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차여행의 즐거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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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차여행의 즐거운 추억?
  • 장기완
  • 승인 2008.01.31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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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대한구강보건학회 2007년 10월호 웹진에 실린 전북 치대 장기완 교수의 칼럼이다. 본지는 필자의 동의를 얻어 글을 게재한다.

여행이란 나에게 즐거움과 설렘을 가져다 주는 좋은 계기이다. 그것이 짧은 여행이던, 긴 여행이던...... 

목적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과정의 추억을 가져다 주기만 하여도 좋다. 비행기를 타게 되는 국외여행과 달리, 국내 여행은 제주도를 빼고는 대개 승용차, 고속버스, 기차 등을 이용하게 된다.

나의 대학생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국내에서 조금 먼 곳을 가려면, 기차나 고속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편리함 때문에, 조금 먼 거리도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사는 이곳 전주에서 서울까지 기차 길로는 편도 약 240km이다.
당일치기로 서울을 승용차로 다녀오려면 약간 피곤하다. 더욱이 겨울철에 눈이라도 오면 더욱 그렇다.

1990년대 어느 늦은 가을날 당일치기로 서울 출장을 다녀와야 할 일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맞지 않던 그 일기예보가 맞았는지 눈이 약간 내리고 있었다. 승용차를 포기한 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기차도 포기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곳 전주를 지나가는 기차는 경부선, 호남선도 아니고 전라선이다. 전라선은 두 노선에 비하여 무척이나 기차편수가 적어 애를 태웠다는 이야기이다.

기차를 이용하려면, 적어도 하루 전날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고, 약속시간에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움직여야만 한다. 급하게-한 두시간 정도 밖에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기차역에 가 보아야 맞는 시간대의 기차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하여, 일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밤중 10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밖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차도의 차들은 거북이 걸음경주를 한껏 즐기고 있었으며, 길거리에 눈이 소복히도 아니고, 수북히 쌓여 있다.
이제 선택이 3가지로 좁혀진다. 하나는 서울본가에 가서, 오랜만에 늙으신 어머님께 얼굴도 보이고 내일 아침에 내려가는 것. 이 경우 내일 아침 08시30분에 있는 대학 강의는 포기하는 것. 날씨이니까 천재지변에 해당하나? 그러나, 이는 학생과의 강의 약속을 못 지키는 것이다.

둘째는 야간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리도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교통사고 나지 않고 전주까지 잘 갈까? 세 번째는 그래도 기차인가? 예매도 하지 않았는데, 입석이라고 좋으니 차표가 있을까?

▲ (사진제공=대한구강보건학회 황윤숙 정보통신이사)
어찌 결정할까? 그래, 강의는 해야지!

확실히 내일 아침 7시 이전에 전주에 도착하려면 그래도 기차다. 급히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1시이다.

지방에 산지 10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완전히 촌사람이 다 되었다.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서울역 기차역까지는 왜 이리도 머냐? 아무래도 눈이 오니 기차역으로 사람들이 몰릴텐데....
기차표 파는 곳에 도착하였다. 아! 23시 이후에 출발하는 전라선 기차는 23시 58분에 출발하는 추억의 통일호 1편뿐이다.

23시 58분은 무슨 말인가? 그냥 24시 정각이 편안하지 아니한가? 표 파는 창구에 가서 표 있냐고 물어보니 입석표까지 저녁 8시 무렵 다 팔리고 없단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데 역무원이 표가 없다는 말에 뒤이어 “조금 기다려 보세요. 너무 많은 사람이 저녁 8시 이후 계속 기차를 타려고 하여, 입석표를 더 팔게 될지도 몰라요”라고 한다. 그래, 입석표면 어떠냐? 가기만 하면 되지....

그러고 보니, 표 파는 곳 앞 벤치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기도 하고, 서성이기도 하며 창구를 애타게 쳐다보고 있었다. 23시 40분 경에 갑자기 구내 방송이 나온다. “여수행 전라선 23시 58분 차에 입석표를 몇 표 더 발매하겠습니다. 창구에서, 표를 구입하세요”라고 한다.

오래 된 일이라 몇 표를 더 팔겠다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석표도 좌석표의 20%라던지, 30%라던가 하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하긴 6.25 한국전쟁 피난 열차처럼 입석표를 팔지는 않겠지... 다행히 나는 전주 가는 입석표를 살 수 있었다.

드디어 열차가 출발한다.
어찌 되었던 이제는 전주 가는 거다. 아무리 눈이 내려도 전주는 간다!

한강 인도교를 건너서 어느덧 서울을 빠져 나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다. 기차를 탄지도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으나, 어찌 조금 밖에 기차가 가지 않은 것 같다. 어둡지만 창 밖을 보니 기차가 매우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아, 그렇지 눈이 오니 기차가 안전운행을 하기 위하여 서행하고 있구나! 그 당시 통일호는 서울에서 전주까지 약 4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이렇게 서행을 하면 언제쯤 도착할까? 전주역에서 학교까지 평소 택시로 15분이니, 눈이 와서 설설 기어간다고 해도 30분 정도면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라도 아침 8시까지는 전주에 도착해야 8시30분 강의에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차운행시간이 최대 8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 8시간이라면 충분하겠지! 서울에서 전주까지 약 240km이니깐 기차가 아무리 느려도 설마 한시간에 30km도 못 가겠어....

그런데, 왜 이리 기차 안이 춥노? 갑자기 늦가을에 눈이 내려 기차 안 난방을 점검하지 못 했나? 입석표로 서 있는 나는 앉아 있는 손님에게 “여보세요, 차안이 추운데요. 죄송하지만, 발 밑의 난방통에서 스팀이 나오는지 살펴보아 주시겠어요?” 부탁하였다.

대답 왈, 아, 역시 난방기가 작동하지 않는단다. 으아, 계속 떨면서 몇 시간을 가야 하나? 가벼운 찬기로 느껴지던 기차안 공기가 2시간 정도 지나면서 이제는 진짜로 추워진다. 앉지도 못하고 서 있자니 피로감이 쌓이고, 춥기까지 하니 더욱 피곤해진다. 이런 때 졸면 감기 걸리는거야. 괜히 기차 안에서 왔다 갔다 라도 해야지. 기차 객실에서 나와 화장실에도 가보고 담배도 한대 피워보고....

아! 애로사항이 또 하나 발생했다. 배가 고픈 것이다. 그렇다. 저녁모임에서 식사는 하지 않고 술 마시며 이야기만 하다가, 자리에서 먼저 빠져 나오는 바람에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구나....

지갑을 열어 보았다. 그래도 돈은 여유 있게 있었다. 배고프고, 춥고, 돈도 없으면 거지라고 하던데, 돈이 있으니 아직 거지는 아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며, 3분 이상 정차하는 기차역이 나타나면 기차역내 가락국수를 사 먹으면 되는 거야. 조금 더 가면 천안역이야. 역이 크니깐 3분 정도는 정차하겠지.... 천안역에 도착하였다.
사람 생각은 다 똑같은가? 천안역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기차를 내려 가락국수 파는 집으로 달려 간다. 간이 판매점의 식탁은 최대 5명 정도만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무려 30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아우성이다. 과연 나까지 차례가 올까? 힘들지.... 가락국수 먹기를 포기하고 간이 매점에서 빵과 우유라도 사먹자. 아, 그런데 간이 매점은 문을 닫고 있었다. 그렇지, 간이 매점주인도 잠자야 할 시간이지. 그나마 문을 열고 있는 간이국수집이 신통 한 거지. 요기거리를 아무것도 구할 수 없네.... 그래 다음 역에서 해결하자! 앞으로도 조치원, 대전, 서대전, 논산, 강경, 함열, 이리, 등이 있으니깐....

기차 안은 계속 춥다. 거지의 조건 중, 한가지는 빠져 있으니 나는 아직 거지는 아니다.

그러나, 돈을 쓸 수 있어야 거지가 아니지. 돈이 있으면 무얼 하나?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는데.... 다음 역에서 기차를 아무리 빨리 내려서 가락국수집에 가도 장사를 하지 않으면 꽝인데.... 기차가 조치원 역에 도착했다. 승강기 맨 앞에 서있던 나는 우당탕 뛰어 국수집에 갔다. 아뿔사!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남대문시장보다 왁자지껄 시끄럽다. 아! 또 국수를 사먹지 못하겠구나! 그렇다면 포장판매를 사서 기차에 올라서 먹기로 하자! 기차 내에 먹을 데가 있나? 우선 사기나 하자. 아! 어이할꼬 포장판매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으아....

또 다시 기차에 올랐다.

이제 대전, 서대전 역에 희망을 걸자. 한참 기차가 움직였다. 대전역에는 1분간 정차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달리기는 학급에서 꼴찌이었으니까.... 대전역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포장판매를 사자. 그래 설혹 입석식탁을 차지하여도 1분 안에 내가 무슨 수로 가락국수를 다 먹을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왜 이 야간열차에서는 차내에 이동 판매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야. 식당차도 없고...  가락국수 포장판매를 사는 작업은 대전역, 서대전역, 논산역 모두 실패를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논산역부터는 빈 자리가 나서 앉아 올 수 있었다. 다리 아픈 것은 하나 해결했네.... 자리에 앉아도 춥고 배고픈 것은 똑같다. 앉으면 눕고 싶다던가? 졸리기 시작한다. 졸다가 전주역에 내리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한다.

차는 어느덧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이 예전에는 이렇게 불리었다-에 도착하였다. 다시 한번 가락국수집에 갔다. 여전히 사람이 많다.

다행히 포장판매를 하고 있었고, 사람 많은 아우성 속에서 나도 한 개 가락국수를 살 수 있었다. 기차에 올랐으나 마땅히 먹을 데가 없었다. 기차의 승강장은 좌우로 내리는 곳이 있다. 통상 진행 방향의 플랫홈으로 연결되는 승강장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사용하지 않은 반대편의 계단은 폐쇄하고 그 위에 철판이 엎어져 있다. 이 공간에서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아~, 이 얼마나 맛있는 식사인가? 포장판매에 바쁘니까, 단무지는 따로 포장하지 않고 스티로폼 그릇의 가락국수 안에 넣어져 있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단무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그러나 양이 너무 적어 배는 계속 고프다.

익산역에서 전주까지도 한 시간여 걸려 드디어 전주역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7시40분이다.

으하, 집에 들려 맛있는 아침식사를 먹고 학교에 가도 되겠구나....샤워할 시간은 없으니 세수와 이닦기만 하고....   후다닥 학교 연구실에 도착하여 5분간 강의록을 다시 한번 본 다음, 점잖게 강의실에 들어가서 아무런 일이 없던 것처럼 강의를 하였다.

추신 : 20세기 초 양반 조상님의 반대로 기차역이 잘못 들어서서, 대한민국 건국이래 나날이 쇠퇴하고 있는 도시가 충청남도 공주와 전라북도 전주이다. 그 대신에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오늘날 날로 발전하는 곳이 대전광역시와 익산시이다. 이 두 도시는 20세기 초 기차역만 제대로 설정되었어도 오늘날 존재하기 힘든 도시이다. 더불어, 내가 대전광역시와 익산시에 나쁜 뜻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밝힌다. 

장기완(전북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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