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어바웃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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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어바웃 슈미트
  • 강재선
  • 승인 2004.09.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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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가 된 슈미트는 정년퇴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내를 잃는다. 게다가 죽은 아내와 친구의 오래전 불륜 사실을 접하게 되고, 하나뿐인 딸이 보잘 것 없는 놈과 결혼식을 올린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 크나큰 상실감과 배신감이 슈미트를 엄습한다. 돌파구를 찾는 심정으로 슈미트는 여행을 떠난다.

탄자니아 소년 엔두구에게 써 보내는 후원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리고 자잘한 일상사와 여행 중에 겪은 일들을 하소연하듯 쏟아낸다. 노신사의 유치한 언행과 여행 중의 사건들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슈미트의 고독과 분노와 회한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미국 중산층의 보편적인 삶과 가치관을 웅변하는 슈미트는 사회가 권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나름대로 가족에게도 충실했지만, 덧없이 흘러간 세월의 뒤켠으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바웃 슈미트’는 마음 둘 곳, 몸 둘 곳 없는 모든 노년의 초상에게 바치는 위로의 영화다.

-교원이셨던 아버지는 몇 해 전 정년퇴임을 하셨다. 퇴임과 더불어 아버지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겨울의 막바지를 앓고 나신 후 아버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서 가족들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 당신 인생의 행로 자체에 대해 회의 섞인 발언을 자주 하셨고, 때로는 가족들을 향한 서운함과 불신이 담긴, 가시 돋힌 말도 서슴지 않으셨다.

내가 항상 힘들고 지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나무등걸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못 박히신 채 노처녀의 문턱에 들어선 막내딸에게 온화한 미소만을 짓고 계실 것을, 내 편의대로 내 뒤치다꺼리나 해주실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걸까. 노년과 죽음에 관한 책을 탐독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일종의 성장통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 당신께서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지도, 잡지도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었다.

“이제 아버지도 혼자 사시는 법을 배우셔야죠” 라는 슈미트씨 딸의 발언처럼, 나의 무관심과 몰이해는 아버지를 많이 아프게 했으리라. 아버지가 아프게 성장하시는 동안, 나는 무얼 했던가. 학창시절 자취생활에 졸업 후 독립생활까지 10년. 내 멋대로 살며 아무런 성장 없이 살다가 문득 돌아보니, 부모님이 저만치 계시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하며 의아해 하던 때, 아버지와 나의 소통의 거리가 멀어졌던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이었나. 여전히 아버지는, 내가 돌아서 몇 발짝만 내딛으면 닿을 거리, 바로 거기에 계시고, 아직도 먼저 손을 내밀기가 뻘쭘한 나는 철없는 막내딸이고.

-슈미트씨는 혼자 되뇌인다. “내 삶이 이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켰던가.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주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아버지가 이런 혼잣말로 마음 상하시지 않길 바란다. 아버지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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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04-09-24 16:32:29
그의 연기는 언제나 참 좋더군요...

강선생의 글도 언제나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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