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사회 불안한 국민, 그리고 우리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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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사회 불안한 국민, 그리고 우리의 역할
  • 이상이
  • 승인 2007.11.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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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Focus]①

이 글은 '복지국가 Society'(운영위원장 이상이, www.welfarestate.net)의 동의를 얻어 Weekly Focus를 전문 발제한 것이다. 편집자

지난 10년은 ‘불안정한 사회 고착’

우리는 87년 민주항쟁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얻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내용적 발전 가능성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장차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 사는 민주공화국, 참으로 행복한 나라를 꿈꾸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서, 1994년부터 본격화된 세계화 논의,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세계적 표준 주창, 그리고 OECD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박정희의 파쇼적 발전국가체제가 낳은 경제적 성과를 딛고 세계화된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발전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고, 경제위기의 고통은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바야흐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의 경제사회체제는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이 종언을 고하고 시장만능주의로 넘어간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는 누가 보아도 명실상부한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 양극화사회로 구조화되어 버렸다. 한나라당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며, 좌파정부의 무능을 꾸짖고, 정부와 범여권은 이를 외환위기 극복과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한 발전의 10년이라며 한미 FTA의 체결과 함께 온갖 종류의 경제지표를 들이대고 있다.

둘 다 틀렸다. 지난 10년은 양극화 성장체제가 안착되고 구조화되어 버린 ‘한국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체제의 불안정성과 국민 불안 심화’의 10년이었다.

일자리가 불안한 사회

지금 국민 대다수는 불안하다. 그것도 만성화된 불안이고, 때로는 절망이고 분노다. 그래서 자살률이 세계 1위다. 우리는 그런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위 5대 불안이 그것이다.

첫째, 일자리 불안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 얻기가 어렵다. 그러니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열풍에 휩싸여 있거나 의학전문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아마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리로 가는 모양이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용불안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잘리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장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체계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잘릴 염려가 없는 직업을 구하거나, 해고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고용은 경직되고 도전정신과 창의성은 줄어들고 일자리 불안은 심화된다. 일자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은 2004년 현재 약 87%로 1999년의 약 82%에 비해 그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생산성과 임금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대기업 대비 중소제조업의 생산성은 1994년 43.2%였으나 2004년에는 31.3%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임금격차로 이어져 1995년 대기업대비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수준이 76.3%였던 것이 2005년에는 64.3%로 떨어졌다.

경제구조의 이러한 양극화와 양극화 성장체제가 일자리 불안의 근원이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새롭게 필요한 부분에서 양질의 사회적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하겠으나,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 논리에 사로 잡혀 이 부분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된 것도 일자리 불안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2003년 현재 OECD 국가들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을 보면, 노르웨이 34.2%, 덴마크 31.3%, 핀란드 27.3%였고, OECD 평균이 21.7%이었으나 우리나라는 12.6%에 그쳤다.

보육·교육이 불안한 사회

둘째, 보육 및 교육 불안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다. 개천에서 용 나게 하겠다는 우리네 부모의 오래된 욕망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제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고, 보육과 교육에 대한 불안만 가중되고, 이것이 세계 최고의 ‘아이 안 낳는 나라’로 귀착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8명으로 스웨덴의 1.9명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부담 또는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이다. 보육의 공공성이 높은 북유럽 나라들, 특히 스웨덴의 보육료 정부 부담비율은 80%를 상회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2007년 현재 약 46% 수준이다.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공공성(국공립보육시설)은 시설 수 기준으로 5.2%, 아동 수 기준으로는 11.3%에 불과한 실정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공교육체계 덕택에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거의 없으나, 우리나라는 서민가계를 불안과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

국내 사교육 시장의 총 규모는 명목 GDP의 3.95%에 해당하는 33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2007년 정부의 교육 예산 총액 31조 원보다도 많은 것이다. 교육은 지식경제 사회에서 성장 동력이 되는 인적 자본의 확충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기본적 요소인 기회의 평등이란 차원에서도 사회구성원 모두에서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공공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육과 교육에서 공공성이 극히 취약하고, 가계 부담의 크기가 큼과 더불어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주거가 불안한 사회

셋째, 주거 불안이다. 최근 수년 간의 집값 오름세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내 집 마련에 걸리는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다.

집이 주거공간이라기 보다는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는 독특한 우리나라 주택 문화 하에서 주거불안은 상대적 불안과 절대적 불안으로 중층적인 성격을 띤다.

내 집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간, 좋은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차이에서 오는 불안감과 절대적으로 저열한 주거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또는 그럴 가능성에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 주거불안이 그것이다.

건설교통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6%, 가구 수로는 255만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중에서도 최하층인 주거극빈층이 있는데, 이들은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등에 살고 있는 계층으로 68만 가구 160만 명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강력한 내 집 마련 욕구는 차치하고라도 공공임대주택 정책 등의 공공주거정책을 통해 서민과 저소득층의 주거불안을 우선적으로 해소해 주어야 하겠으나, 2006년 말 현재 한국의 임대주택의 비율은 전체 주택의 9.8%에 그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장기공공임대주택은 3.0%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산층의 어느 가계라도 처할 수 있는 주거불안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안전망은 우리나라에서 극히 미약한 것이다.

노후가 불안한 사회

넷째, 노후 불안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07년 현재 약 10%이고, 2018년이면 14%로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제 노후 문제는 대상인구가 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심각한 대응 문제임과 동시에 개별 가계에게는 큰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2004년도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에 의하면, 노인 중 13.9%가 공적연금을, 8.6%가 국민기초생활보장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고, 노인의 78.6%가 사적 이전소득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노후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자 서민가계의 큰 불안과 분란의 이유가 되고 있다. 빠듯한 서민 가계에서 어른을 봉양하고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이 안정적으로 가능한 가계가 얼마나 되겠는가?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70%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고는 하나 최고 금액이 8만 4천 원 정도에 그치므로 노후 불안을 잠재우는 데서 실효성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생색내기용 기초노령연금이 아니라 모든 노인에게 기초생활이 가능한 최저생계비(2007년 현재 약 46만원)에 근접하는 금액을 지급하는 실질적 기초연금제도가 작동하는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이 없는 한 노후불안 문제는 장차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강이 불안한 사회

다섯째, 건강 불안이다. 2007년 2/4분기 가구 당 월평균 의료비 지출액은 12만 1,600원으로 전년 대비 13%가 증가하였는데, 같은 기간에 소득은 약 6%만 증가하였으므로 의료비 지출액 증가율은 소득 증가율의 2배를 초과한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부분의 크기)은 64.3% 수준인데, 유럽 선진국들의 대부분이 85-90%인 것에 비하면,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식구 중에 누가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온 가족이 초죽음이 된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간병시스템의 미비도 대한민국 일반적 가계가 겪는 건강불안의 한 원인이다. 설상가상으로 가계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큰 병에 걸릴 경우, 서민 가계는 몰락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본인부담 의료비는 물론이고,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상할 아무런 제도(상병수당)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나머지 4대 불안은 자동으로 작동된다.

이러한 불안이 서민가계로 하여금 무리하게 각종 민간의료보험과 생명보험 등에 가입하도록 몰아가고, 하루하루의 힘겨운 민생과 각종 불안이 뒤범벅된 안타까운 우리네 일상을 연출하게 한다.

불안함에도 그것을 불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

그런데 문제는 더 큰 데 있다. 우리 국민들의 불안에 대한 사회심리가 그것이다. 불안함에도 스스로는 그것을 불안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숨기려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해 있는 처지, 즉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불안정과 불확실성 등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처해있는 환경이므로 이를 하나의 조건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체제가 없어도, 능동적 복지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도, 우리나라 경제체제가 그리 공정하지 않아도, 사회정의의 수준이 높지 않아도 이를 불만거리로 삼기보다는 유능하고 경쟁력 있는 개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안이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문제로 파편화되어 개인의 정신과 신체와 개별적 삶에 내재화된 채로 만성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악순환을 하게 된다.

불안이 개별적 삶에 내재화된 국민들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사고, 기껏해야 가족주의에 매몰되는 이기적 삶을 고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타심, 공동체적 관심, 인간의 존엄, 사회적 연대, 사회정의 등의 가치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그리고 시장만능주의의 가치에 종속되는 사회적 상황이 도래하는 데, 이것이 바로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설명해주는 국민 불안의 사회심리다.

 

불안을 사회정치적으로 의제화 하자!

이런 방식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악순환의 고리를 따라 더 큰 불안으로 내몰릴 뿐이다. 이제 우리는 불안을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의제로 삼는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애초부터 정치적 문제였다. 불안의 본질적 이유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구조와 잔여적 복지제도 탓이기 때문이다.

즉, 1997년 이래로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정책 10년을 거치면서 경제구조가 양극화되었음과 동시에 복지체제는 과거의 미흡한 영미식 잔여/선별주의를 고수함으로 인해 보편주의 복지체제가 가져다주는 기회 균등과 사회적 안정성 구조와 이로 인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더 나은 축적 기회를 놓쳐 버렸고, 이로 인해 국민 개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전반적인 불안정성이 커지게 되는 바, 이것이 종합적으로 작동하여 민생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문제의 해법은 ‘불안의 원인은 우리나라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체제에 있다’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국민적 요구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계, 시민사회단체, 개혁적 진보정치세력이 함께 나서야 한다. 통합적, 협력적 방식으로 우리사회의 보수화 추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불안이 국민 개별적 보수화의 사회심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수준에서는 진보와 개혁을 향한 역동적 변화의 에너지임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하기에 달린 것이다. 먼저 시작하고, 함께 나가자.

이상이(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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