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조선시대 관청건물, 우정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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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조선시대 관청건물, 우정총국
  • 임종철
  • 승인 2007.07.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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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용도보다 갑신정변의 장소로 더 유명한 곳

경복궁 앞의 육조거리를 비롯 지금 서울의 도심부에는 조선시대의 관공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공서 건물은 거의 없다.

▲ 회화나무 옆 우정총국 건물
대부분 허물어져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들도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진 삼군부(三軍府) 청헌당이나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진 종친부(宗親府)처럼 제자리를 벗어나 있다.

그렇게 보면 조선시대 관공서 건물 중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우정총국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삼청동의 벽돌건물인 번사창 정도가 또 있을지... 하긴 우정총국도 이전에 전의감(典醫鑑)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에 회화나무 고목 하나와 한옥 한 채로 남은 우정총국 건물은 근대화된 우편제도를 실시할 때 이곳에 자리 잡았던 건물 중의 한 부분이다. 개화기 미국을 시찰하고 온 홍영식의 주도로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추진되어 1884년(고종 21년) 11월 18일 우표가 발행되면서 서울과 인천 간의 우편업무가 시작되었다. 다른 개화문물에 비해서도 근대우편제도는 상당히 빨리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내부는 체신박물관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정총국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다.

그해 12월 4일 밤 우정총국의 발족 축하 만찬 자리를 기회로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민영익 등은 일본을 등에 업고 친청세력을 살해하고 개화와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한다. 갑신정변이다. 정변은 실패하고 홍영식은 살해(사형되었다고도 한다)된다. 집안은 멸족되고 재동 그의 집은 몰수되어 서양식 의료기관 광혜원이 됐다. 

그리고 정변으로 인해 근대식 우정업무는 이후 11년간 중단되고 이때 발행된 5종 우표는 쓰이지 못했다. 우정총국 건물은 70년대 중반 새롭게 단장되었다.

▲ 체신공원으로 단장되어 있는 주변
역사의 소용돌이도 아득한 옛일이 되어버린 지금 우정국의 건물 중 단 하나가 남아있고 그 앞에는 여름이라 겨우 푸른빛을 되찾은 회화나무 한그루가 있다. 그 앞에는 엉뚱하게도 커다란 한옥건물로 지어진 화장실이 있다.(체신기념관보다 더 커보인다) 그래도 계속된 정비로 주변이 공원의 형태를 갖추게 되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은 다행인 듯 싶다. 체신기념관으로 쓰이는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 우편역사와 관련된 여러 복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정총국 바로 옆에는 조계사에 딸린 불교중앙박물관이 있다. 2000원의 입장료를 감안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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