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트리] 배추농사와 파생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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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트리] 배추농사와 파생상품
  • 신상훈
  • 승인 2008.03.0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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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떼기 가격의 허와 실

2007년 김장철에 사람들은 포기당 5천원을 오르내리는 배추 값에 놀라야 했다. 배추농사 지은 사람들은 한 몫 단단히 챙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TV에 보도된 평택에 사는 농사꾼은 오히려 잘 자란 배추밭을 갈아엎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2006년에 배추 값이 폭락해서 실제로 배추밭을 갈아 엎었던 기억에 2007년 초에 미리 배추상인에게 포기당 1000원에 밭떼기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배추장사는 5000천 원짜리 배추를 1000원에 넘겨야 하는 매우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농부는 1000만원(2006년 포기당 500원으로 폭락 시 기준, 2만 포기) 정도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8000만원(포기당 5000원)의 추가적인 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밭떼기 가격(포기당 1000원)은 농부에게 최저 이익을 보장해주는 기준가격으로 생각할 수 있다. 농부는 2006년도에 포기당 500원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1000원에 미리 팔 가격을 정하면서 배추장사에게 500원의 가격하락위험을 전가한 것이다. 

배추장사는 배추가격이 500원으로 하락하면 미리 지불한 계약금을 날릴 수 있지만 배추 값이 1000원 이상 오르면 추가이익에 제한이 없다.

만약 농부가 절반은 밭떼기로 팔고(미리 정해진 가격) 절반은 시장가격으로 팔려고 했다면 농부는 1만 포기는 1000원에 팔고(1천만 원) 1만 포기는 5천원에 팔 수 (5천만 원) 있었을 것이고 아쉬움은 있겠지만 밭을 갈아 엎을 만큼 억울함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9·11 테러

사람들에게 ‘옵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인시켜준 것은 다름 아닌 9.11 테러 였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자본시장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고 주식시장은 폭락하였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옵션투자자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 주가하락을 예상한 H씨(실존인물)는 행사가격이 62포인트인 9월말 풋옵션 11,800계약을 매수했다. 이 옵션의 프리미엄은 0.01(1000원)이었고 H씨는 118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테러발생 후 지수가 곤두박질 치자 이 옵션의 프리미엄은 2.71까지 치솟았고 H씨는 31억 7980만원(11,800*27만1천원)을 손에 쥔 것이다. 단 하루 만에 271배의 이익을 본 것이다.

사람들은 가격하락이 곧 자기주머니를 현금으로 채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경악해 했다.

서브프라임과 파생상품

본래 파생상품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 파생이란 의미 자체가 ‘무엇인가’로부터 생겨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때문에 파생상품은 원래의 상품이 가진 가격변동리스크를 헷지하는 역할이 기본 임무다.

다만 원래자산(밀,국채,주식,원자재 등)의 소유하는데 따른 위험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투기를 하는 자와 투기를 피하는 자를 결정해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러한 파생상품이 가진 역기능에 대한 일종의 경종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은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대출이다. 보통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빌린 돈을 갚지 않은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출액이 작고 대출에 따른 비용(이자)도 신용이 좋은 사람에 비해 높은 편이다.

대출회사들은 집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주는데 집값이 하락하면 담보가치도 떨어지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떨어진 담보가치만큼 상환을 종용받게 된다. 돈을 안 갚으면 대출해준 회사만 망한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미국은 이 상품(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진다. 대출업체는 본래 이자를 약간 손해 보는 선에서 대출채권을 유동화전문회사에 넘긴다. 유동화전문회사는 이 채권을 담보로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라는 증권을 발행해서 여러 투자은행에 판다. 투자은행은 다시 이를 담보로 CDO(부채담보부증권)을 발행해서 전세계투자자에게 파는 것이다.

이 복잡성 때문에 누가 얼마나 물렸는지 모른다는 것이 서브프라임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부동산경기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과 금융자본주의의 모럴헤저드가 겹치면서 서브프라임은 전세계 자본시장에 불안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수단

파이낸셜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모건은 “파생상품은 면도날과 같다. 당신은 면도를 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고, 자살을 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오늘날 경제환경은 복잡하고 또한 전세계적인 영향권에서 움직이고 있다. 결과에 관여하는 원인은 실로 다양하며 인간의 분석능력을 뛰어넘고 있다. 파생상품은 이러한 복잡성에 직면한 투자자에게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농부가 배추가격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가격폭락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는 것처럼 투자의 위험이 증가하는 만큼 투자의 위험을 통제할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남용하는 경우에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통제불능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보험회사는 풋옵션을 사용해서 고객들이 투자한 변액연금의 적립금을 특정시점에서 보증해줄 수 있게 되고 투자자는 장기투자에 따른 적립금의 변동을 제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적절한 시점에서 자기의 은퇴자금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투자에 있어 파생상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례이다.

정확한 마취제의 사용이 수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듯이 파생상품을 적절히 활용하면 투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마취제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신상훈(머니트리 교육팀장, 010-4704-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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