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노사관계에 학생들까지 동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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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노사관계에 학생들까지 동원하다니...”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4.10.1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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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4일) 열린 서울대 치과병원 개원기념식은 치과계 인사 모두가 축하를 해야만 하는 자리였다. 국립병원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법인화한 서울대 치과병원의 개원은 우리나라 치과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는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영일 초대원장도 이날 기념사에서 밝혔듯이 서울대 치과병원의 개원은 단지 서울대 치과병원 관련자뿐만이 아니라 치과계 인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수 년 전부터 노력해온 땀방울의 결실임을 생각해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축복받아야만 할 이날 개원기념식은 시작 전부터 어수선하기만 했다.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서울대병원노조원들이 기념식장 앞에서 “합의각서 이행 등”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이들이 외쳐대는 구호 소리는 기념식 내내 식장 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식장을 빠져나오는 병원 관계자들 앞에서 더욱 목청을 높여대는 노조원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빠져나오거나 간혹 고성도 질러대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병원 관계자와 내외 귀빈들.

그러나 서울대 치과병원 당국과 서울대병원노조원들과의 갈등은 ‘서울대 치과병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1층 현관 앞에서 더욱 크게 벌어졌다. 오랜만에 장영일 병원장을 대하게 된 노조원들의 강력한 ‘면담 요구’와 이를 가로막고 나서는 병원관계자들의 몸싸움은 참으로 치열하기만 했다. 때때로 심한 고성이 오고가기도 하는...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간단한 고사떡과 음식물들을 나누고 나서 ‘이제는 다 끝났겠지’하는 마음으로 서울대 치과병원 홍보실을 나와 출입구인 2층 현관 로비 앞으로 올라왔을 때, 사건은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장영일 원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어디론가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고, 현관문을 열고 따라 들어오려 하는 노조원들과 이를 막아 세우려는 병원 관계자들의 몸싸움은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위대와 전경들의 몸싸움마냥 매우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현관문의 열쇠를 걸어 잠그고 마는 병원 관계자들. 그리고 이에 따라 터져 나오고 있는 거친 목소리들.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한 환자의 가족은 결국 이를 지켜보다 다른 길을 찾아 발길을 돌이켜야 했고, 노조원들의 거센 항의 속에 장영일 병원장이 사라진 한참 후에야 결국 병원 현관문이 열리고, 그리고 나서도 한참의 치열한 몸싸움 끝에 노조원들은 병원 로비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결국은 한 남자 노조원과 흰 가운을 입은 학생(?) 간에 막말이 오고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여성 노조원의 입에서는 “아니, 노사관계에 학생들까지 동원하고 있어? 이러다 안 되면 아예 용역 깡패들까지 동원하겠네?”하는 말까지 쏟아져 나왔다.

축복받아야 할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이날의 사건은 기자를 참으로 착잡하게 만들었다. 현관문을 나서지도 못하고 함께 취재 나온 치과계 전문기자들과 함께 꼬박 20여분을 지켜보아야 했던 심정은 기자이기 이전에 함께 치과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왜? 이래야만 하는가?”하는 자괴감을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자의 본분도 다 잊고, 더 이상 사진을 찍어볼 생각도 없이, 아까 ‘학생’이라고 지목받은 사람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해 볼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우두커니 서서 모든 사건의 추이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 이번의 몸싸움이 병원 밖으로 차를 타고 나가려는 장영일 원장의 차 앞에서 노조원들이 길을 막고 드러누우면서 시작되었다는 정도만 확인을 한 채...

현재 서울대병원 노조는 ‘어용노조 해산과 합의각서 이행 등’을 요구하면서 장영일 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고, 서울대 치과병원은 지난 2003년 7월 25일 ‘치과병원 분립에 관한 사항’에 대한 합의각서 내용 중 ‘치과병원 분립 시 재직직원에 대하여 고용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하고 단체협약, 노동조합 승계는 승계요건이 갖추어 지는 데로 승계’한다고 했으나, “여기서 말하는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 노조가 아니다”면서 노조 측과의 협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모두 사람이 축복받아야만 할 시간과 장소에서 이런 몸싸움이 벌어져야만 하는 현실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기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지금이 5공이야? 아니면 4공, 3공이야?” 합의각서에 찍은 도장의 인주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면서 울부짖는 한 노조원의 거친 고함 소리가 뒤돌아 걸어 나오는 기자의 가슴에 내내 남아 떠나질 않고 있었다. 아직도 '투사'가 필요한 시대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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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헌 2004-10-19 19:01:36
2층 로비에서 고성이 오가길래 나가봤습니다. 서울대지부 노조원과 치과병원의 장기택, 한중석, 이종호 교수가 서로 싸우고 있더군요. 특히 이종호 교수 많이 흥분했습니다. 분위기 봐선 주먹이 오간것 같은데 이종호 교수 말리느라 정심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재봉 교수가 학생들보고 막으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날 저녁엔 치과병원에서 전공의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지난 파업기간에 열심히 일 잘했다고 사주는 거라는데... 병원장이하 무슨 말을 하나 보러 갔습니다. 병원장이 교수와 전공의는 하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앞으로 잘될거라고 하더군요. 병원장은 이번 기회에 노조 서울대지부와 관계를 아예 끊어버리겠다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전공의들, 왜 병원장 이야기에 박수치는지 모르겠더군요. 참내... 우울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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