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자유주의와 가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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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자유주의와 가치 대립
  • 장원기
  • 승인 2008.03.1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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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와 민주주의 세력이 대립하던 시기가 지나고 국민의 손으로 정권을 세우는 시대가 도래한 이후 처음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재집권’이라고 불리기보다는 새로운 시대,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출범 이후 첫 보수적 정당의 집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역사적 관점에서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적 정당들의 참패는 국민의 선택이 낳은 결과이므로 전적으로 수용하고 따를 일이며, 거꾸로 그 화살을 국민에게 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선택은 천명이며 모든 정치적 행위의 절대적 기준이다. 국민의 선택의 권리가 인정되고 존중되는 만큼 선택의 결과 역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이 진보 진영의 편에 서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진보 진영의 문제이며, 문제의 해결책 역시 어떻게 하면 국민을 진보의 편에 서도록 할 수 있겠느냐는 방법의 모색에 맞추어져야 한다.

다양한 차원의 방법적 고려가 가능하겠으나, 그 방법의 선정 기준이 국민 설득에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을 모색한다든지, 또는 새로운 제도 모형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등 지금까지의 모습을 반복하는 것은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진보의 가진 바 훌륭한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해야지, 새로운 무기를 찾아 방황할 때가 아니다.

더욱이 중층적 논리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거시적 대안은 일견 합당한 듯 보이더라도 논리의 중첩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의 확대로 인하여 대개 현실적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마련이다.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특징을 ‘실용성’이라고 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이념성’과 비교하는 의견들이 쉽게 눈에 띄는데, 거꾸로 필자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기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책 실패의 대가로 국민의 지지가 철회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과 정당 지지의 철회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별 정책의 성패에 따라 지지 정당이 바뀐다면 서구의 오랜 양당제와 고정적 지지자들을 설명할 수 없다.

부동산 대책을 예로 들어 보자. 십여 차례의 대책을 남발하는 정부를 보면서 국민의 뇌리에는 ‘성과를 못 보니 무능하다’라는 생각이 박혀버렸다. 같은 상황에서라도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국민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더라면 ‘잘 안되더라도 힘내서 계속 해라’는 응원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비록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국민이 지지 정당의 노선에 공감하고 그 노력에 신뢰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공감대를 이룰 것인가? 거창한 이념이나 꿈같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주장, 진보의 고유한 가치에 공감하도록 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이념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지 않으며, 실제 생활과 결부된 신자유주의적 가치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자유 시장, 경쟁, 탈규제, 작은 정부, 효율성 등은 이미 국민 대다수가 당연한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 역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다. 상황은 심각하다. 이러한 모든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결과적으로는 소수의 이익과 다수의 피해로 귀결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야 말로 진보 진영의 시급한 임무이다.

적극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굳이 새로운 것은 아니어도 좋다. 지금까지 보듬어 온 진보의 가치들을 보다 널리, 보다 확실하게 전파하여, 보수적 가치의 공세에 대항한 가치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인 상태는 곤란하다. 보수적 가치 하나하나에 대응한 진보적 가치를 발굴하고 대립시켜야 한다. 나아가 그 진보적 가치가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경쟁의 신화를 종식시켜야 한다. 경쟁 탈락자는 고려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어버리고 마는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효율적으로 보이는 개별 경쟁 체제가 사회 전체의 비효율을 낳는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사회연대의 의의를 부각시켜야 한다.

탈규제의 우상을 파괴하여야 한다.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일방적 마녀사냥을 저지해야 한다. 협력적 자율규제와 국민 감시 등의 대안 가치를 개발하여야 한다.

개별 정책분야에서도 이러한 가치의 개발과 국민 설득이 경주되어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건강권 같은 중요 가치의 내용 정립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구상하기에 앞서 모든 정책에 건강권 등의 가치가 구체적 내용으로서 담기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론적 모형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는 듯하다. 대안의 모색은 항상 이루어져야 할 일이나, 그것이 패배의식의 반동이어서는 곤란하다. 옳건 그르건 문제에 대한 완결된 대답을 얻고자 하는 지식인의 관념적 속성을 경계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진보적 가치들의 의의와 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그 가치들이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틀릴 수 없는 진리에 근거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장원기(순천향 의대 교수, 건강정책포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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