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물봉선이 진짜 봉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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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물봉선이 진짜 봉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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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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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우뚝하게 일어서 봉(鳳)의 형상을 하므로 봉선화라는 이름이 생겼다.
“울 밑에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아련히 가슴이 저미어오는 이 노래는 홍난파 곡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였다 한다. 암울한 시대 상황을 표현한 이 노래는, 그러나 나를 두 번이나 울렸으니 하나는 홍난파의 친일행적 때문이요, 둘은 봉선화가 이 땅의 자생 꽃이 아님이다. 이 땅에 가득히 자라는 진짜 봉선화, 물가에 자라는 물봉선이 우리 것이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로 대중가요에서 표현되는 봉선화는 인도, 동남아시아 원산이다. 씨방을 만지면 그냥, 살짝 툭 터지면서 씨가 아래로 떨어진다. “touch-me-not, 손대지마. 손대면 터져 버릴 거야.” 그러나 너무 싱겁다. 물봉선이 진짜 touch-me-not 이다. 손대지마. 손대면 폭발해 버릴 테다.

처음으로 물봉선 씨방을 만지던 날, 나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 했다. 무심코 만진 씨방은 무슨 벌레가 놀라서 몸을 순간적으로 움크리는 듯 하더니 폭발해 버렸다. 씨가 아래로 살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솟아 오르면서 포탄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들꽃기행에서 한 아이를 불러 씨방을 만져보게 했다. 물론 놀라지 않게 폭발한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모두들 신기해 했다.

▲ 열매의 모습으로 폭발하듯이 터지면서 씨가 날아간다.
물봉선을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어느 야생화 사이트에서였다. 꽃이 참으로 고고해 보이고 귀해 보였다. 작년 늦은 여름, 이놈을 찿아 다녔다. 한번도 실물을 본적이 없어, 꽃이 피지 않은 식물체를 보고는 알 수가 없으니, 꽃 모양만 열심히 바라보고 다녔다. 서식지가 물가이니 야산 작은 계곡 주변을 돌아다니면 볼 수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벌초하는 날, 드디어 이놈을 만났다. 인근 조그마한 계곡에서 요 귀여운 것들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이것들을 무진장 만나게 되었으니...

가을 어느날 매주 들리는 인근의 야산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개울가에 물봉선이 만개해 있었다. 바로 지척에 두고서 찿아 헤메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어떤 이는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느낀다고 하더니, 들풀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또 한번 실감했다.

그 후 다니는 길목마다 물봉선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은 꿈엔들 알았을까. 경상도 말로 그야말로 천지삐까리 였다.

▲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물봉선은 꽃의 앞부분이 두개로 갈라져 있고 꼬랑지가 말리지 않는다. 위쪽에 씨방이 보인다.
물봉선은 물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며 한해살이풀이다. 한해살이풀은 번식력이 대단하다. 왜냐고 물는다면, 종족보전을 해야하니까... 낮은 산 계곡에서 높은 산 습지까지 분포영역이 넓고, 개화시기도 자생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 7월초부터 10월초까지 꽃을 볼 수 있다.

꽃은 꼬랑지가 말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짙은 자주색 꽃이 피는 것을 가야물봉선이라 하고, 흰색 꽃이 피는 흰물봉선과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물봉선은 높은 산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거제도에 분포하는 거제물봉선과 노랑물봉선은 꽃의 꼬랑지가 말리지 않는다. 독성이 있는 식물이지만 타박상 등의 치료에 쓰이며 염료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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