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영의료보험의 제도화와 국민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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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민영의료보험의 제도화와 국민건강보험
  • 김미숙
  • 승인 2008.04.08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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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복지국가 Society(www.welfarestate.net)에 김미숙 정책위원이 기고한 칼럼의 전문이다. (편집자)

321일을 입원한 어느 암 환자의 총진료비는 4천570만원이었다. 국민건강보험은 ‘이 환자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려 3천790만원(총 진료비 기준 82.9% -암 환자로 등록되면 일반 환자보다 더 큰 혜택을 준다)을 지급했다. 나머지 7백80만원(총 진료비 기준 17.1%)은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이 환자는 하루에 암 입원비를 10만원씩 지급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민영보험사에 ‘암보험’을 가입해 놓았던 것이었다. 321일을 입원했으니, 321일 곱하기 10만원이면 3천210만원이 된다. 환자 본인부담 진료비 7백80만원을 내고도 2천430만이 남는 셈이다. 이 환자는 큰 기대를 가지고 민영보험사에 해당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민영보험사는 ‘암을 직접 치료할 목적으로 입원한 일 수’만을 계산해서 10만원씩 지급해 주겠다면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심지어는 소송까지 할 계획이라고 하니 정말 갑갑할 노릇이다. 기대에 어긋나고, 일이 잘못된 것이다.

민영의료보험, 국민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원흉

이 경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시사점을 얻게 된다.

첫째,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도와주는 국민건강보험이 참 고맙고, 애초의 약속조차 저버리는 민영보험의 상술이 야속하다는 것이다. 둘째, 만약 민영의료보험이 입원 일당 10만원씩 지급해주겠다는 약속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 환자는 321일씩이나 입원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 입원의 경우에는 의학적 입원 필요 이상의 사회적 입원 필요가 있었을 것이 자명하다. 결국, 돈 벌이 속셈으로 개발된 민영의료보험의 엉터리 같은 상품(의료이용의 과잉을 부추기는) 때문에 321이라는 장기간 입원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발생한 의료비의 대부분을 국민건강보험이 ‘그 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따지지 않고’ 부담해준 것이다. 결국, 민영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원흉 역할을 한 셈이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는 국민의 병원 선택권 박탈 행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줄곧 의료산업화를 내세웠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고, 이번 총선에서도 그렇다. 의료산업화의 핵심은 민영의료보험의 영리보장과 활성화다.

이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국민건강보험의 위상과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완화 또는 폐지’는 이의 결정판이다. 이것만 넘어서면 의료산업화는 9부 능선을 넘은 것이 된다. 국민(환자)의 병원 선택권은 박탈하고, 병원, 그것도 잘나가는 병원들의 환자 선택권만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 등 소위 잘나가는 국내 보험회사들과 다국적 보험회사들은 살판이 난다. 엄청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들 보험회사들은 당장 ‘의료법’을 고쳐, 의료기관들과 직접 의료수가 계약을 맺고, 직접 진료비 지불을 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선진당 등의 보수정치세력은 조자룡의 헌 칼 쓰듯 기존 의료법을 날려버리고, 이를 개정하려 들 것이다. 의료산업화의 명분 하에 국민의 건강권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 민영의료보험 회사들에는 여러 종류의 민영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는 부자들과 일부 중산층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들 가입자들은 민영의료보험 회사들과 계약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소위 잘나가는 병원들을 자랑스럽게 이용하게 된다. 물론 큰 돈이 들 것이다. 비싼 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물어야 한다.

민영의료보험 가입 절차도 제법 까다로울 것이다. 기존에 중대한 질병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국민의 건강 및 질병에 관한 정보’는 정부의 압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얻게 된단다. 이것이 정부 경제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나온 내용이다.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민영의료보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령, 기존에 주요 질병을 가진 사람들, 높은 수준의 민영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저소득층과 서민들, 다수의 중산층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 이들은 여전히 국민건강보험의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소위 잘나가는 병원에는 가기 어렵다. 좋은 치료, 첨단치료는 국민건강보험의 혜택 항목에서 빠져 있다. 환자 본인이 내야 할 비용 부담도 과거 보다 훨씬 더 커져 있다. 이런 일을 당한 서민들은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무리가 되더라도 기어이 소위 잘나가는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자, 그래야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니, 허리 띠 조르며 민영의료보험 가입을 시도할 것이다. 부모님 병석에 눕혀두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서민들이 즐비해질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보험은 미국식 의료보험제도의 예고편

우리나라 교통사고 환자들의 현실이 본격적 민영의료보험과 뭔가 닮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가 병원에 가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손해보험사의 ‘치료비 지불보증’을 받는 것이다. 손해보험사가 지불보증을 거부하면 교통사고 환자는 병원에 가지 못한다.

한국의 교통사고 환자는 국민건강보험처럼 환자가 병원을 선택할 수는 있다. 물론 손해보험사가 병원을 통제(병원에서 청구한 진료비를 손해보험사가 심사하여 삭감하고 지급한다)하기 때문에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조기 퇴원’을 종용할 수도 있고 ‘과소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많은 환자들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보상금 많이 타 내려는 ‘가짜 환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우리는 한국의 자동차보험이 비효율적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보험료는 매년 인상된다. 민영자동차보험의 관리운영과 이윤에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이 돈은 모두 국민들이 내는 것이다. 멀쩡하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관리운영비는 고작 3.8%에 불과함)을 확충하는 일은 그대로 놔두고, 최소 30% 이상을 관리운영비로 사용할 낭비적인 민영의료보험을 본격적으로 활성화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생각은 도대체 이해하기가 너무도 난해하다.

지금 혼란스럽게 운영되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보험은 미국식 민영의료보험 제도 본격 도입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우리는 어쩌면 이른 시일 내에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방법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연간 재정규모는 약 25조원이다. 상당히 큰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은 우리 국민들이 연간 사용하는 의료비의 약 60%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머지 40%는 국민들이 직접 알아서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지불하든,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든, 국민들이 선택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25조원 규모의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불안정하다고 염려한다. 지출은 크게 늘어나는데, 수입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출 중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악착같이 찾아내서 줄이고, 수입은 최대한 늘리면 된다. 초등학생도 알 법한 이 방안을 왜 이명박 정부만 모르는 것일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사심이 끼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들의 사심은 무엇일까? 민영의료보험 회사들의 돈벌이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소위 ‘기업 프렌들리’ 정부가 아니던가?

이명박 정부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노선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규모를 크게 확충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보장성 수준을 OECD 평균 수준인 80% 이상으로 단박에 끌어올리고, 본인부담 의료비 상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서민과 중산층을 포함한 온 국민이 의료비 걱정 없이 민생을 풍족하게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17%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정부의 국고지원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 선진국 국민들이 부담하는 보험료 수준은 소득의 12%에서 15%에 이르나 우리는 2008년 현재 고작 5.08%다. 더 내고 더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복지국가의 정신에 부합한다. 지금보다 세금을 조금만 더 내고, 보험료를 조금 더 내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온 국민의 건강과 질병의 치료를 완벽하게 보장하도록 하는 길이 우리가 살고 싶은 복지국가의 길이다.

그러자면,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논의는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 등 국내 굴지의 보험기업들과 다국적 보험회사들이 하고 싶어 하는 ‘영리추구가 본질인 민영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 복지국가의 적이기 때문이다.

김미숙(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보험소비자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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