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혜택받은 자의 '당연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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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혜택받은 자의 '당연한 의무'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8.03.28 18: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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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울산 1218 이주외국인 지원센터

3월 16일. 모처럼 따뜻하고 화창한 일요일이다. 울산이 남쪽에 위치해서인지 벌써부터 이리저리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손 잡고 나들이 하기 딱 좋은 날'이라 생각하며, 울산 중구 이마트에서 길을 물어물어 '울산 1218 이주외국인 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찾았다.

이 곳에선 이 화창한 봄날 일요일, 가족들과의 나들이를 포기하고 이 땅에서 가장 소외받는 집단인 이주노동자들의 구강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있기에, 기자 또한 그 권리를 포기하고 부랴부랴 울산에 왔던 터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울산지부(회장 변영호 이하 울산건치)는 지난 2007년 4월 29일 중구 학성동에 위치한 지원센터 내에 이주노동자 치과진료소를 개소해 매주 일요일마다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무료 치과진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진료에는 20명의 울산건치 회원이 참가하고 있으며, 2인1조가 돼 10개조가 돌아가며, 진료에 임하고 있다.

 

1만 울산 이주노동자들의 쉼터

지원센터에 들어서니 진료를 기다리는 여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경계하는 듯 낮설게 바라본다.

▲ 지원센터 대기 및 접수실
울산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이하 복지관) 이정석 관장은 "경주 모아공단, 울산 달천공단, 내곡공단, 현대자동차 하청업체들이 모여있는 효문공단 등 울산은 북구지역에 공단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며 "때문에 북구지역에만 1천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울산시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울산 거주 이주노동자는 4천여 명 정도다. 하지만 이 관장은 "불법 체류노동자를 포함하면 1만 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 곳 진료소를 찾는 이주노동자들도 불법 체류자가 70∼80%를 차지한다고 하니, 아마도 기자를 '혹 경찰이 아닐까' 하고 경계한 듯싶다.

"합법 체류자는 의료보험 혜택이 되니 그나마 낫지만, 불법 체류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못받으니 아프면 정말 큰 일이에요. 하지만 치과치료는 비급여가 많아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곳 무료진료소가 큰 도움이 됩니다."

지원센터는 크게 3공간으로 나뉜다. 접수와 진료를 마친 뒤 보철치료 연계 등을 하는 접수대 및 대기실과 치과진료실, 쉼터.

▲ 지원센터 내 진료실 모습.
▲ 지원센터 내 쉼터.
입구 바로 앞 화이트보드에는 매주 진료에 임하는 건치 회원명단과 비상연락망이 적혀 있는데, 특이하게 쉼터 앞 화이트 보드에는 네팔, 몽골, 미얀마 등 6개 나라 공동체 대표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다.

이 관장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도 각 나라마다 공동체가 있는데, 7개 나라의 공동체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한다고 한다. 그 대표들이 자국 노동자들에게 진료소를 소개도 해주고, 돌아가며 진료소에 나와 통역도 해준다.

즉, 7개 나라 공동체 대표가 바로 이 곳 진료소의 홍보 전도사인 셈이다.

 

울산건치와 어울림복지재단

"처음에는 불법 출입국 문제, 떼인 월급문제, 통역문제 등 개인적인 사생활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역할을 주로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듯 사생활 지원 및 상담을 하다보니 아파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놨죠."

심지어는 생명에 위협을 당하는 수준의 사람까지 찾아올 정도였다니, 당시의 고충이 이해할 만하다. 어찌됐든 이 관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아픈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건치에 도움을 요청했고, 건치가 흔쾌히 승낙해 지난 2005년부터 이주노동자 무료 치과진료사업이 시작된다.

▲ 북부사회복지관 이정석 관장
그런데 건치가 이렇듯 흔쾌히 승낙한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히스토리가 있으니, 이를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은 2004년 2월 설립됐다. 이 복지관 운영은 어울림복지재단이 하고 있는데, 재단이 2001년 설립될 당시부터 건치가 깊숙히 관여했다고 한다.

이정석 관장은 "어울림복지재단은 설립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50% 이상이 건치 회원들의 힘으로 이뤄진다"면서 "이종상 전 울산건치 회장이 재단의 전 대표를 맡았었고, 현 대표도 울산건치 회장 출신인 김병재 회원이 맡고 있다"고 전했다.

건치의 울산지부도 지난 1997년 울산참여연대를 만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치과의사 멤버들이 만들었으니, 울산건치 회원들은 시민운동, 복지운동, 보건의료운동 3가지를 모두 하고 있는 셈이다.

 

울산 교통의 요지 '중구 학성동'

복지관에서 매주 일요일 진행되던 진료활동은 한차례 고비를 맞게 된다. 원래 울산 북구청장은 민주노동당 출신이었는데,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바뀌게 되며, 진료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원래 복지관은 일요일에 문을 닫아야 하는데, 진료를 위해 일요일도 오픈을 하니 모순이 발생했죠"라고 이 관장은 말한다.

새 구청장은 "왜 일요일에 문을 여느냐"는 제동 뿐 아니라 복지관 운영조차 타 단체에 넘기고자 새로 위탁운영단체를 공모하는 등 복지관에서 어울림복지재단을 밀어내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구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관장은 "상담소에서 치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을 일일이 치과에 연계하는 것은 챠트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와 진료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 이충엽 원장의 진료 모습.
2006년 11월 기자가 울산건치 정기총회를 취재왔을 때, 대책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진료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던 이충엽 원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침 이날이 이충엽 원장의 진료순번이라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당시 이 원장은 장소 구하랴, 보증금 모으랴, 새 구청장 복지관 위탁운영 변경 시도 대응하랴 참으로 동분서주 했었다.

참고로 본지의 인기칼럼인 '이 원장의 들꽃이야기'의 필자는 두 분인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이충엽 원장이다. 들꽃이야기가 매달 2번씩 번갈아 가며 쓰여지다 어느 순간부터 '이 원장'이 아닌 '이채택 원장의 들꽃이야기'로 바뀌어 버렸는데, 아마도 그 시점이 바로 이 시점인 듯싶다.

본지가 칼럼 필자 한 분을 잃는 희생을 치루는 동안 마침내 현재의 '중구 학성동'에 진료소를 마련하고 지난 2007년 4월 29일 개소식을 치루며 첫 진료소장을 역임한 이충엽 원장은 "이 동네가 북구 뿐 아니라 울산 전지역에서 오기가 가장 좋은 거점이에요"라고 웃는다.

 

진료봉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

▲ 치과위생사 봉사지원자가 스케일링을 하고 있다.
"진료소가 오픈된 지 1년이 돼 가니 무료 치과진료을 해준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북구 공단에 거주하고 있는 노동자 뿐 아니라 울산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료소를 찾아옵니다."

이충엽 원장에 따르면, 진료소는 매주 일요일 12시부터 5시까지 5시간동안 명절 등 특별한 날만 빼고 1년 내내 풀가동 된다. 매주 평균 3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진료소를 찾아오고 교회를 다녀온 몽골 노동자들이 많아 3∼4시가 가장 바쁘단다.

현재까지 600여 명 정도가 진료소를 다녀갔는데, 지난 1년간 이 사람들을 진료하고, 상담하고, 챠트 관리하고 등등의 많은 일들을 건치 회원만의 힘으로 해내기에는 불가능했을 터. 보이지 않게 봉사에 임하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먼서 울산시치과위생사회에서 매주 2명의 치과위생사가 참가해 스케일링 등 예방진료를 해주고 있으며, 울산과학대 치위생과 학생 2∼3명이 매주 참가해 진료 보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울산대 사회복지전공 학생 2명과 대구미래대 사회복지과 학생 2∼3명이 진료실 밖에서 상담 및 접수,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보철진료까지 실시함에 따라 보철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건치 회원치과에 연계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물론 전체 코디는 복지관 사회복지사가 하고 있으며, 위에서 소개했듯 각 국 공동체 대표들이 홍보와 함께 돌아가며 진료소에 나와 통역까지 해주고 있다.

▲ 30대 몽골 노동자 '몽카' 씨
마침 이날도 통역을 해주는 대표 분이 있어 진료를 받고 나오는 한 이주노동자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몽카란 이름의 30살 몽골 노동자였는데 한국에 온지는 석달 밖에 되지 않았단다. 충치 치료를 위해 진료소를 찾았다는 그는 "이렇게 무료 진료를 해줘서 너무나 고맙고,, 이런 혜택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덧붙여 "한국은 잘 살고 있는 나라, 어려운 나라 사람들을 도와주는 나라"라고 우리나라를 치켜세운다.

언젠가 한 일간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때리지 마세요" 였다는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인권 실태를 소개한 칼럼을 읽은 바 있는데, 문득 그 칼럼이 생각나 더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만, 몽카란 몽골노동자의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이 그대로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건치 비회원도 "함께 해요!"

"치료재료 등은 대부분 회원들에게 뺏어오다시피 해요."

운영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냐는 질문에 현 울산건치 회장이자 진료소장인 변영호 원장이 이렇듯 웃으며 답한다.

진료소 건물 보증금 2천만 원은 2년전 긴급히 회원들에게 후원금을 강제 징수해 마련했고, 월세 40만원과 기타 필요한 장비 및 치료재료 6∼700만원도 전액 건치가 부담하고 있다.

그 밖에 SK 패기봉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운영에 필요한 일정액의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운영재정의 대부분은 건치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 변영호 울산건치 회장 겸 진료소장
시나 구에 지원을 요청할 수 없냐고 물으니, 변 회장은 "정부나 시는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다문화 가정 등의 문제로 지원을 장려하지만, '불법 체류 노동자'들에게는 일체의 지원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보철 진료까지 실시한다니, 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회원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2∼3개월에 한번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회원들이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태연학교 장애인 진료에다 작년부터 중점적으로 시작한 공부방 진료까지 하려니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아직까진 끄떡 없습니다."

그래도 장기화하면 분명 힘들어질 터. 그래서 울산건치는 현재 진료에 참가할 치과의사를 공모중이다.

변 회장은 "건치 회원이 아니지만 실제 같이 하고 싶어하는 원장들이 꽤 있다"면서 "작년 초기에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아서 일단 배제했었는데, 이제는 오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봉사는 혜택받은 자의 '의무'

진료소는 요즘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치과진료 뿐 아니라 다른 진료까지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봉사회인 누가회나 그린닥터스 등에 도움을 요청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여의치는 않아 보인다.

때문에 건치는 임시책으로 올해부터 보철 진료도 시작했는데, 공짜가 아니라 크라운은 3만원, 덴쳐는 10만원을 받는다. 그렇게 받아 모인 돈은 맹장수술 등 이주노동자 긴급의료지원비로 사용하기 위해 별도의 기금으로 조성하고 있다.

변영호 회장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혜택받은 직업이죠. 하지만 그 혜택을 선택받은 직업이라 한다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에게 봉사할 의무도 똑같이 부여받았다고 생각해요"라며 "이러한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건치 회원 뿐 아니라 일반 치과의사들, 나아가 의사 등 타 의료인들에게까지 퍼져서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주노동자의 날인 12월 18일일 따 이름지은 '울산 1218 이주외국인 지원센터'.

"직접 한번 와서 진료를 해보면 뿌듯함을 느낀다"는 변 회장의 말처럼, 앞으로 이곳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웃음을 보며 '뿌듯함'을 느껴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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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홍 기자 2008-04-02 17:21:04
술 한잔 얻어먹고 올라가야지 기대했는데. 회장님이 거부하시더군요. 실망했습니다..

박영규 2008-04-02 14:49:55
진료소 위치는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입니다.
대낮에 취재와서 한잔 하지도 못했겠네... 강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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