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편안한 친구같은 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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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편안한 친구같은 건치
  • 홍성진
  • 승인 2008.07.14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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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 2 - 홍성진(경희 02졸, 본지 편집위원)

건치와 나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

내가 처음으로 ‘건치’라는 단어를 들어본 것은 본 4 여름이었다. 2001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려는 6월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여름 한마당 행사에 대해 이야기 하러 정달현 선생님께서 학교로 오셨다.

나는 그때 본 3,4학년들의 모임인 의료연구회 회장이었다. 나를 비롯해 같은 본 4 몇 명이 모임에 나갔다.

건치 여름 한마당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질문하고 언제나처럼 뒷풀이로 이어졌다. 그 뒷풀이에는 선배 몇 명이 더 오셨는데 그 중에 보존과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선배가 있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이 원내생에게 수련의는 하느님과 맞먹는다.

▲ 2005년 건치 여름한마당
보존과 수련의 선배가 여름 한마당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케이스북에 싸인을 해주기로 하고 우리들 본 4들은 참가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건치 여름 한마당에 참가한 나의 소감은 그냥 그랬다. 이후 나도 서경 활동을 하며 여름 한마당 준비에 갖은 힘을 쏟았건만, 학생의 신분으로 참가했을 때 나는 학생회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신입생 같았다.

나를 꼬시려고 하는 저 많은 손짓들…. 움하하하 그러나 나는 결코 넘어가지 않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6년. 나는 학교를 졸업하며 내가 틀림없이 지쳤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쉬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쉬었다.

한 1년 반을 쉬었나? 그런데 나는 그 1년 반 동안 향수병에 걸려 있었다. 6년 동안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던 사람들, 또 내가 정신없게 만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정신없이 살던 때가 너무나 그리웠다. 그냥 갑자기 내던져 진듯한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나를 불러주는 사람을 찾고 있었나 보다. 그때 여름 한마당을 함께 준비해 보자고 서경에 있던 선배가 불렀다. 나는 정말 아주 냉큼 따라갔다.

처음 서경 활동을 시작하고 중간에 어려운 적도 있었다. 정말 건치 활동을 그만 두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 고민의 중간에 내가 건치 활동을 하지 않는 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건치와 인연을 끊은 삶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 ‘건치’라는 존재는 바른 치과의사의 삶을 살게 해 주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다. 지금 와서 냉정히 생각해 보면 또 다른 훌륭한 의료인 단체, 치과의사 모임도 있지만, 그 당시 나의 눈은 딱 건치까지였나 보다.

▲ 함께 활동하던 건치 서경지부 회원들
2003년도 6월에 건치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만 4년이 지났다. 무지하게 바쁘다고 생각이 들 때는 일주일에 3번도 건치 일이 있었지만 또 한가할 때는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일이 있을 때도 있다.

학생 때 학생회 일을 할 때나 동아리 회장을 맡았을 때는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일했다. 지금 나는 온 몸의 힘을 다 뺀 상태에서 건치에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철저한 의식을 가져서 건치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건치에 나가는 것이 즐겁다. 가끔씩 보는 건치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그들과 함께 토론을 하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그 결정이 세상을 좀더 좋아지게 하는 결정이라면 더더욱 행복하겠다.

처음에는 가까워지는 것이 싫었다. 가까워지면 귀찮아 질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가까워졌다. 막상 가까워지니 푹 빠지게 되었다. 푹 빠져서는 온 몸에 힘을 주어 허우적대게 되었다. 그러다 이제는 온 몸에 힘을 빼고 그 흐름을 즐기고 있다.

지금 내게 ‘건치’는 편안한 친구같다. 굳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같이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평생을 함께 가고픈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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