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떠나자! 단 돈 7000원짜리 피서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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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떠나자! 단 돈 7000원짜리 피서지로…
  • 편집국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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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떨게 하는 계절이 왔다. 극장가는 공포영화로, TV는 ‘납량특집’으로, 우리를 떨게 만든다. 올 여름 극장가나 TV에서도 변함없이 공포, 납량특집의 진수성찬을 준비하고 있다.

무서움의 비밀은?

모든 이야기, 소설, 영화, 드라마가 다 그렇지만, 무릇 ‘무서운 이야기’는 더더욱 드라마 트루기(dramaturgy)가 탄탄하고 이야기의 앞 뒤 아귀가 맞아떨어질 때 공포감이 배가된다.

결말을 듣고 보면 이야기 속에서 이상하게 여졌던 의문들이 한 줄에 꿴 듯이 단번에 풀리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듣는 이의 무한한 연상 작용을 자극해 더 큰 공포감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 아무리 초자연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설정 자체가 워낙 그럴듯해 당장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소설 <링> 같은).

이런 이야기들이 진정한 공포감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공포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나 소름끼치는 음향, 흉측한 분장, 허를 찌르는 괴물 혹은 귀신의 등장 등은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에 불과할 뿐, 이야기가 허술하면 아무리 그런 장치들이 가득해도 그 영화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법이다.

잠 못 들게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면, 유치원생인 전 부인 소생의 아들을 소풍날 절벽에서 밀어버린 계모가 친 자식을 낳았는데 몇 년 후 친 자식이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돌아보며 “엄마, 나 이번에도 밀 거야?” 했다는 얘기라든지, 부부 싸움을 하다 부인을 죽이고 만 남편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혼자 아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이 갸웃거리며 “아빠, 아빠는 왜 맨날 엄마를 업고 다녀?” 했다든지…. 이런 이야기들이다.

한국영화 ‘공포’ 전성시대

최근 한국 공포영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초여름부터 <장화, 홍련>의 폭발적 흥행이 공포영화 붐을 일으켰다. 곧 이어 개봉될 <여고괴담 세 번 째 이야기-여우계단>도 대단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포영화는 한국영화에서 꽤 취약한 장르였다.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전설적 공포영화들이 한국영화사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 하며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일궈 온 지난 10여 년간 공포 영화는 예외적으로 실패만 거듭해 온 장르였다.

하지만 <여고괴담> 시리즈가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2000년 여름의 <가위>와 지난 해 여름의 <폰>이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공포영화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올 여름 초반부터 공포영화 붐을 일으킨 <장화, 홍련>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던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

<장화, 홍련>의 성공과 <여고괴담>의 전통이 어우러져 한국영화에서도 공포영화라는 하나의 장르가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건 퍽이나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장화, 홍련>을 보고 나는 무척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지운 감독은 새엄마 이야기나 엄마를 업고 다니는 아빠 이야기의 노선을 택하는 대신 요코하마 이야기의 길을 걸었다. <장화, 홍련>에선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들이 자꾸만 사람을 놀래키는데 그게 하나도 무섭지는 않고 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초반에 무서운 흥행세를 자랑하던 <장화, 홍련>이 뜻밖에도 빠르게 관객 감소현상을 맞은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지운 감독은 무척 세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비쥬얼의 세련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70년대 어느 납량특집 드라마만큼이라도 세련성을 갖춘 이야기를 우선 제대로 갖추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 여름 공포영화의 문을 열었던 <장화, 홍련>에 다소 실망했다 하더라도 그다지 낙담할 필요는 없다. 휴가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줄 볼 만한 공포물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은 2시간 동안 당신의 땀을 쫙 빼줄 것이다. 올 하반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호러 밥상의 반찬은 무려 열 네 가지나 된다. 좀비, 뱀파이어, 식인종, 아이, 바이러스, 전설, 악마, 미래사회, 귀신, 거울, 쥐 등등. 입맛 따라 취향 따라 가격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무시속에 이어온 도도한 전통

공포 장르는 주류 영화의 역사에서 무시당하고 버림받으면서도 도도한 전통을 이어왔다.
유럽에서 먼저 환영받은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를 거쳐 할리우드에 도착했다. 제임스 웨일 감독이 창조한 특유의 호러 이미지는 할리우드 B급 영화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들어낸 서스펜스의 메커니즘 또한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겼다.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한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는 히치콕의 메스는 지금까지도 녹슬지 않았다.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는 영화 사상 가장 두렵고 매혹적인 악당이다. 히치콕이 <새>에서 보여준, 생물의 집단 공격으로 인한 파국과 인간의 나약함은 스필버그가 <죠스>에 반영하기도 했다.

고전 공포영화의 빛나는 업적을 계승하고 변형한 작품으로 <윌라드>라는 작품이 있다. 글렌 모건이라는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괴기스럽게 생긴 데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갑갑한 직장 동료가 있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안겨준다.

그가 언제 어디서 더러운 쥐떼들을 몰고 와 당신의 살점을 뜯어먹게 할지도 모른다. 소심한 윌라드는 신경질적인 어머니의 꾸중을 듣는 것도 모자라 직장 동료들에게 언제나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임시 비서 캐서린과 그가 지하실에서 키우는 수많은 쥐떼들. 그런데 어느 날, 못된 직장 동료들이 윌라드와 가장 친한 쥐 ‘소크라테스’를 죽인다. 윌라드는 분노를 참지 못해 쥐떼들을 이끌고 복수 혈전을 시작한다. 그렇다. 당신의 감각은 정확하다. 이건 그 유명한 히치콕의 <새>와 <싸이코>를 닮은 클래식 호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대하시라! <여우괴담>

공포영화만큼 속편이 줄줄이 이어지는 장르가 또 있을까?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처럼 몇 탄까지 왔는지조차 헤아리기 힘든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엑소시스트>나 <이블 데드>는 오히려 너무 짧게 끝낸 시리즈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올 여름도 많은 속편들이 무더위를 쫓기 위해 칼을 들고, 또는 원혼이 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전편과 비교할 수 없는 사악함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여고괴담>의 세 번 째 이야기인 <여우계단>이다. 남자들의 삶에서 가장 사연 많은 곳이 군대라면 여자들의 그것은 여고일 것이고 어느 학교를 가나 귀신 전설이 있고 괴이한 장소가 존재하며 폭력과 억압의 슬픈 회한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법. <여고괴담>이 성공적인 시리즈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고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 설정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시리즈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이하 <여우계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 중 유례없이 공포스러운 비주얼,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서로에 대한 애증으로 얽히는 네 명의 여고생. 그들이 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 때 평화로운 예술고등학교는 지옥으로 변한다는 설정이 무척 흥미를 끈다.

이 밖에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데스티네이션>의 속편과,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의 악명 높은 프레디와 제이슨이 맞대결을 펼치는 <프레디 & 제이슨>이 올 여름,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올 여름은 공포영화의 천국

주인공이 실재와 환영 사이에서 엄청난 공포에 빠져드는 설정은 공포영화에 심리 스릴러의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유지태 주연의 <거울 속으로>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밀실살인극을 연상시키는 영화 <아이덴티티>는 관객의 심리적 동요와 공포감 그리고 고도의 지적 추리를 동시에 이끌어 내는 올 여름의 대표적 심리 스릴러이다. 그런가 하면 SF의 요소가 강한 세기말적 공포영화도 두 편이 준비되어 있다.

병적인 세계를 담아내는 SF 영화들의 독특한 비주얼과 세계관이 첨가된 이런 류의 작품으로는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28일 후>와 <큐브>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만든 <싸이퍼>가 있으니, 감독 이름만 들어도 기대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28일 후>에서는 근 미래에 좀비의 도시로 변해 버린 대 도시 런던의 생지옥을 엿볼 수 있으며 <싸이퍼>에서는 <큐브>에 이어 다시 한 번 극도의 편집증적 공포를 이끌어내는 빈센조 나탈리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캐리>와 <엑소시스트>에서 시작해 <식스 센스>에서 극한을 맛볼 수 있었던 ‘유년의 비극’ 류의 공포영화 <아카시아>, <4인용 식탁>, <어둠의 저주> 등이 대기 중이며, <13일의 금요일> 류의 슬래셔 무비 <데드 엔드>, <데드 캠프>, <마이 리틀 아이> 등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쯤 되면, 올 여름은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천국이다.

공포영화가 피서의 효과를 주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포에는 불수의반응(不隨意反應)이 따르는데, 식은땀, 안면 창백, 심장 박동의 증진, 타액분비 정지, 눈동자의 확대, 항문·방광의 괄약근 이완, 기모(起毛) 현상 등이 그것이다.

심리적인 공포감이 이런 신체적 긴장을 일으키고 그 긴장이 이완되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순간, 몸이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자! 단 돈 7000원짜리 피서법의 과학적 근거까지 밝혔다. 올 여름엔 망설임 없이, 공포영화의 진수성찬이 차려진 멀티플렉스로, 그 공포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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