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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이헌재 부총리의 정체
2005년 03월 05일 (토) 인터넷참여연대 desk@pspd.org

1944년에 상해에서 태어난 이헌재 부총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라면, 이헌재 부총리는 대표적인 최고 엘리트형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회창씨와 아주 비슷한 인물이다. 먼저 그의 학력을 보자.

1962 경기고등학교
1966 서울대학교 법학과
1981 미국 보스턴대학원 경제학(석사)
1982 미국 하바드대학원 경영대학원

그가 이른바 ‘KS’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1990년대 이후 큰 유행이 되는 미국 경영학 학위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가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능력인가?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에 한국 경제를 지휘했던 인물은 강경식 씨였다. 1997년 3월에 경제부총리를 맡았다가 같은 해 11월에 외환위기로 해직되고, 1998년 5월에는 외환위기로 감옥에 가야 했던 그를 대신해서 한국 경제를 지휘하게 된 인물이 바로 지금의 이헌재 부총리였다. 한때 강경식 씨의 부하였던 그는 강경식 씨가 몰락한 자리에서 ‘한국 경제를 IMF 수렁에서 건진 해결사’이며 ‘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을 이끈 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극찬을 받게 된다. 요컨대 그는 단순한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탁월한 ‘경제개혁의 능력’을 가진 경제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경제전문가로서 그의 이력은 그의 화려한 학력보다 더욱 화려하다. 그는 박정희가 영구집권의 뜻을 굳히던 1968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관료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승승장구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잠시 그의 이력을 보자.

1968 제6회 행정고시 합격
1969 재무부 기획관리실
1970 재무부 이재국
1973 대통령 경제비서실 근무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 파견
1973 IBRD 주재관
1974 이재국 금융정책과장
1978 재정금융심의관
1979 한국개발연구원 초청연구원
1982 대우(주) 상무이사
1984 대우반도체(주) 대표이사전무
1985 한국신용평가 대표이사사장
1991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의원
1997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1999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
1998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겸 경제구조개혁기획단장
2000 제3대 재정경제부 장관
2001 (주)KorEI(Korean Enterprise Institute) 이사회 의장
2002 서울대 경영대 초빙교수
2004 제4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그런데 그가 과연 ‘경제개혁의 전문갗일까? 그가 과연 ‘한국 경제를 IMF 수렁에서 건진 해결사’이며 ‘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을 이끈 구조조정의 전도사’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요구대로 한국 경제를 미국화하는 데 앞장선 사람일 뿐이다. 한 인터넷 언론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헌재 ‘재경부 마피아’가 문제의 핵심’. 브레이크 뉴스, 남혜경).

"실제로 그는 외환위기가 닥친 97년 12월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에 취임한 이래 재경 분야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월가의 기준을 한국에 관철시킴에 따라 구조조정을 120% 성공시킨 공로로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여 왔으며, 소위 ‘국제’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1998.09 글로벌파이낸스(GF) 국제금융계를 주도하고 있는 힘있는 600명에 선정
1999.05 홍콩의 월간 아시아머니지로부터 올해의 구조조정기관장으로 선정
1999.05 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에서 16위로 선정
1999.06 미국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하는 아시아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에 선정
2000.05 주간지 아시아위크 아시아파워 50에 16위로 선정
2000.05 홍콩 금융전문지 아시아머니지 올해의 재무장관 선정

청와대가 그의 경질을 계속 망설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 재산의 4할을 꿀꺽 삼킨 것으로 평가되는 IMF체제의 적극적 대리인으로서의 이헌재, 그의 경질은 국제 사회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재경부장관에 이어 경제부총리 겸직조차도 사실상 노대통령의 정상적인 인사권 행사였을 지조차 상당히 의심스럽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헌재 부총리와 ‘재경부 마피아’는 한국 경제의 미국화에 앞장서서 그 입지를 굳힐 뿐만 아니라 놀라운 재테크 능력도 발휘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경부라는 어물전의 최고관리자를 비롯한 일꾼들이 모조리 고양이들이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양극화’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쟁의 이름으로 ‘미국식 승자독식’의 논리가 너무도 강화되어 ‘40대 60의 사회’가 ‘20대 80의 사회’로, 이어서 ‘10대 90의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동산 투기꾼들이 좌지우지하는 비정상적인 건설경기의 활성화정책은 이런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2004년 12월에 김광수 경제연구소가 밝혔듯이 우리 경제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주범은 바로 부동산 투기이다('미디어다음'의 관련 기사 참조). 그런데도 부동산 투기의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는 까닭은 ‘재경부 마피아’처럼 올바른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할 당사자들이 바로 그 문제의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 마피아’야말로 경제개혁의 핵심대상이다.

노무현 정권은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전국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들이야말로 부동산 투기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투기를 잡기 위한 강력한 정책이 일관되게 펼쳐진 뒤에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 모순이 빚어지는 것이다. 누가 이런 모순을 빚어내고 있는가? 바로 이헌재 부총리이다. 그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국에 수백개의 골프장을 짓고 1가구 3주택 중과세를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래도 이런 망국적 주장의 바탕에는 그와 부인의 오랜 재테크 경험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부동산 매매로 7년 사이에 65억원을 벌었고, 2004년 한 해에만 5억원 가까운 돈을 벌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그의 부인이 보여준 행태는 틀림없이 ‘복부인의 전형’이다.

3월 3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이헌재 부총리는 국민에게 사과는 했지만, 결코 사의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들은 결코 ‘부동산 투기꾼’ 부총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느린 말로 빠른 셈을 감추었던 그의 후안무치한 정체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투기정책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이헌재 부총리는 즉각 경질되어야 하며, 철저한 세무조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홍성태(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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