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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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의 역사
  • 강신익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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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술의 발견은 현대의학 특히 외과학이 지금과 같은 지위와 명성을 얻을 수 있게 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건이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심각한 통증 없이도 다양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는 질병의 고통과 치료에 따르는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이 있고 그것이 임상에 안전하게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는 일찍부터 아편과 알코올의 진통작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약재를 적절히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람의 의식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 전신마취의 기술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 그림1
1795년 토마스 베도스라는 영국의 의사가 산화질소를 흡입해본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근육이 이완되는 현상을 발견해 이를 ‘웃음가스’로 명명해 유명해지지만, 의료적 가치는 크지 않았다. 그보다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람들을 초대해 이 가스를 흡입시키는 웃음잔치가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그림 1).

이 가스를 처음 의료에 적용한 사람은 미국의 치과의사인 호러스 웰즈(Horace Wells)였다. 그는 1844년 산화질소를 흡입한 상태에서 자신의 치아를 발거하는 수술을 받은 다음 이제 발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사람에 따라 일정치 않았고 의료계는 그를 불신의 시선으로 대했다. 이런 속에서 그는 정신병에 걸려 비극적인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그리하여 전신마취의 신기원을 연 사람의 명예는 또 다른 치과의사인 윌리엄 모톤(William T.G. Morton)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 그림2
1846년 12월 21일은 현대 외과학의 신기원이 열린 날로 기록되어 있으며, 로버트 힝클리(Robert C. Hinckley)라는 화가는 이 순간을 화폭에 담아 후세에 전하고 있다(그림 2).

당시 보스톤에 있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실의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다. 소독의 개념이 없던 시절인지라 의사나 구경꾼 모두 검은 정장차림 그대로이며 조명도 자연광을 그대로 쓰고 있다. 수술 가운이나 고무장갑과 마스크도 없다.

계단식 관중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이해 보이는데, 이것은 아직도 수술실을 극장(Operation theatre)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당시가 얼마나 남성중심 사회였는가를 말해준다.

환자의 바로 뒤에 에테르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있는 사람이 모톤이고 환자의 왼쪽에서 절개를 가하는 사람이 하버드 의과대학의 외과학 교수인 존 콜린스 워렌 (John Collins Warren)이다. 그는 이 수술로 환자의 목 부위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는데 성공했고 환자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마취에 쓰이는 약제는 더 안전한 클로르포름으로 대체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외과 의사들은 수천 년 동안 외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수술의 고통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에테르를 이용한 전신마취를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은 모톤이 아니었다. 크로포드 롱 (Crawford Long)이라는 사람은 모톤보다 먼저 성공적인 전신마취를 시행했지만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적 발견자의 영예를 놓치고 만다. 반면 모톤은 이 발견을 이용해 특허를 출원하는 등 금전적 보상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일종의 연출된 행위를 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림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려 했다는 사실은 모두 그런 노력의 일환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첫 발견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많은 소송에 휘말려 가난 속에서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인류를 고통에서 구원하는데 크게 공헌한 두 사람이 모두 치과의사이였다는 사실은 치과의사가 그 고통의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고통은 해결하지 못한 채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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