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희로애락]상하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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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희로애락]상하이 유감
  • 김형성
  • 승인 2008.01.29 17: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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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서울경기지부 2007 겨을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굳이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어머니께서 챙기시는 부적들을 연초 연말이면 바꿔서 지갑 깊숙한 곳에 챙겨두고 다니곤 할 만큼 그리 거부감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다. 굳이 말하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랄까.

하지만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사진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부터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때 전국의 공보의들이 모이는 시기가 있다. 새로운 근무지 배정을 결정하는 날인데, 훈련을 마친 신임 공보의들이 모여들고 그곳에서 새 공보의 협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장소는 분당에 있는 새마을협회 교육회관인데, 한때 비리로 유명세를 떨친 전두환의 형, 전경환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상하게 그 곳에만 가면 몸살을 앓곤 했다. 3년 동안 세 번 모두 그랬으니 우연치고는 요사스럽다. 아침에는 말짱하던 몸 상태가 방에 들어가 가방을 풀고 나면 으슬으슬 오한이 돋고 기운이 쏙 빠져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가, 좋아하는 술마저 마다하고 자리에 눕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퇴소하는 날 차를 몰고 내리막을 내려와 서울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하게 몸이 가벼워져, 전날 숙취로 파김치가 된 친구들을 꼬드겨 술자리를 만들곤 했으니 별일은 별일이다.

얼마 전에는 함께 사진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모시고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가벼운 옷가방 하나만 꾸리고, 카메라와 저장장치만 챙긴 간소한 짐을 들고 공항을 통해 중국을 향하는 마음은 들뜨고 흥겨웠다.

그러나 현지에 내려 버스에 오르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버스의 소바(충격완화기)가 고장이 났는지, 아니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지 버스멀미에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첫날 일찍 일어난 탓인가 싶었지만, 사흘간의 여행 내내 주로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해야하는데 차안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친구들과 달리 의자를 뒤로 젖힌 채 골골대야만 다녀야했다. 잠시 내려서는 울렁이는 속을 탄산음료로 달래가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사흘간 찍은 사진양은 평소 하루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찍힌 사진들을 추려본 중국여행 사진들은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사진들이었다. 어쩌면 그 멀미들이 부담스럽게 넓은 대지와 부담스럽게 높은 빌딩과 부담스럽게 부유한 중국인과 부담스럽게 가난한 중국인들을 만나는 내가 겪어야할 차이의 멀미였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르는 것이 세상이라지만, 화해보다는 불편함을 사는 방식으로 채택하고픈 인생이 고달프지만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분명한 입장과 고집이 있을 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잘 늙어가는 지혜 같은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김형성(건치 사업국장, 백상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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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2011-07-29 04:53:02
Knocked my socks off with knwold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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