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판의 절 봉은사
불교의 성쇠가 함께했다
말죽거리잔혹사의 배경이 되던 시절, 지금의 COEX자리 일부와 길건너 한전본사가 있는 곳은 석촌호수 비슷하게 탄천이 범람하던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곤 했다. 아파트값 비싸기로 유명한 대치동도 배추, 무밭이 널려있는 개발초기의 도시외곽의 모습이었고. 물론 그때도 봉은사는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봉은사는 지금 못지않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한때(성종대) 억불정책을 주장하는 유생들의 폐사요구가 빗발치는 위기를 겪고 명종대 문정왕후의 세력을 업고 보우가 불교중흥에 힘쓰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봉은사 앞 벌판에서 수천명이 선과(禪科, 승과)를 응시하여 이곳은 승과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산대사나 사명대사가 이때의 승과를 통해 배출된 인물들이다.
이 봄, 보우의 선시 한구절을 다시 본다.
춘산즉사(春山卽事)
봄이 되매 오히려 일이 많아지니
사람들은 스스로 한가롭지 못하도다
스님은 재(齋:공양을 올리면서 행하는 불교의식)를 찾아 속세로 내려가고
벗을 찾는 나그네 산으로 오는도다
바람이 부드러우니 싹이 트고
햇살이 따스하니 새들이 지저귀는도다
오로지 나 홀로 병이 들어 나태하니
이 도량을 벗어날 길 없도다
- 1939년의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새로 지어졌다. 서울시문화재인 선불당도 40년대의 건물이다. 잘 알다시피 판전의 현판은 추사의 글씨다. 판전의 경판과 동종 등의 여러 문화재도 있다. 보물인 고려시대(1344년) 은입사향로는 현재는 동국대박물관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