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총선에서 복지국가를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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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총선에서 복지국가를 고민하다
  • 김창보
  • 승인 2008.04.14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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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사)복지국가 SOCIETY에 실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창보 소장(사진)의 글이다.

총선이 끝났다 

총선이 끝났다. 대선이 끝난 뒤 100여일 만에 치루어진 총선이라 결과는 사실상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 프레임이 여전히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 심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보수세력의 승리가 예견되었고, 지역구도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의 권력다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야당세력의 권력다툼이 있었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단지 중요한 사실은 보수세력의 국회 권력 장악이며, 그것도 200석이 넘는 보수세력의 탄생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제1야당이 된 통합민주당 역시 보수적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에 당선된 통합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필자의 심정은 그저 담담하다. 이미 대선 전부터 예견된 결과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예상된 결과가 확인되기까지 지루하고 길었던 시간이 끝나 차라리 홀가분하기도 하다.

이제 총선을 통한 정치세력의 재편은 끝났고,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할 시기다.

이번 총선의 결과와 진보정瑛?움직임 

이번 총선 결과는 그다지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었다. 그저 예상된 결과를 확인하는 다소 심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에서 우리는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를 향한 큰 흐름을 향해 나가는 데 있어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점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결과와 동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분열되어 각각 총선에 임했다. 과거 진보정당을 지지하던 표들이 분열되어 표현된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예전에 민주노동당이나 한국사회당을 지지했던 표들 중 일부는 창조한국당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러한 분열은 결국 지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10명의 의원을 국회에 진출시켰던 성적에 비하자면 반토막인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단지 ‘분열’로 인해 총선 결과가 나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평가가 끝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진보정당의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재선을 하기도 했고, 수도권에서 40% 이상의 득표를 하면서 선전하였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으며, 보편적 정치세력으로 인정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7대 국회 4년을 되돌아본다면 4년 전 총선에서 민노당이 거둔 성적은 준비된 실력에 비해 거품이 포함된 것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는 민노당에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표현된 것이다. 창조한국당이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정당에서 이탈한 표를 흡수한 것이다.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모두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대선 이후 진보정치의 재구성이라는 화두가 던져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이 과거에 비해 넓고 다양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생태․평화․복지 등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진보의 가치를 발견하고, 여기에 진보의 중심을 옮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진보정당운동의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발견된다.

한국사회당에서는 ‘사회적 공화주의’를 내세우며 진정한 사회권이 보장되는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도 ‘사회국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복지사회,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과 진보적 가치를 수용하고자 하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났으니 이제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다행히도 살아남은 진보신당, 그리고 해체 후 다시 재건을 모색하는 사회당 등 여러 진보정치세력들이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진지한 고민과 모색의 시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에게 그 동안 복지국가의 전망을 내걸고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고민하고 내용을 축적, 확산해오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량 지원과 참여적 교류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랫동안 곱씹어 봐야할 고민 - ‘88만원 세대’의 보수화

이번 총선 결과에서 참으로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이야기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통칭되는 20대들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 소식을 듣고 있으면 소화가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다. 그들을 뭐라 탓하기엔 그 몹쓸 놈(?)의 책임감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는 지금 20대들에 대하여 희망을 찾기 어렵고, 신자유주의적 피해가 가장 집중되어 역사적으로 무시되고 착취당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는 희망은 거저 주어지지 않으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희망을 만들기엔 역량이 부친다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88만원 세대’로 만들어진(!) 그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한국 사회의 현재 구조를 깨고 나와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 끌어주어야 할 필요와 계획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곱씹으며 고민해야 할 과제일 듯하다.

개발주의 공약을 넘어서기 위한 준비를 하자

이번 총선은 쟁점과 의제가 거의 없었다. 농담 삼아 ‘공천’이 최대 쟁점이었다고 할 정도다. 누가 공천되었고, 안되었으며, 안된 자들은 탈당하여 출마하며 표를 구걸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난 누구와 친하다”는 식의 전대미문의 당이 출현했으며, 무려 14명의 당선자를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한반도 대운하’와 영화 식코(Sicko)가 계기가 되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정도가 거론되었으나 한나라당이 김빼기식 무대응으로 일관해 의미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지역구 선거 현장에서는 공약 경쟁이 더러 있었다.

하나는 지역개발 공약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교육문제였다. 진보정당 후보를 제외하고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들이 지역개발, 특히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으며, 특목고 유치를 약속했다.

이 두 가지 공약은 당선을 위해(!) 무조건 후보들이 내걸어야만 했다. 일부 진보 후보들을 제외한 여야 모든 후보들이 최근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그릇된 욕망과 이기심의 투표 행태’에 굴복한 것이다. 

서울에서 54년 만에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기록을 만들 뻔했던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가 한나라당 정치신인에게 밀려 패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회찬 후보는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지역개발 공약과 특목고 유치를 내걸지 않았다.

이것이 선거전 여론조사에서 13전 13승을 기록했던 노회찬 후보가 패배했던 주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노회찬 후보는 선거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개발이 곧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며, 이것이 우리 삶의 수준과 질을 좋게 할 것이라는 ‘개발주의’의 보편화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는 점이다. ‘뉴타운 건설’이라는 대표적 개발공약이 ‘개발 = 삶의 질 개선’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퍼뜨린 것이다.

이 기괴한 논리의 배후에는 자산 가치의 증대를 통한 불로소득이라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하냐, 취약계층에 집중적인 선별적 복지를 해야 하냐는 거론될 여지가 없었다.

‘복지 vs 반복지’의 선거 프레임이 만들어질 여지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단지 이런 주장을 할만한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앞장세울 '정당‘이 없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발주의‘가 만연해 있으며, 이것이 중심적인 선거 프레임이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개발주의 프레임’을 넘는 게 우리의 숙명적 과제이다. 이것을 넘지 못한다면 ‘복지국가 담론’이 국민적 담론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토건주의, 토건국가’를 반대하고 생태를 유지․복원하며, 토건에 지출될 비용을 ‘보편적 복지’에 사용하는 생태-복지의 연대운동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것이 아닐 수 없다.

복지국가의 담론과 전망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이를 현실화시켜 머지않은 장래에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 총선 결과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우리사회의 지식인, 활동가, 일반 국민을 포함하는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을 포함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에게도 더 많은 숙제를 내고 있는 것이다.

김창보(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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