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창 -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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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창 - 그들만의 리그
  • 신순희
  • 승인 2004.10.18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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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는 위대한 여성미술가가 없는가?
▲ 서세옥, 1986, 사람들
국민배우 최불암, 국민가수 이미자 등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일명 국민예술인인 것은 알겠는데 국민화가는 누구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그래도 박수근, 김환기, 김기창 등의 화가 이름은 들어보았으니 아마 그들 중 누군가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예술분야에나 새털만큼 많은 예술인들이 치열하게 작품을 창작해 내지만 일명 '국민'의 반열에 오르는 이는 고작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하긴 그래야 '국민'이지 않겠는가.

이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분야에서 '국민'의 반열로 평가받는 위대함(Greatness)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즉 어떤 작품이 국립미술관에 안장되고 어떤 작품은 싼값에 떨이가 되는지를 구분하는, 미술을 미술로 만드는 가치평가의 준거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대한민국 현대 미술사에서 위대함이란 '한국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술 평론가들이 '한국적 미의 구현', '한국성의 작가' 등의 표현을 쓰면 이는 곧 그 작품이 위대하다는 뜻이요, 비싼 작품이 될거라는 뜻이요, '국민'반열의 후보에 올랐다는 뜻이된다.

미술, 즉 시각적 이미지는 일종의 기호(sign)이다. 기호는 표면적인 뜻을 나타내는 형태(form)와 내면의 상징을 나타내는 의미(meaning)로 분석 가능한데, 예를 들면 흑인 병사가 프랑스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는 그림이 있다면, 그런 설명은 형태(form)를 표현한 것이고, 제3세계 식민지의 피지배 계급이 제국주의를 향해 복종을 서약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하면 그것이 의미(meaning)를 부여하여 읽어낸 것이다.

이런 분석틀을 가지고 위대한( 혹은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을 관찰하면 '한국성'이라는 이미지에 공통된 형태(form)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추상 (구상이 아닌)

2. 서정적 추상 (기하 추상이 아닌)

3. 반복적 형태 (관찰 뎃생이 아닌)

4. 중성적 단색 (화려한 색채가 아닌)

5. 즉흥적 붓질 ( 세밀한 묘사가 아닌)

주로 위와 같은 형태(form)의 작품을 우리는 한국적이라 칭하며, 일명 "쌀 냄새가 난다"는 등의 의미(meaning)를 부여하며 감흥에 젖는다. 그런데 왜? 왜 유독 위와 같은 특정한 형태에 우리가 한국성을 느끼는지 물으면 혹자는 유전자란다. 우리 유전자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코드가 그렇게 입력되어 있단다. 설마...

유전자라 하면 더 이상 말문이 막혀버리기는 하지만, 아직 헤어진지 50여년 밖에 안된 북한 유전자가 전혀 다른 형태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걸 보면, 그게 이유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한국성의 역사화 과정을 분석, 해체 해보자. 생각보다 재미있다.

추상미술은 한국 현대미술의 원년이라 부르는 1958년, 우리나라에 유입됐다. 사의의 미술이나 서화가 미술 주류였던 한민족에게, 추상이 원래부터 전통이었다는 일반적 해석과 다르게, 서양화의 추상표현주의는 그때부터 국내에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이 전세계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획득하며 세계 1인자의 지위에 등극하던 시절로, 문화전통의 부재라는 미국의 유일한 대유럽 콤플렉스 극복이 필요하던 때였다. 이런 시기에 유럽기반의 미술사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형식주의, 모더니스트 미술인 추상 표현주의의 전세계적 확산은 필연적 요구로 작동한다. 큰 canvas에 흘리고 뿌리는 야성적, 남성적 추상 표현주의 미술은 전통부재의 컴플렉스를 오히려 야성으로 극복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 미국이 문화적 헤게모니마저 쟁취하는 길을 연다.

▲ 박수근, 1950, 애기업은 소녀
1960년대, 한국의 추상은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미국이라는 기호는 세계최고이자 자유진영의 주류 기호로, 냉전시기 역사화, 인물화가 주류였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비되는 안전한 미술이었다. 레드 콤플렉스가 만연한 사회에서, 조금만 적과 닮아 보여도 보도연맹에 끌려가는 사회에서, 안전하며 출세 가능하기까지 선택은 서구적 자유진영의 추상 기호였고, 반세기 대한민국의 현대 미술사는 그 기호를 한국적 기호로, 전통으로 만드는 역사에 다름아니었다.

또다른 특징인 반복적 형태, 중성적 단색조, 즉흥적 붓질이라는 한국성의 역사화 과정에는 반일본의 정서가 있다. 1960년대 미술사의 주류였던 문인화 운동이 일본색 척결운동의 다른 이름이었고, 반일본의 정서는 결국 일본 점령이전, 즉 조선 시대의 미술에서 한국성을 찾게 된다. 특히나 일본화의 특징이 사의의 미술이 아닌 사실미술(realism)이고 관찰 뎃상, 자세한 묘사, 화려한 색채등 과학적 그림이 주류였기에 그 정반대의 위치에 '한국성'이 서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 미술에서 한국성으로 불리는 추상, 문인화, 반일본, 조선 등의 기호들은 식민과 냉전이라는 정치 역사적 지형이 우리에게 전적으로 내면화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문인화가 '풍류' (일 안하는 양반 남자들이 술마시며 기생의 치마폭에 그리는 그림)로 표현되는 남성적, 계급적 개념이고, 반공 이데올로기 또한 젠더 이데올로기를 심층 내면화함을 고려할 때, 이제 우리안에 기록된 역사의 결과물로 위대한 '가부장적 한국성'의 개념 속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는지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한국 미술의 '위대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남성적 가치 기준인 틀 속에서는 위대한 여성 미술가란 있을 수 없다.

나혜석, 천경자처럼 우리에게는 위대하지는 않으나 유명한 여성 미술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술가의 삶보다 팔자센 신여성의 파란많은 삶으로 기억되기 일수다. 일제 침략으로 조선의 가부장적 문화 질서가 흔들리며 여성 모던 문화가 유입될 때 탄생한 여성 미술가는 그 탄생 자체가 현대적 현상이며 일제와의 관계 속에 있다. 그 시대 대부분의 남성 미술가들이 국졸 정도의 학력일때 두 여성 모두 일본 유학을 한 학력이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여성 미술가들의 이미지는 서구 브루주아적이며, 일본색을 띤 '위대하지 못한'작가들일 수 밖에 없다. 정 위대한 미술가가 되고자 한다면 남장을 했던 여성 정치가 김옥선처럼 명예남성의 지위를 획득하여 여성임을 포기하는 수 밖에.

우리가 진리로 알고 있는 어떤 체계가 그렇지 않겠는가만은, 우리안에 내제된 한국성의 개념은 이처럼 윤리성이라는 2차 담론이 개입되어 있다. 그 패러다임을 그대로 두고는 소외된 여성의 역사를 조명할 수가 없다. 강자의 논리구조로 소외된 역사를 조명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여성미술사건, 좌익 독립운동사건, 노동자의 역사건 마찬가지로 그렇다.

그들만의 룰과 그들만의 가치기준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세상은 반쪽, 혹은 그 반쪽이다. 기준을 정할 권력이 있는 자들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결과물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그 외 모두를 타자화하는 횡포가 아닐까?

친일파들은 그래도 능력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어느 신문의 사설이나, 능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는 어느 교육자의 말이 문득 겹쳐진다.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편협된 시각속에 안보이던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야 말로 페미니즘이 세상속에 가지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의 창을 통해 보는 세상은 그래서 넓을 수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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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희 2004-10-19 09:46:56
지적하신대로, 서세옥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그것은 곧 그의 그림이 기준이 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위대한 한국성의 기준말입니다.
위에 제시한 서세옥의 그림은 그런 주류적 기호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서 첨가해 보았습니다. 추상, 단색조, 반복적, 즉흥적 붓질이라는 주류 형태(form)를 가장 극명하게 구현한 작품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그림입니다.

서세옥과 박수근을 구분하시는 선생님의 평가 기준은, 이해는 되지만 그 또한 당파적 시각을 드러낸다고 보여집니다. 그 어느 평가기준이 당파적이지 않겠습니까만은요.

송학사 2004-10-19 06:47:25
제시되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어 궁금합니다.

박수근 화백은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라는 것에 이의가 없지만,
서세옥이라는 사람은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서세옥의 예술의 성취 수준은 나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몰라도, 그 사람의 삶의 행적은 쓰레기 같은 사람입니다.
서울대 동양회화 분야에 실세중의 실세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집안에서 고등학교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액과외로 치부를 하고, 밖으로는 파벌과 인맥을 조성하여 서울대만의 배타적 권력을 휘두른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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