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건치와 나, 건치신문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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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건치와 나, 건치신문과 나
  • 강재선
  • 승인 2008.07.22 12: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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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 4 - 강재선(경희 00졸, 인천 서구 보건소)

 

- 건치가 내 맘 속으로 들어왔던 건, 2001년 어느 여름밤, 처음 건치신문 편집국 회의에 들어섰을 때다. 회의를 하는 모든 공간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났었다. 자장면(삼천 오백 원으로 올랐다고 다들 투덜거렸었던 그때가 좋았다)을 필두로 한 배달음식 냄새, 시큼한 단무지와 김치 냄새, 눅눅한 재떨이에서 나는 담뱃진 냄새, 문을 닫고 장거리 회의를 한 곳에서 나는, 바깥 공기와 다른 어떤 열기(산소 부족으로 인한), 사람들의 땀 냄새, 발 냄새, 정체불명의 퀘퀘한 냄새.

대학시절의 편집실과 비슷한 공기는 나를 그곳으로 끊임없이 불러댔으나, 진지하고 열정적인 편집국 어르신들의 치열한 고민의 장 안에 풍덩 빠지기에는, 나는 면허번호에 직인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였고, 한껏 나태함을 즐기고 싶어 하는 철없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편집국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나는 빙빙 겉도는 것이 특기인양, 멍하게 앉아 다른 편집위원들의 고민과 안건과 아이디어를 주워듣는 것만도 벅차하면서 귀가시간이 되길 기다렸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비생산적이고 단편적인 서툰 고민을 했다. 내 자리를 찾고 있다고 느꼈던 건 ‘강선생의 영화한편’이라는 꼭지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강선생의 영화한편’이 찾고자 했던 것은 마이너, B급, 저예산, 흥행에 실패했으나 눈여겨볼 만한, 작가주의,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시선, 반할리우드, 남들 안보는, 컬트, 매니아, 뭐 이런 종류의 수식어를 단 영화들이었다. 아주 작은 꼭지였지만, 내가 직접 골라 보는 영화에 대해 짧게라도 내 식대로 얘기할 수 있어서 나는 신이 났다.

남들 모르는 거 아는 척 하는 것도, 그러기 위해 새로운 영화를 찾아다니고 정보를 얻고, 좋아하는 비디오보기를 즐겨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신이 났다. 혼자서 개봉관을 찾아다니고, 집근처 비디오대여점의 우수고객이 되고, 그러다가 원고매수가 늘어나고, 글을 읽었다며 아는 척 해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아, 나도 한 건 하는구나, 나도 정말 편집위원인가 봐, 신이 날 수 밖에.

흥겨운 글쓰기의 마법이 사라질 무렵, 독특하고 색다른 영화를 고르는 것보다 내 속 깊은 얘기를 풀어 놓을 수 있는 괜찮은 영화속의 한 부분을 찾게 되면서부터 글 쓰는 게 조금씩 괴로워진다. 아니, 삶이 텁텁해졌던 게 먼저인가. 어쨌든, 괴로움의 탈출구는 안타깝게도(?) 개인사적인 불행에서 비롯되었는데, 연애에 연달아 실패하고, 부모님과 갈등상황이 생겨나고, 얼토당토하지 않은 사건사고들로 얼룩진, 결코 무난하지 않았던 30세 전후를 보낸 덕에^^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누구나 겪는 성장의 과정이었겠지만, 글쓰기라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면서 나의 내면은 고요해지면서도 힘이 생겼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줄도 알게 되었고, 조금씩 각도를 틀어서 사건을, 상황을, 사람을,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글쓰기가 가능했던 건, 건치, 건치신문 덕분이다.

-건치, 건치신문, 그 속에 속해 있는 수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지는 스펙트럼의 사람들과 정치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촘촘히 엮여져 있지 않은 채, 늘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 참 미안하다. 늘 그렇다. 미안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 허했던 인생의 한때를 풍요롭게 해주고 내 자신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며 정신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준 ‘강선생의 영화한편’을 연재할 수 있게 해준 것, 그렇게 건치, 건치신문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항상 격려해주셨던 2001년~2002년도 편집국 식구들께

당시 ‘못말리는 신짱’이라는 과자의 출시로 사회적 위치가 한층 격상되었던ㅋ 신짱님-신이철 선생님, 장수하늘소나 나비 등과 겹쳐지는^^ 편집국의 든든한 터줏대감 임종철 선생님, 강냥이냐, 강원장이냐, 강언니냐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편집회의에서 ‘강선생의 영화한편’으로 꼭지 제목을 날카롭게ㅋ 정리해주셨던 최덕형 선생님, 하필이면 편집장이 되신 후 회의에 불참하게 되어 너무 미안한 존경하옵는 현주언니, 현재 편집장으로 등극하신 얼리 어댑터 문세기 선생님, 김원장 이야기의 서대선 선생님, 건치신문 편집회의에 이끌어주신 홍원집 선배님, 대학 편집실에서는 맏언니였는데, 건치편집국에서는 막내언니로 나와 터울이 가장 작았던ㅋ 혜욱이 언니, 우리가 같은 코드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ㅋ 편집국을 스쳐지나갔던 보희 언니, 미안하게도 자꾸 이경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강민홍 기자님, 지금은 편집국에 없지만, 항상 원고마감 독촉 전문담당이셨던, 그래서 너무 죄송했던 이인문 기자님, 까만 피부에 더 새까만 눈동자를 하고 무서운 농담을 했지만 하나도 안 무서웠던 임세진 기자님. 그리고, 건치사무실, 건치신문 편집국, 술자리에서 뵈었던 모든 분들.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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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ugi 2008-07-26 12:37:23
내가 헷갈리는 이름과 사건들까지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해 주네요. 둘째 낳고 머리가 나빠졌다는둥 하더니, 아직 신문을 위해 할 일이 많을 듯...^^

장현주 2008-07-23 13:35:52
즐거운 글발. 죽지 않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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