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강대국' 아닌 '선진국'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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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강대국' 아닌 '선진국'이 되자
  • 김의동
  • 승인 2007.12.17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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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현 위한 로드맵 제시할 때

"전기밥솥 시리즈를 아시나요?"

최근에 탄 택시의 운전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전기밥솥 시리즈 아시죠? 요즘 인터넷에도 많이 뜬다던데…"

"아뇨, 모르는데요…"

"아직, 그것도 모르세요? 대통령들로 만든 이야기인데… 이승만이 솥단지를 하나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그 솥에다 밥을 했다는 거죠, 그리고 전두환이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답니다. 노태우는 거기 남은 누룽지를 박박 긁어서 마저 먹어치우고, 김영삼은 먹을 게 없으니 솥단지를 팔아 먹었다네요. 그러자 김대중이 카드로 긁어서 미제 전기밥솥을 하나 사 왔는데, 노무현이 그 밥솥을 220V에 꽂아야 하는데 386V에 코드를 잘못 꽂아서 밥솥을 다 망가뜨렸대요. 어때요?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택시기사 아저씨의 우스갯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후보의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보면 표현은 조금 점잖아졌지만, 나는 자꾸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 때 해공 신익희 선생이 썼다던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생각난다. 그리고 정동영 후보가 내걸지는 않았지만, 내심 '갈아봐야 별 수 없다, 갈아봐야 더 못 산다'던 자유당 옛 구호를 외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IMF이후 서민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나름대로 개혁을 진행시켜 줄 것이라 믿었던 DJ와 노무현 정권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켜 버렸다.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좌절로 바뀌어버린 지금, 2007년 대선에서 나타나는 각종 기이한 현상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또다시 다가오고 있고, 우리에게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987년 이후 진행된 20여년의 민주화 과정은 다소 거칠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왔지만, 이제 정치적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인 부분이나 국민정서면에서라도 1차적인 완결은 이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2004년의 탄핵반대 시위는 그 산 증거였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정치적 민주주의가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고 성장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첫 번째 요구는 이제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야 할 때다. 그리고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GDP가 얼마나 성장하고, 경제성장률이 몇%고, 종합주가지수가 몇 천이 된다 해서 서민경제가 좋아지고 살 만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지난 10년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고, 앞으로 10년 내에는 대부분의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최강대국인 미국의 서민들이 대한민국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건강보험제도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갈 길이 무엇인가를 강력히 시사해준다.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 양극화의 해소는 이 시대의 첫 번째 요구이며, 또한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암울하고 힘든 세월이 될 수도 있다. 역사는 발전한다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때로는 급진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한다는 것을 또한 역사는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역사의 발전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서민(국민이 아니라)들을 위한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복지국가의 상을 마련하고 제시하고 구체화하고 실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직하게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의 1차적인 목표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고용 안정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나 FTA는 결코 우리의 과제를 풀 해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강대국이지만 선진국이 아닌 나라가 있고, 선진국이지만 강대국은 아닌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작지만 미래에 과연 강국이 되고자 할 것인지, 선진국이 되고자 할 것인지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둘 다 동시에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둘 중 선후를 분명히 따져야 할 일이 지속적으로 출현할 것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의 강국, 인터넷 강국, 스포츠(일부종목에 한해) 강국 등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오랜 세월, 민족적 수난과 설움을 많이 당한 탓인지 미래에 대한 국가 비젼도 주로 강한 나라, 힘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넓은 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선진화와 선진국의 구현에 대해서는 기대도 관심도 의지도 떨어지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강대국의 국민들이 결코 행복하게 사는 것만은 아니며 강대국이 반드시 좋은 나라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때, 우리의 목표는 국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각 분야의 선진화와 선진국의 실질적 구현이 아닐까?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될 사람을 밀어주자'식의 후진적 선거운동방식은 청산되어야 한다. 자신의 계급, 계층적 이해를 대변하고, 사회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는 내가 밀어 주는 후보가 당선 되게끔 우리가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단순한 실천,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투표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김의동(건치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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