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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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무비
  • 강재선
  • 승인 2003.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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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들의 ‘추잡한’ 성행위를 떠올리고, 후천성면역결핍증을 떠올리고, 정신이상이나 변태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또는 나름대로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 동성애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혹여 내게 사랑하자고 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도 있겠다.

래서, 동성애 영화를 마케팅하는 데 가장 유효하게 파고드는 카피는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이다. 영화가 이성애자를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이성애자를 감동시키기를,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확인시켜주기를 바라는 심리를 노린다. 그래, 그들은 단지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라고.

초반부의 격렬한 정사씬,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소개를 달고 나온 ‘로드무비’는 여러 가지 엇갈린 견해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 사람에 따라서는 무지막지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었을 몇몇 대사들이 생경하다는 느낌에 당황스러웠지만...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스타일리시한 화면에서 묻어 나오는 특이한 질감과 이미지, 감독의 진정성,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발견, 소통 불가능한 사람살이에 대한 복습이다. 소재의 파격성은 차치하자. 이것은 동성애에 관용을 베푸는 영화가 아니다.

상대의 성적정체성을 알기 전에는 가능했던 유대 관계가 성적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로 위기를 맞는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두 인물의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서로를 용납할 수 있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막힌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물들의 무겁고 어두운 멜로 드라마는 시종 비극으로 치닫는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인정보다는 나와의 동일시를 통해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일상적인 파시즘을 비판하기 전에, 질서라는 이름으로 권력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길들여온 폭력문화 전반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종교와 윤리와 의학이 오랜 세월 묵인하고 주도해 온 전근대적 폭력이다.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받아 온 나에게 그래서, 다른 것을 인정하는 일은, 내 안의 전근대성과 싸우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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