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꿈] 35년 만에 되살아난 베트남 전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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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35년 만에 되살아난 베트남 전쟁일기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6.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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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제1부 베트남 여성이 본 전쟁 - (1)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2005년 7월 베트남에서 베트남전쟁 때 사망한 여의사의 일기를 신문에 연재했다가 출간하자 사회의 반향이 뜨거웠다. 2천 권만 팔려도 성공이라는 베트남 출판계에서 무려 43만 권이나 팔렸으니, 이 열기가 2005년 베트남 10대 뉴스에 선정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 베트남 판 일기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1968년 4월 8일

열악한 상황에서 맹장을 수술했다. 마취제인 노보카인 몇 대 놓은 것이 전부였다. 어린 부상병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미소로 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지쳐서 바짝 타들어간 입술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베트남판 일기맹장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뱃속에 염증이 생겨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원인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뱃속에 항생제를 투여하고 카데터를 박아 밖으로 내고 다시 꿰맬 수밖에 없었다. 의사로서의 번민과 부상병에 대한 동정심이 소용돌이친다.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너 같은 사람조차도 고치지 못한다면 내 의료 경력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될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났다.

『1970년 6월 20일

… 중략 …

쌀은 오늘 저녁 해먹으면 끝이다. 가만히 앉아서 부상병을 굶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든 나간다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 중략 …

▲ 당 투이 쩜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나는 다 컸다. 역경 속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지금은 엄마와 부드러운 손길이 몹시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거나 친한 사람의 거친 손길이라도 좋다.
내게 다가와서 외롭고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주고 눈 앞에 다가오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사랑과 힘을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기를 쓴 당 투이 쩜(Dang Thuy Tram : 1943 ~ 1970)은 1966년 하노이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여성임에도 포탄이 퍼붓는 남베트남으로 자원해서 내려와 게릴라 부대의 야전병원 외과의사로 근무했다. 마지막 일기를 쓴 이틀 뒤인 1970년 6월 22일 고립된 부상병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산에서 평야지대로 내려가는 길에 미군의 매복에 걸려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투이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것은 라디오, 쌀 주머니, 진료기록부, 마취제 노보카인 몇 병, 붕대, 민족해방전선 장교의 사진과 그에게 쓴 시, 그리고 이 일기였다.

(계속)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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