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 달리자!] 건치 덕에 사람 된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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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 달리자!] 건치 덕에 사람 된 치과의사
  • 송학선
  • 승인 2008.07.31 17:4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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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6 - 송학선 원장(청치 초대회장 및 건치 14대 공동대표)

건치 덕에 완전히 인생 조진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눈 한 번 부라리면 온 가족이 벌벌 떨어야 하는데 가장이 맨 날 걸레질이나 하고 있고, 골프채 휘두르며 예쁜 처녀들이랑 놀러 다녀야 할 치과의사가 촛불 들고 시청 앞에 나가있고......하하.

건치 신문이면 왠지 익숙할 인터뷰 식으로 조진 인생을 풀어 봅니다.

<왜 건치 활동을 했나?>

1984년 막 개원했을 때입니다. 하루는 러닝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엔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30대 남자가 턱을 감싸 쥐고 치과로 들어섰습니다. 치료 받으려는 사람 행색치고는 너무 했다 싶었지만 무척이나 아픈가 보다 하고는 할 말을 참았지요.

그런데 입안을 들어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도대체 이를 닦는 거요 마는 거요?” 그리고는 구강 건강에 무심한 환자를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위 합쳐야 몇 개 남지 않은 이에 그나마 음식물이 잔뜩 끼어 마치 쓰레기장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참을 야단치다가 아픔에 이지러지고 부끄러워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에 야단을 멈추고 무슨 일 하시는 분인지를 물었습니다.

"양곡 도매시장에 나락 정미해서 올려 보내는 일 하고 있구먼유.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떠날 수가 읍스유~. 밥도 서서 먹구유~. 잠도 쌀가마니에 엎어져서 그냥 자누먼유~. 그것두 네 시간 밖에는 못자유∼"

충격이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지며 목이 콱 메어 왔습니다. 식사시간도 없이 하루 스무 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이 닦으라고 야단 쳤으니…. 이분에게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해 싸우라고 일러줘야 했던 겁니다.

저녁 시간에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고 가족들과 텔레비전도 보고 자기 전에 씻고 잘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어야 옳았습니다.

건강할 조건 만들기는 바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바로 환경운동 반핵운동 보건의료운동이 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아닙니까? 아무리 훌륭한 치료를 해도 핵의 위험 앞에서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요.

 

<건치 창립 당시 의미 있는 일>

청년치과의사회와 민주치과의사회의 통합이 바로 건치의 창립이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보건의료인 대중운동이란 관점에서 반공해운동으로 치과의사 대중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매우 실효성 있는 전략이었습니다. 청치 회장 임기를 마치고 실무 부서를 맡아 활동하는 모습은 타 단체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의협 건약 청한의 반핵반공해 담당 부서원들과 함께 협의체를 가동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이 협의체가 계기가 되어 IPPNW(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아세아 태평양대회에 보건의료인 팀을 구성해서 필리핀을 다녀온 것이 임원간 단체간 동지애를 다진 계기가 되어 오랫동안 보건의료운동의 추진력이 되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건치와 함께 재미있던 기억>

그때 그 시절, 김옥희 선생이 안기부에 끌려갔다는 소식에 여나믄 건치 회원과 안기부 안가를 쳐들어갔던 일도 신나고 재미있는 기억이구요, 운동단체도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홍보부 활동을 하다가 이벤트 사업을 통한 홍보기획을 세웠고, 그래서 바로 울릉도 틀니사업을 하게 되었던 일도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무려 53명에게 총의치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란 건 아니지만 울릉도 주민들, 고맙다고 오징어 한 마리, 박카스 한 병 가져오는 사람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신기했습니다. 쪼깨 섭섭하기도 했구요...... 하하

 

<부끄러운 기억>

부끄럽고 낯 뜨거웠던 일이 어디 한두 가지 겠습니까만 문득 생각나는 기억은 1996년 4월 건치 제 32호에 실린 원고는 만화에 나오는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할 일인데 아무리 마감시간에 좇긴 원고라지만 어찌 뻔뻔하게 그랬는지 정신이 아득합니다.

임종철 선생이 바로 지적해주셨는데 그때는 참 만화 글까지 꼼꼼히 읽고 기억하는 양반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에 화톳불 묻은 것 같습니다.

 

<건치 덕에 변한 게 있는가?>

원래는 안 이랬어요. 성격도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고, 글 쓸 줄도 몰랐고, 사람들만 만나면 어리버리… 하여튼 그랬는데, 이게 어느 순간 확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다 치과대학 시절에 한영철 이희원 이런 양반 만난 덕분이죠. 화요모임에 청년치과의사회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거치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는 했더니, 어느 순간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조직의 발전을 통한 개인의 발전… 뭐, 그런 셈이죠. 그 뿐이 아닙니다.

마초의식을 버린 지 오래고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는 그때의 밤늦은 회의 버릇으로 아직도 온 집안 걸레질 마치고 새벽 2-3시에 잠이 든다는 거 아닙니까.

 

건치 덕에 명함도 여러 가지 참 많이 찍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과 과천시민모임 보건의료분과장 역할 하다가 조직의 명령으로 과천시장 출마까지 하는 바람에 주변 여러 동지들 고생 많이 시켜드렸습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서초지부 공동대표, 시민환경연구소 이사,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지방자치센터 실행위원도 했습니다. 반핵평화운동연합 창립활동도 했구요, 과천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송전철탑 싸움을 위해 구성한 과천생명민회의 공동대표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보건의료인 포럼 ‘우도평’유사,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 준비위원장, 환경운동연합 중앙상집위원, 에너지 대안 센터 이사, 환경운동연합 반핵특위 위원장, 과천 NGO연대 의장도 했답니다.

하는 일도 없었으면서 간판만 요란 했군요. 지금도 과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에 환경재단 136포럼 운영위원과 충치예방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답니다. 건치 자랑 하려고 늘어놨지 제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거 아닙니다, 아시지요?

 

<건치에 바란다>

촛불집회에서 집단지성으로 확인했습니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정보공유화 사회에요.

어떤 정보를 그 분야의 전문인들이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변화되고 다양화된 시민들의 주체적인 자각 속에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그래서 습득한 정보를 독점하려고만 하는 전문인들은 앞으로 살아남기가 힘들 거예요.

대다수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가 없죠. 치과의사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보공유화사회에서 구강보건의 주체는 치과의사들이 아니라 국민이에요. 이제까지는 국민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하여 전문의료인들이 총대를 매고 나섰지만, 앞으로는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설 거예요.

물론 전문의료인들도 함께 해야죠. 그러나 이제부터는 국민들과 동등한 관계여야 해요. 시혜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늘 말합니다만 건치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많은 시도가 감지되어 무척 고무적이긴 합니다.

또한 항상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제안될 수 있고 또 기획되어 사업화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성에 젖은 관료단체처럼 변해버립니다. 싱싱하고 살아있는 건치를 유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건치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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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선 2008-08-01 16:27:06
語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이고
言은 혼자 하는 말 입니다.

나 혼자 씨부린 거라... ㅋㅋㅋ

송학선 2008-08-01 16:29:06
하하... 술 한잔 한 사진 이구만....
맨날 남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니.. 제 자신은 없는거렸다!

강민홍 기자 2008-08-12 15:28:40
'수정'이란 이름이 있는데, 아기공룡둘리 그린 만화작가가 그려준 건가요?

장현주 2008-08-13 01:25:01
송학선 샘. 이렇게 쓰시면 안됩니다. 말달리자는 사실에 입각한 대충주의와 머리수를 최대한 고려한 건치대중주의, 필자의 절대자의성을 십분 고려한 감성주의를 지향합니다. 다음 필자는 누구신지 고생좀 하시겠구만요. ㅋㅋ ...근데 이렇게 쓰시니 건치 초창기 분위기가 어땠구나 하는 실감이 전해져오네요. 인의협 등등의 다른 단체랑은 그렇게 연을 쌓았었던 것이군요..

송학선 2008-08-13 14:08:46
김수정 선생이 그려준 커리커쳐 맞습니다..... 예전에 참여 연대에서 커리커쳐 전시회를 열었답니다... 수익사업 이벤트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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