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보건복지/사회
[인터뷰] 파병철회 외치며 58일 단식한 김재복 수사"나는 죽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단식 시작했습니다"
편집국 | 승인 2004.09.30 00:00

   
"아주 건강합니다. 주름이 생긴게 문제인데, 주름제거 수술을 해야하나.(웃음) 맑은 미음으로 회복식을 시작했어요. 58일에 대한 회복식 프로그램은 없더라구요. 길어야 28일, 최대로 해도 40일 가량이라, 제가 어제 다 짰어요. 그래서 새로 58일짜리 단식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허허."

불과 하루 전에 58일의 단식을 끝낸 김재복 수사(마리아수도회 소속)는 '건강한 상태'라고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회복식 프로그램에서도 내년이 되어야 '보통식 100%'가 가능하다. 두달 가까이 단식한 이가 어찌 멀쩡하겠는가. 작아진 목소리가 쇠진할대로 쇠진해진 체력을 증명하고 있었으나, 그는 괜찮다고만 했다. "이런 검진이 아니라 얼굴 가득 생긴 기미와 주름살 치료를 위해 피부과에 가야하는데"라는 농담까지 하며 말이다.

58일 단식은 어쩌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기간이다. 그러한 고통을 각오하고서라도 김재복 수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라크 전쟁반대, 파병반대, 생명평화"다. 도대체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번 단식을 시작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다시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죽을려고 그랬죠. 지금도 변함은 없어요. 너무 포괄적이잖아요. 전쟁반대하고 파병반대하고 이러는게, 그게 문제가 너무 큰 것인데... 처음에는 본질적인 것으로 접근을 한거죠. 생명이라는게 뭐냐, 평화라는 게 뭐냐, 이런 것으로요. 누구나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냥 피상적으로만 느끼고 깨닫지, 몸뚱아리가 없잖아요. 이게 안타까워서 제 나름대로의 접근을 한겁니다. 앞으로 계속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할텐데, 이걸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쟁은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죠. '평화를 원한다면, 일을 해라'고나 할까요.

'내 생명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나는 죽어가겠다는 마음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마음으로 이라크 파병반대, 파병철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구요."

"내 생명이 중하면 다른 생명도 중요하다, 그 생각으로 죽어가겠다는 마음"

   
▲ 단식 38일 째인 김재복 수사
목숨을 건 장기간의 단식을 결정한 좀더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직접 경험한 이라크 전쟁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병반대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시점에서의 실천적 결단이기도 했다.

"8월 3일, 추가파병의 본대가 출국하고 나서는 일단 파병반대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저는 실망을 했고 개인적으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은 이후 국회에 대한 대응, 특히 국가보안법 사안 등 대응해야 할 현안이 많았고, 파병운동 중단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운동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럼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결정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 지점에서 종교적인 신분, 수사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했어요. 내가 생명에 대해, 평화에 대해 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면 이것 밖에 없다고 결정하고 단기간 단식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7월 26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8월 3일 마쳤을때, 그는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지막하게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하게, "나 한 사람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파병반대, 전쟁반대, 평화운동의 불씨는 꺼뜨리지 말고 계속 갖고 가야한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힘들었느냐고 물어도, 그는 "괜찮았다"고만 대답한다.

"글쎄요. 일정 속에서 보면 그냥 버티는 건데, 파병이 강행되어서 갑자기 다리가 꼬여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실천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죠. 평화순례를 떠나 계속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사람들을 계속 만났어요. 그땐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어요. 또 평화순례 18일 동안 비바람이 많이 부는 등 날씨변화가 심했고 사람들 만나는데 상황이나 조건이 잘 안맞을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이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괜찮았어요."

단식을 하면 평화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체 곳곳 저항은 고통을 불러내고, 그 고통은 분노를 만들어 낸다. 김재복 수사는 그러한 분노로부터 자유로웠을까.

"처음에는 '아니다' 했는데, 끊임없이 분노가 치솟는 거예요. 참회의 단식기도를 하는데, 참회가 안되는거죠. 사람들에 대한 분노, 내 자신에 대한 분노, 그 다음에 그 분노가 계속 이어졌고. 40일이 넘어서면서 분노가 누그러들었죠. 그게 착해진 것이 아니라, 분노를 정확히 보고 또 보고 하다보니 이제 볼 게 없잖아요. 그러자 비로소 용서가 들어가게 되었어요.

나를 죽였다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인 상대에게 오히려 생명을 선물로 주는 그런 과정의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용서를 통해 평화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내가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평화를 이야기하느냐는 말인데, 근본적인 얘기죠. 그런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몸이 힘들면 축 쳐지거나 쓰러지면 되잖아요. 한두끼 굶으면 굉장히 배고픈데, 오래 굶으면 그런 고통은 없거든요. 난 사실 한두끼 굶는 것도 못 참는 편이예요. 신경질나고 식은땀나고, 그 고통이 더 심한 것 같아요.(웃음)"

이라크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함께 단식을 했던 박기범 동화작가에게 그는 "앉아만 있지 말고 돌아다니자"며 평화순례를 제안했다. 사나흘의 간단한 준비를 하고 9월 3일 단식을 하고 있던 청와대 앞을 떠나 21일 다시 청와대 앞으로 돌아오는 단식평화순례를 했다. 이들은 18일 동안 울진, 실상사, 녹색대학 등을 돌아다니며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났다.

   
▲ 김재복 수사가 평화순례 중 만난 울진초등학교 학생들
울진에서는 '평화모임'이라는 단체와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하고, 시장통에서 공연도 했다. 김재복 수사는 특히 아이들에 대한 깊은 인상을 전했다. "아이들은 이미 생명이 무엇인지, 평화가 무엇인지 해답을 알고 있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눈빛들을 느끼고 배우고 다닌 18일이었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가정주부로 자기는 생명평화를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을 하더라며 그 실천이 아름답다고 전한다.

"이라크, 의료품이 없어 죽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이라크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이 마음에 남아,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면서까지 평화운동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것일까.

"1차 방문은 부시가 종전선언한 직후였는데, 종전이 아니었어요. 전쟁은 계속됐고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미국이 완전히 무기를 퍼다 붓듯 폭격하니 사람도 환경도 파괴되어가고 있었죠. 6월에서 8월까지 있었는데, 전기와 물조차 공급이 안되니까 사람들이 더워서 죽을려고 했죠. 먹을 것 없고, 다친 사람들 많고. 병원시설은 태부족이죠. 의료시설도 없고 약도 부족하니,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태반이었어요. 20만 이상이 사는 동네에 병원이 두 개 밖에 없어요. 그나마 병실도 서너개 밖에 없는 병원들이고. 그게 상상이나 됩니까. 우리만해도 나가면 다 병원인데..."

김재복 수사는 말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거 참... 그렇더라구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라크 상황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전쟁터의 참혹함을 몇마디 말로 묘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그는 몇번씩 말을 쉬다가도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민간폭격지역 등에서는 그냥 자다가 자기 자식은 죽고, 폭격맞은 아들 구하러 갔다가 아버지가 총(폭격)맞고 이랬어요. 동네 남자들 대부분은 몸에 파편이 돌아다닐 정도죠.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아동병원에는 치료는 안 되고 죽어가는 것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의료품이 없어서, 손을 댈 수가 없는 거예요. 멈추게를 못하니까, 피를 계속 흘리고 있어요. 몇차례 전쟁으로 선천적인 병을 가진 아이들도 많고. 아이들이 바짝 말라있어요. 의사도 병원도 포기한 채, 죽어가길 기다리고만 있는 거죠."

당시 그는 기금을 모아 가, 분유지원이나 병원시설 보수비, 식량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일시적인 지원일 뿐, 해법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한국군 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위해 갔는데, 그가 만난 이라크인 대부분은 반대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앞에서 벌어지는 무기한 단식에 청와대도 긴장하지 않았을까. 단식중단을 종용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부담이야 됐겠어요? 이미 추가파병까지 내보낼 것 다 내보냈는데. 부담이라면, 이제 단식을 하다 죽느냐 안 죽느냐 이 정도겠죠. 지율스님의 단식은 서로 밀고 땡길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이 경우는 다르잖아요. 이미 파병을 했고 이라크전쟁은 포괄적으로 너무 큰 사안이기도 하고, 정부는 갈 때까지 가야하는 거고.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왔는데,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만 두라는 말은 못하고 언제 끝나냐고 묻기만 하더군요. 몇몇 정당인들이 개인입장이라면서 단식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구요."

"전범,민중재판으로 전범에게 회개의 기회를, 민중은 전쟁 불복종선언을"

   
9.11 후 3년동안 세계는 참으로 놀랍도록 변했다. 특히 부시 미 대통령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악의 축'을 제거한다며 이라크 전쟁을 벌인지 2년 동안, 전 세계는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졌고 상상도 할 수 없던 잔혹한 방법인 참수형으로 민간인이 살해되는 일이 한번도 아닌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 온 세계를 테러에 몰아넣었다. 폭력은 재생산되고 증폭되며 점점 광포해지고 있다.

"해답은 없죠. 해답이 있다고 굳이 말하자면, 자기 자신 속의 마음의 폭력을 뿌리뽑는 방법 밖에 없어요. 그런 작업과 훈련, 그런 것을 많이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초대를 해야죠."

그는 근본적인 것에서 해답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납치하고 죽이면,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더 충격적인 것이 오면, 잠깐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가도 이후 그와 비슷한 죽음이 있으면 그냥 일상처럼 지나가게 되는 거죠. 그런 것을 보면 우리자신이 얼마나 잔인한지 모르는 거예요. 자기가 손가락을 다치거나 자기 자식이 조금 다치면 난리를 치잖아요. 그게 참 웃기죠.

또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를 딴 사람이 때려주면 편하잖아요. 부시가 자전거 타다 넘어져 깨지고 다친 적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예 오토바이 타다 저렇게 넘어져 의식불명 이런 거 안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자기는 무슨 신의를 지킨다 이런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게 아니거든요. 죽이면 계속 이어지는 '끝없이 반복되는 고리'가 되는 거죠. 테러를 단죄하겠다는 것은 전쟁주의자들이나 하는 말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적으로 내 안에 있는 폭력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평화를 발전시키는 것이죠. 평화는 누군가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58일간의 단식과 18일간의 평화순례에서 그는 평화에 이르는 희망을 발견했을까. 그는 단 일초도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성과가 있느냐고 많이 묻더군요. 그 질문에 성과는 없다고 답했는데, 사실 성과는 제 자신이 얻은 것 같습니다. 평화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노력할 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평화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많이 발견했고 체험한 것이 가장 큰 성과지요."

그는 그렇게 모은 힘을 '전범 민중재판운동'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12월 11일과 12일에 열리는 '전범 민중재판'에서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전범으로 민중재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9월 20일 발기인 총회를 가졌으며, 11월 말까지 1만인의 기소인을 모집할 계획이다.

"부시, 블레어, 노무현에게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참회의 기회를 주는 겁니다. 회개라는 것은 종교적인 뜻이 아니고 본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들이 회개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무조건 용서를 이야기하는데, 용서란 정의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정의를 통해 용서가 되고, 용서를 통해 회개가 되는 것이죠. 그걸 우리가 준비하겠다는 것이죠.

재판이라고 해서, 단죄하고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식을 빌어 민중들이 부시, 블레어, 노무현 등을 전범으로 재판을 하고 이를 통해 전쟁에 대해 저항하고 불복종을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국제법이라든가 공적인 사법기관 등은 이미 강자들에게 순응하고 있어 이들을 기소하기가 어렵잖아요. 이미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이 시작되고 있어요.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사진제공 : 김재복 수사 홈페이지 http://www.chaminade.or.kr/

최현주 기자 2004-09-25    ⓒ 인터넷참여연대
 

 

편집국  gunchinews@gunchinews.com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4길 21, 제1호 3층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9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