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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즐거운 네티즌이 되자.인터넷 건치신문 창간을 축하합니다.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9.26 00:00

1. 사실과 사건은 다르다.

"어떤 학과에서 여학생의 33%가 교수와 결혼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신문에 난 기사를 흔히 '사건'이라 부른다. 학생의 33%가 교수와 결혼했다는 것은 대단한‘사건’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학과에 여학생이 3명이 있었는데 한 명이 교수와 결혼한 것이다. 같은 33%라도 3명 중 1명과 10명 중 3명 그리고 100명 중 33명은‘사건’으로서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3명 중 1명이란‘사실’을 여학생의 33%란‘사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기자의 마음이다.

신문을 포함한 언론은 어떤 경우에도‘사실’보다‘사건’을 보도한다. 신문의‘사건’이란 어떤‘사실’에 대하여 기자가 해석을 덧붙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미국의 저명한 기자 월트 리프만(Walt Lippmann)은“스포츠 경기의 스코어보드만이 온전한 사실기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리프만은 현대 언론사회에서“우리는 실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만들어 놓은 가짜 환경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우리가 흔히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신문은‘일보(日報)’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 ‘일보’가 신문과 같은 말이지만 엄밀한 의미는‘하루치기 소식’을 뜻한다. 그렇기에 일보의 속성은 하루치기‘껀수(件數)’를 올리는 것이다. 기자가 한‘껀’을 만들면 독자는 그 ‘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어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일 새로운‘껀’을 접하면 지나간 오늘의 '껀'을 잊기 십상이다. 기자가 마음먹고 이러한 속성을 잘 이용하면 가짜 환경 조성 다시 말해 여론 조작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것이다.

2. 지금 우리사회는 족벌신문 독재이다.

과거 서방언론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고 한 야유는 우리에게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양심들이 험난한 희생을 무릅쓰고 끈질긴 민주화 투쟁을 하였기에 지금은 우리를 야유한 나라들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가졌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였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도 확보하였다.
그러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있듯이, 그토록 힘들게 얻어낸 언론 자유라는 과실을 마음껏 향유하는 자는 족벌신문의 사주들이 되어버렸다. 사주들은 군홧발 권력에 순종한 대가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였다. 민주화 시대로 무임승차한 이들은 정치권력보다 더 쓸모있는 경제권력을 장악하였고, 그런 권력을 대를 이어 세습하여 민주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족벌신문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제는 대통령이란 권력조차 족벌신문을 구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되자, 족벌신문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 무자비한 힘을 행사하고, 또 그 '무자비함'에 대하여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한 예로 지난 98년, 조선일보는 당시 대통령 자문정책위원장인 최장집 교수를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최교수의 제자인 이한우 조선일보 기자는 최장집 교수의 방대한 저서 중 극히 일부분의 구절을, 그마저 거두절미하고 나서 그것이 북한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한 '껀'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자 극우인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DJ정권에서 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최교수에게 마구 돌팔매 짓을 했다. 냄비 끊듯이 요란스럽게 멀쩡한 학자를 빨갱이로 몰아놓고 그가 사임하자 조선일보는 나 몰라라하며 발을 뺀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에게 한 '껀' 치고 빠지는 전형적이고 악의적인 수법이었다.

만약‘사건’의 전후를 가려‘사실’을 규명하여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이들은 오히려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들짐승 떼처럼 짖어 대니 우리는 그들을 ‘조폭신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3. 족벌신문은 군홧발을 대체한 폭력집단이다.

어떤 권력이든 그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원천적인 힘은 정보력이다. 정보가 민주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보를 독점한 자만이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진정한 토론이 부재하며 서로간의 자극과 발전이 없게 되고, 따라서 사회는 권위주의적인 전제사회가 되는 것이다.

민주화란 “누구든지 같이 참여한다”는 원칙 아래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그야말로 떠들썩한 백가쟁명의 사회이다. 그러나 권력화 된 신문은 민주사회를 기피하고 정보를 독점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는다. 과거 군홧발 독재는 폭력을 휘두르며 정보를 통제와 독점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였다. 지금 족벌신문은 정보를 교묘히 가공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사실’을 왜곡·조작·침소붕대·거두절미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거짓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가 성숙하여 사회에서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 것에 위협을 느낀 족벌신문은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 몰아 세우면서 시민단체 역할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있다.

군홧발의 폭력은 폭력으로 얼른 알아 볼 수 있지만 신문의 거짓말은 폭력으로 알아차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이제 언론의 자유는 언론으로부터 자유마저 수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언론으로부터 자유가 수반되지 못한 언론의 자유는 또 하나의 독재이며 죄악이다. 어찌보면 신문폭력은 군홧발 폭력보다 더 가공스러운 폭력이다.

족벌신문 기자들은 이러한 인식을 거부하고, 엘리트 기자란 특권의식을 누리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기자들의 타락에 대한 피해는 당장 이 사회가 입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기자 자신의 정신세계조차 허물어뜨리는 독소가 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4. 이제 족벌신문으로부터 자유이다.

족벌신문으로부터 자유는 정보의 민주화를 통해 거짓된 언어와 정보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군홧발 시절에는 신문이 왜곡하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지만 민주화 시대에서 신문의 조작은 사실로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신문에서 '카더라' 하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자 계율이 되는 것이다.‘카더라’에 대해 마땅히 대응할 정보가 없다면 개인이나 집단은 거대 신문 앞에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인터넷과 네티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족벌신문은 아직도 그들 마음대로 정보를 차단하고‘사실’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그들만 바보같이 모를 뿐 그들이 차단을 할 수 없는 정보의 공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은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이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자 12월 24일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은 다음과 같은 사설을 썼다. “22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은 김 당선자를 가리켜‘인기주의자(populist)', '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 정치인’이라고 표현하고 그의 경제정책을 ‘근거없는(unfounded)'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월가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이 신문의 이런 성격규정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김 당선자와 그의 정부 그리고 한국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의 주필이 미국 신문을 인용했으니 일반 독자는 이런 독설을 철석같이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 패러디를 선도하던 딴지일보가 가만있지 않았다. 영문학 전공한 네티즌이 월 스트리트 저널의 인터넷 유료 사이트를 샅샅이 뒤진 후 「김대충 성문지조때로영문법」이란 장문의 패러디를 내놓았다.

① 여기서 쓰인 ‘populist’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복잡한 사회학적 술어임에도‘인기만 추구하는 그러한 자’란 뜻으로 왜곡했다.
②‘근거없는(unfounded)’은 “그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는 틀림없이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고 번역해야할 것을 주어‘우려’를 빼먹고 “그의 경제정책은 틀림없이 ‘근거 없는’것으로 판명될 것이다”로 터무니없이 조작하였다.
③더구나 그 날 신문은 물론이고 한달 치 월 스트리트 저널을 뒤진 결과‘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이란 단어는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딴지일보는 조선일보의 왜곡, 조작, 날조를 풍자하면서 네티즌들에게 패러디가 보여주는 익살과 함께 정확한 사실정보를 선사하였다. 이것은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에서는 족벌신문의 거짓말이 더 이상 성역일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 것이다. 인터넷이야말로 족벌신문의 폭력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 것이다.

5. 이제 인터넷과 함께 즐겁게 투쟁할 때이다.

지난 3월 탄핵가결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거세게 일자, 유용태 당시 민주당 원내총무가 “국회의원 193명이 받은 표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 받은 표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네티즌들은 곧바로 중앙선관위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193명의 의원이 2000년 4·13 총선과 보궐선거에서 얻은 표를 하나씩 더한 결과 680만8468표로,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1201만2945표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누구라도 네티즌 앞에서 쓸데없거나 거짓말을 한다면 한방 크게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루트이다. 이제까지 보잘 것이 없이 보인 민초들은 정보를 차단 당한 채 보도 당하기만 하였으나, 인터넷 바다에서는 능동적으로 자신을 보도할 루트가 열린 것이다. 인터넷은 잘못된 질서와 권위와 낡은 고정 관념을 파괴할 수 있는 자유공간이 된 것이다. 집약된 정보를 네티즌 스스로 재가공하고 편집하여 엄숙함으로 위장된 정치문화를 익살과 풍자로 발가벗길 수 있으니, 이것은 인터넷의 커다란 미덕이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보를 독점했던 족벌신문의 노리개가 아니다. 인터넷이란 넓은 바다에서 네티즌들은 족벌신문과 “즐기며 싸우고, 싸우면서 즐기게”되었다.

우리 모두 즐거운 네티즌이 되자.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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