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시대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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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시대의 흔적들
  • 임종철
  • 승인 2008.01.0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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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3대의 역사

▲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은 창덕궁 인정전
▲ 영조어진, 고궁박물관

 

 

 

 

 

 

 

 

 

 1762년(영조 38년) 윤 5월, 사도세자는 인정전 뜰에서 뒤주에 갇혀 죽는다. 아버지 영조의 손에 의해.

▲ 정조를 세손으로 책봉한 죽책(竹冊), 고궁박물관

 이때 인정전 뜰에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11살의 세손 이산(李祘)은 강제로 끌려나간다. 이게 정조가 본 사도세자의 살아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 영빈이씨의 칼, 고궁박물관  -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의 친어머니 영빈 이씨가 세자의 병을 이유로 ‘대처분’을 내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세자의 위치에서 처벌을 받지 않고 죽음으로써 세손인 정조를 보호하려 했다는 이야기와 다른 두 딸인 화완, 화평옹주의 편만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영빈 이씨가 아들의 관을 붙들고 통곡하고 이후 “자식에게 못할 짓을 했으니, 내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게 사실에 가까울 듯 싶다. 그렇게 믿고 싶다.

▲ 영빈이씨의 무덤, 수경원 정자각 - 연세대
 
 정조는 세손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어려서 죽은 삼촌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된다. 여기서부터는 드라마 ‘이산’에 자세히 나온다.
▲ 정조가 즉위한 경희궁 숭정전
 1776년 3월,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한 정조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한다. 그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800년 그가 죽고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첨정하면서 잔혹하게 지워나간 봉건왕조의 절정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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