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희로애락] 모두 잘 살고 있겠죠?
상태바
[진료실 희로애락] 모두 잘 살고 있겠죠?
  • 문세기
  • 승인 2008.03.17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서울경기지부 2007 여름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기러기: 한자어로는 안(雁)·홍(鴻)이라 쓰고 옹계(翁鷄)·홍안(鴻雁)이라고도 한다. 몸은 수컷이 암컷보다 크며, 몸빛깔은 종류에 따라 다르나 암수의 빛깔은 같다. 목은 몸보다 짧다. 부리는 밑 부분이 둥글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치판(齒板)을 가지고 있다.

다리는 오리보다 앞으로 나와 있어 빨리 걸을 수 있다. 땅 위에 간단한 둥우리를 틀고 짝지어 살며 한배에 3~12개의 알을 낳아 24~33일 동안 품는데,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주위를 경계한다.

새끼는 여름까지 어미새의 보호를 받다가 가을이 되면 둥지를 떠난다. 갯벌·호수·습지·논밭 등지에서 무리지어 산다. 전 세계에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는 흑기러기·회색기러기·쇠기러기·흰이마기러기·큰기러기·흰기러기·개리 등 7종이 찾아온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힘들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에 군대에 취업과 개원 힘들게 10년 넘게 달려오다 보니 나이 40고지가 바로 눈앞에 놓인 나이가 되어 버렸다. 엄마아빠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는 게 아이들의 시간, 큰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대학동기들의 아이들도 별 차이가 없는지라 개업 얘기, 아파트 장만 얘기, 골프 얘기가 주였던 몇 년 전과는 달리 요즘은 아이들 공부시키는 얘기가 더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빠들 고민의 깊이가 엄마만 하겠냐만 말이다.

이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얘기가 아이들의 조기해외유학. - 최근에야 알았는데 초등학생의 해외유학은 합법이 아니란다. 그렇다고 부모가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불법이지만 처벌은 안하는 것인지 너무 많이 무단횡단을 하다 보니 횡단보도를 설치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 나처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처형네 식구들에게 1년간 아이를 맡겨버린 운 좋은 엄마아빠도 있지만, 철새처럼 아이와 부인을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솔직히 나도 그랬고, 다른 친구들도 조기유학과 기러기아빠 얘기가 나올 때마다 치맛바람에 지나친 자식 사랑으로 가족의 존립을 위협하는 비판의 날을 세우며 얘기하곤 했었지만, 막상 자신들의 일이 된 지금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는 교육현실에 대한 불만들이 더 큰 듯하다.

개인적으론 일에서 부딪히는 문제도 있다. 교정치료를 주업으로 하는지라 학생환자가 절반이 넘고, 치료 중에 갑자기 외국행을 결정해버려 담당 의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아이들의 유학 대상국들도 북미권에 국한되었던 예전과는 달리 중국, 베트남, 스위스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방학 때마다 들어와서 치료받고 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치료를 외국의사에게 이첩해야 해서 영어로 치료 의뢰서 쓰느라 허접한 영작실력을 드러내야 하는 곤란한 상황들도 발생한다. 치과에 경제적 손실도 조금 있지만, 그보다는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 때문에 1년만 늦게 나가면 안 되냐고 설득해보기도 하지만 비뚤어진 치아와 바꾸기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가 훨씬 걱정된다는 부모님 말씀에 더 이상의 억지를 부리지는 못하고 만다.

조기 유학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텅 빈 집에서 소주로 한숨을 달래는 기러기 아빠를 만드는 게 좋은 일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지나친 입시 경쟁과 사교육열풍에 시달리는 아이를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겠다는 부모를 말리기는 쉽지 않다. 말이야 이런 현실들을 개혁하려 하지 않고 도피하는 것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다시 학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기다려 주지 않는 상황에서 3불 정책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논쟁만이 오고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두달 후면 큰 아이가 돌아온다. 큰아이를 떠나보내고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 짖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다른 아빠들의 아이들도 또 떠나고 어느새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혹은 돌아오지 않고 ‘텃새’가 될 수 도 있겠지만 철새든 아니든 어디에 있든 잘 살기를 바란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치료 때문에 푸른 눈의 의사가 함 숨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무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 때 즈음에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세기(건치신문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