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진료단] 평안한 아침의 나라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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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진료단] 평안한 아침의 나라를 꿈꾸며
  • 최이영
  • 승인 2008.05.06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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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럼촌 위령비를 다녀와서

진료 둘째날, 점심을 먹고 위령제 참가행 버스에 올랐다.

창밖 한가한 경치,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를 통해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땀을 잔뜩 흘리며 자기를 2시간 남짓, 드디어 위령비에 도착. 구수정 선생님의 감정이 배제된듯 객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 뇨럼촌 위령비 앞에서 참배중인 평연 9기 진료단

지금 잘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의 설명을 자료집에서 빌리자면
"한국군들이 각종 수송기를 타고 고보이 늑만 년한사 등에 착륙, 푹흥사 뇨렴촌으로 수색작전을 들어옴. 오전부터 각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펼치던 한국군들은 주민들을 토끼 몰이를 하듯 암싹루옌으로 몰아넣음. 오후 2,3시경 남자와 여자들을 2패로 가르고 먼저 여성들을 향해 세정의 다연발총을 거치 쏘아죽인 뒤 남성들을 각 땅굴 속으로 밀어 놓고는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아 죽임. 그밖의 여성을 강간하고 아이의 몸을 찢거나 머리를 부러뜨려 우물에 던져 넣기도 함. 이 뇨럼 양민학살로 136명이 희생되었고 시신은 한국군에 의해 불태워짐"

정적.. 분향

▲ 진료단은 위령비 참배를 마치고 근처에서 사탕수수 쥬스 한잔씩으로 목을 축였다.
위령비 앞 가게에서 각자 사탕수수 주스 하나씩을 주문했다.
달짝지근한 맛. 곁들어져 나온 소금 한종지. 베트남 학생들은 익숙한 듯 조금씩 주스에 떠넣는다. 더 달아진다는 말에 이성오 선생님께서 한숟갈 푹 떠 넣으신다, 알 수 없는 표정. 짤텐데^^;
시원한 주스에 마음의 무거움이 약간 가셔진 듯 하다. 연이은 이준용 선생님의 온리 잉글리쉬~ 베트남 여학생들이 꺄르륵 웃는다.
구수정 선생님께서 꽃 하나를 집고 설명중이셨다. 히아신스, 목련꽃 같은 진주빛이다.
베트남에 많은 꽃이라고 하셨다. 향기로워 모자에 꽂아 넣었다.
나중에 찾아본 히아신스의 꽃말은 추억, 사랑의 슬픔이란다.. 앗..^^;

위령비 앞. 쨍쨍 맑은 날씨와 시원한 주스, 웃음, 향기로운 꽃속에서 약간 망설여지는 산자의 묘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곳은 쉽게 찾아가기 힘든 곳이라 이곳에 위령비가 세워졌다고 했다. 우리는 실제 그곳도 찾아가기로 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마을 입구쯤 차를 세웠다. 이제부턴 걸어가야 된다고 한다. 얼마나 가야는지..먼저 드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양옆에 쭉 펼쳐진 시원한 논길을 따라가니 오히려 피곤이 가셔진다. 마을꼬맹이들이 방과후인지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데 커다란 눈에는 호기심과 수줍음이 가득하다. 호기심이 이겼는가보다, 일행이 내주는 껌을 집는다.
커다란 물소를 몰고 가는 어른들의 얼굴에도 호기심, 왠 외국인들인겨..^^

원선아 선생님이 길가의 한 풀잎을 건드린다. 수줍음 나무라고 했다. 과연,, 건드리자마자 잎들이 오그라든다. 뒤이어 박의영 선생님이 좀 큰 나무를 건드렸다. 오그라드는데 한참 걸린다. “정말로 나이들면 수줍음이 없어지나봐” 주위 일행들 웃음~
20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논의 한가운데 풀밭. 이곳에서 136명이 희생되었다고 했다.조그만 둔덕같은 곳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의 무덤이라고 했다. 여성들과 아이들의 죽음이 많았다는 학살. 다시 정적이 흐른다, 분향.

중고등학교때 국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불만 중의 하나는 항상 약자의 위치에서 서러움을 느껴야 하는 우리 민족의 입장이었다. 한번쯤은 강자의 입장에 있어봤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농사 짓고 예를 중시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칭호가 결코 반갑지 않았고 적극성이 결여된 민족으로 보였으니까.

반면에 과거 우리가 입은 상처에는 사실여부의 확인을 떠나 먼저 감정을 앞세워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리고 위령제를 다녀와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한국군들의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 접했다. 역사에 한번쯤은 하고 바랐던 비뚤어진 강자의 입장이었다.
죽은자는 말이 없으나 남은자의 슬픔과 분노는 어찌해야 되나. 가해자를 평생토록 옥죌 죄값의 무게, 같은 켠에서 지켜보는 자들의 마음속 무거움은 또 어떻해야 하나.

그저 마음이 안좋았고 분향내내 그러했던 것 같다.
위령제 참가 이후 달라진 생각은 전엔 약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지금은 강자의 입장도 내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다들 내적인 평안을 유지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최이영(한의사, 베트남평화의료연대 9기 진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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