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희로애락] 자전거 타는 치과의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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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희로애락] 자전거 타는 치과의사-②
  • 오민제
  • 승인 2008.01.23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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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이 라이더와 흑염소가족, 그 일탈의 만남.

 

원래 오늘 오전은 장애인 진료소 봉사하러 가는 날이다.
그래서 오전 예약을 모두 미루고 비워놓은 상태였는데, 어제 오후 3시쯤 병무형 치과에서 환자가 없어서 쉰다는 연락이 왔다..헐..나더러....어떡하라고...

오전에 오겠다는 환자 모두 미뤘는데....오후 진료하면서 내일 오전에 오겠다던 환자도 모두 오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어제 아침부터 악재가 겹치더니 오후에는 급기야 예비군훈련 2차에 무단불참했다고 고발장이 접수되었으니 벌금 20만원을 내라는 연락이 왔다..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해룡대대 근무병이 나한테 사전에 고지를 안해서 그런것인데, 법적으로 내가 잘못한걸로 되어부렀다. 아..짜증....
아니면 그 근무병한테 20만원 대신 내라고 해야하는데, 참....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자동연기가 되었다가 작년 감사에서 모두 지적사항이 되어서 소급은 안하고, 작년것만 고발했다는군요...)

아침에 7시 기상...체인오일 드레싱하고...공기압체크하고 유압브레이크 체크하고 스트레칭.

간단하게 빵과 곶감..
그리고 랜스암스트롱이 먹었다던 파워바 반쪽 먹고...

오전 9시부터 라이딩 시작...

오늘은 친절한 마눌님이 바쁘셔서, 테라칸으로 임도입구까지 못가고 자전거로 집에서부터 출발했다...아침은 역시나 무지 춥다.
손가락, 발가락.차갑다.완전무장해도 말단은 차갑다.

집앞 나무숲 사이의 싱글코스를 지나 천변자전거도로를 지나 난봉산 임도에 10시 조금 넘어서 도착.
산속은 역시나 따뜻하다.
자전거에 물병을 꽂을수 없어 카멜백에 1리터 물넣고, 카메라까지 챙겼다.
참! 임도초입에서 한 컷.
셀프는 너무 어렵다....삼각대가 없어서 높은 곳에서 위치시키고....찰칵!

널럴 관광모드로 서서히 출발해 1km쯤 가니까 웬 흑염소염소가족이 나를 보더니 방향을 바꿔서 도망을 간다..
날씨도 봄날씨처럼 포근해지고
"제발 가지말고, 나랑 같이 놀자" 맘속으로 얘기해도 빠른 걸음으로 도망친다.
자세히 보니 아빠, 엄마, 아기 이렇게 3마리다..

가족이 나들이 나온건지, 탈출을 한건지 아님 바람난 가족?
그들에겐 나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생존일게다.
저만큼 도망가서 뒤돌아보다가 다시 도망가고…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카메라를 꺼내면 바로 사라지고..에고에고...

그래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라이딩 시작(제 카메라가 미니가 아니라서 목에 걸었음)
드뎌 산중턱까지 도망을 간 흑염소 가족들은 그곳에 숨어 있다가 나를 보고는 다시 도망치기 시작.
난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내가 사냥꾼이거나 추격자가 된 것이다..

흑염소 가족이 도망간 곳이 싱글코스가 시작되는 곳인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어찌나 빨리 도망을 가는지 또 놓쳤다.그래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쫓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흑염소 가족이 나를 향해 다시 오는 게 아닌가? 뭔일이야?
자세히 보니, 반대편에서 등산객에 쫓겨서 나를 향해 오는 것이었다...

괜히 내가 동물들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가까이 오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주저한다..
뒤로 많이 물러나서 길을 터줬다. 그러면서 셔터를 눌렀다.
흑염소 가족은 유유히 사라졌다.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잘 살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본 등산객 아주머니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가버리신다.

내가 쓴 오클리 썬그라스의 컬러가 fire iridium이라서 나의 불타는 눈탱시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버렸던지, 내가 무서워서 가버렸던지..알수 없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뒤로 하고 나도 갈길을 재촉해 남은 파워바 반쪽으로 힘을 재충전했다.
오후 2시부터서는 진료를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타 버렸다.

9시출발.집에 12시 45분 도착.

라이딩 타임 2시간 52분..라이딩 거리 41.2km.
로드가 27km.임도가 14km. 산은 얼어있는곳이고 진흙탕이 튀는곳. 자전거가 온통 진흙탕 투성이로 변했고, 신발과 옷도 마찬가지가 됐다.

텅빈집에 오자마자 친절한 마눌님이 미리 준비해주신 반찬에 밥만 준비해서 먹고, 고추가 mg당 vitC가 사과의 50배이기 때문에 하루에 고추 2개면 어른권장량은 OK..
고추 2개도 꾸역꾸역 된장 발라서 먹고 바로 샤워하고 치과에 엘리사로 쭉 오니까 2시하고 땡.

남들 일할 때 논다는 건, 너무 신나고 오지다.
우연찮게 일탈을 꿈꾸었는데 재밌었다.

* 오후에는 또 제가 사야 할 물품이 많이 있고, 자전거 비용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 적응중입니다.
근데 계속 배가 고프고 잠이 오네요..쿨쿨..

반복되는 생활속에서의 과감한 일탈...........그 재미는 직접 느껴보세요.

오민제(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 동부지회 여수학동모아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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