던 치과에 못 가요”

그러나 학생구강검진에 불만의 언성을 높이는 것은 비단 치과의사들 뿐이 아니다.

학교 보건교사는 “교의 섭외가 어렵다”며 어려움을 토로했고, 학생들은 “기존에 다니던 치과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 또 검진을 하게 된다”며 검진의 비효율성과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먼저, 일선 학교에 재직 중인 보건교사들은 “치과 검진 의료기관의 검진 기피 현상으로 섭외가 너무 어렵다”고 털어놨다.

서울시보건교사회 최명옥 회장은 “진료하는 입장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선뜻 동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자라나는 차세대를 위한 건강투자라는 공익적 개념에 대한 치과의사들의 인식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명옥 회장은 학생들이 계획적이지 않고, 들쑥날쑥 병원을 방문하는 일정 등에 대해서는 “수업결손 없이 검진을 받으려다 보니, 시간대가 집중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현실이 있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또한 최 회장은 “현재 시작단계부터 개별계약 형태로 진행돼 학교·병원이 개별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면서 “학교, 병원 양 측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계약이 되도록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피해를 보게되는 것은 학생들. 현재 학생들은 검진기관인 치과에 찾아가 직접 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교의섭외가 어려워 두어개 치과에 학생들이 집중되다 보니 1명의 치과의사에 의해 다수의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검진을 받는 현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또한 기존에 다니고 있던 치과가 아닌 학교지정기관으로만 갈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은 검진과 진료가 효율적으로 연결되기 어려워 학생들이 형식적인 검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이처럼 의료기관-학교-학생 모두가 ‘요지경’ 속에 빠져버린 학생구강검진이 ‘학생들의 구강건강증진 및 구강질환 예방 도모’라는 본래 취지에 맞는 제도가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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