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8대 총선, 보건의료공약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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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8대 총선, 보건의료공약을 조명한다.
  • 이진석 교수
  • 승인 2008.04.04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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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향신문과 참여연대가 공동기획으로 경향신문에 연재중인 <18대 총선특집 5대 민생공약 검증 시리즈> 가운데 서울대 의대 이진석 교수가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 (편집자주)

무병장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의 제일 조건으로 손꼽는 것이다. 그런 만큼 건강과 의료가 민생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주장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민생을 강조하고 있는 이번 총선에서 정작 건강과 의료에 대한 각 정당의 공약은 허공을 표류하는 신기루처럼 허전하기만 하다.

대선과는 달리 총선에서는 그야말로 서민의 삶에 밀착된 생활 공약이 나옴직도 한데, 각 정당의 보건의료 공약은 대선 때의 그것을 그대로 옮기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각 정당의 보건의료 공약을 보고 있노라면, 각 정당의 이념과 지향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덧 보건복지에 대한 입장이 각 정치세력의 이념과 지향을 가르는 시금석이 된 듯한데, 이는 이념과 정책에 근거한 정당정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보건의료 공약에서 각 정당의 차이를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쟁점은 ‘의료산업화 정책’이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주식회사 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산업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반면, 통합민주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의료산업화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의료산업화 정책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구조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총선 이후에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종적 감춘 한나라당 대선 공약…공약 질의 ‘무응답’ 일관

한나라당은 의료산업화 활성화, 의료급여 대상자 확대,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보건의료 분야의 중요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선 당시 전향적인 복지공약으로 평가받았던 5세 미만 진료비 완전 면제,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필수예방접종 무료 실시, 취약계층 의료지원을 위한 의료안전망 기금 설치, 건강환경영향평가제도 도입, 건강도시 사업 추진 등은 이번 총선 공약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나라당은 건강보험의 전반적인 보장성 강화보다는 중증 질환이나 희귀난치성 질환, 취약계층에 국한된 보장성 강화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집권 여당의 공약이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추진일정이나 재정확보계획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공약 제목만을 열거하고 있으며, 공약 질의에 대해서도 각 정당 중 유일하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대운하 사업과 마찬가지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도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한 듯 총선 공약으로는 포함되지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체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는 병의원이 건강보험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대운하’ 사업이라 할만한 사안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모호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자유선진당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여당때는 '유보·부정' 정책…야당되니 '찬성'

통합민주당의 총선 공약은 건강양극화 최소화를 위한 의료의 공공성 강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평생건강관리체계 구축 등 지난 대선 공약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대선 때와 비교해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총선 공약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통합민주당은 대선 당시에는 반대했거나 단계적 도입을 주장했던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 중증질환 상병수당 도입, 건강보험재정 지출 효율화를 위한 총액예산제∙포괄수가제 도입, 전국민주치의제도 등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3자녀 이상 다자녀 세대의 건강보험료를 50% 경감한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자유선진당 ‘의료산업화 추진 돌격대’…창조한국당, 대선 당시 '컨텐츠 부족' 극복

자유선진당은 영리의료법인 허용,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산업화 정책을 가장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을 대상으로는 운동 프로그램 보급, 영양지원사업, 방문서비스, 진료비 본인부담 대폭 인하를 약속하고 있고, 40세 이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성인병 예방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건강보험재정 확대나 지출 효율화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도 반대하고 있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의문스럽다.

지난 대선 당시,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지향은 명확하지만,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창조한국당은 이번 총선에서는 비교적 정돈된 보건의료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창조한국당의 공약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향상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업, 재활, 예방, 응급, 가정의학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의 전문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공공의학전문대학원 신설, 산업재해보험을 건강보험에 통합하는 방안 등 다른 정당과는 차별화된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핵심공약 ‘무상의료 실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공히 의료산업화 정책에 대한 강한 반대와 무상의료 실현을 보건의료 분야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두 정당 모두 건강보험재정 지출 효율화를 위해 인두제와 총액예산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고소득층이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도록 건강보험료 상한선을 폐지하고, 건강보험료를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두 진보정당의 정치적 분리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공약에 관한 한 내용적 차별성은 아직까지 확인하기 힘들다.

‘국민 위한 진정성 담긴 공약’에 소중한 한 표를

각 정당의 보건의료 공약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된다.

△ 용두사미 한나라당: 대선 공약 중 돈 드는 정책은 총선 공약에서 대거 빠졌다. △ 망양지탄 통합민주당: 집권 여당일 때 진작 했어야 할 정책을 지금에서야 주장한다. △ 요령부득 자유선진당: 재원 축소와 복지 확대의 모순적 결합 △ 괄목상대 창조한국당: 대선 때의 컨텐츠 부족을 극복, 이제야 구색을 맞추다. △ 초록동색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슬로건에 머문 ‘무상의료’, 이제는 경쟁을 통해 각자의 실력을 입증해야 할 때.

매번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은 민생을 위한 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복지병’을 거론하고, 복지 확대를 ‘퍼주기 정책’으로 비판하는 보수정당조차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거가 지나고 나면, 흡사 썰물 빠지듯이 승자와 패자, 여당과 야당을 가릴 것 없이 나 몰라라 했던 것이 지금까지 반복된 관행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각 정당은 국민건강을 위하겠노라며 숱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게 중에는 국민건강을 위해 반대해야 할 것도 있고, 지지해야 할 것도 있다. 그리고 진정성이 담긴 공약도 있고, 거짓 공약도 있다. 이런 것들을 슬기롭게 분간해서 진정으로 국민건강을 위하는 정당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골방에 묵혀 두었다 가 다음 선거 때 묵은 먼지를 털고 다시 끄집어내 쓰지는 않는지 국민이 엄하게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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