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효과 허구'·'악영향 억측' 설전
상태바
'유치효과 허구'·'악영향 억측' 설전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4.10.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경부·복지부 경제특구 공청회① - 반복된 지루한 탁상공론

패널 구성부터 미묘 갈등

재정경제부와 보건복지부가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대병원 암연구동 이건희홀에서 '동북아 중심병원 유치관련 공청회'를 공동 개최했다.

지금까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과 관련한 수많은 토론의 자리들이 있어왔지만, 이날 공청회는 재경부와 복지부라는 정부 관계기관이 직접 주최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기존의 지루한 탁상공론을 넘어 뭔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도출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서 였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 역시 개정 찬성측과 반대측의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패널 구성에서부터 미묘한 어려움이 따랐다. 때문에 패널만도 15명으로 구성, 사실상 올바른 대안을 모색하기 보단 각자의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15명의 입장 발표만도 공청회 예정 시간인 3시간을 30여분 넘겼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공식 입장 표명을 피했던 대한의사협회가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과 개정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대한치과의사협회가 개정으로 받게되는 악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 새로운 고민의 지점이 도출됐다는 성과가 있긴 했다.

 

'유치 효과'의 허구성 논란

이날 공청회에서는 기존에 이뤄져왔던 똑같은 내용의 논쟁이 재현됐다.

재경부는 지난 8월에 있었던 청년의사 주최의 토론회 때와 지난달 10일 개정안 입법 예고 당시 밝혔던 입법 취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주장을 되풀이 했으며, 이에 대한 반대측의 반박과 반대측 입장에 대한 재반박이 이어졌다.

▲ 경제자유구역기획단 송준상 지역총괄과장
재경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 송준상 지역총괄과장은 "미국 일류병원의 MOU 체결로 213억불의 수익과 고용이 창출되고, 해외원정진료로 인한 외화 낭비를 막을 수 있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고, "외국병원이 유치되면 국내의 병원 및 의료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송 과장은 "유치병원은 기껏해야 1∼2개에 불과하고 건강보험도 배제하고 있는 만큼 공공의료 등 국내 의료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또한 "실제 병원이 개설되기까지는 향후 3∼4년이 걸리는 만큼 충분한 준비와 대책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송 과장은 "지난 8월 11일 청년의사를 통해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수차례 의견수렴을 해왔다"고 반박하고, "갤럽조사에서도 국민의 80% 이상이 외국병원 유치를 찬성하는 등 일부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충북 의대 이진석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의료비가 비싼 미국의 대형병원 유치는 경제자유구역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현실적으로 유치도 불가능하다"며, "브랜드와 몇
명의 의사만 빌려주고 수익을 챙기는 정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재경부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2004년 6월 3일자 LA타임즈에 따르면 연간 1만여 명의 해외원정진료 중 절반 이상인 5∼6천여 명이 원정 출산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축하고,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국내 자본이 특구 내에 병원을 유치해도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 충북 의대 이진석 교수
"국내 의료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외국유수병원이 완벽한 자국의 산업을 이용하지, 아직 덜 성숙한 국내 유관산업과 연계를 맺겠냐"고 반문하고, "원가에도 못미치는 수가로 허덕이는 국내 병원들에게, 5∼6배의 수가를 챙기는 외국병원에게 불만을 사면 샀지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도 "송 과장이 그동안 수많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재경부가 공청회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참여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이렇듯 폐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우 국장은 "마치 시민단체만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과 다르다"면서, "직능단체 중 3개 단체가 '반대'를 명확히 하고 있고, 민주노총 등 주요 사회단체들도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아직도 '어정쩡'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재경부와 대립되는 반대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예상됐던 복지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반대측 토론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복지부 최회주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현 정부는 의료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상당수의 국민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현실에서 의료의 형평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복지부 최회주 보건의료정책과장
또한 최 과장은 "복지부는 '동북아 의료허브' 추진에 공감, 올 초 '동북아 유치 KT'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해 왔다"면서, 그러나 "현 재경부의 안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는 만큼 더욱 신중히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 당장은 논란이 많아 반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재경부와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은 "현 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는데, 효율성과 공공성은 함께 병행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병협이 누차 주장하듯 제대로 된 비영리법인이 하나도 없고, 공공의료가 10%에도 못미치는 기이한 의료현실 속에서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가"라고 반문했다.

 

'개정'의 악영향 확대 말라

대체적으로 이날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경제특구 내 병원문제는 애초대로 외국인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추진돼야 하며, '동북아 의료허브'는 이 문제와 분리해 장기적 비전을 수립하는 속에서 추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또한 "재경부가 제시하고 있는 싱가폴과 중국의 상황은 우리나라와 다르며, 공공성이 취약한 국내 의료체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국민 사이의 위화감도 커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내국인 진료 허용과 외국인투자기업 확대를 골자로 한 '개정'으로 예상되는 '악영향'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는 공세도 거셌다.

경희대 정기택 교수는 "서울 의대 의료정책연구팀은 최근 필수적 의료는 정부가 집중 투자해야 하지만, 선택적 의료는 자본의 참여가 유연화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면서 "보다 양질의 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막아서는 안된다"며 내국인 진료 허용을 옹호했다.

또한 정 교수는 "해외원정진료로 인한 국부유출이 얼마인지 또한 당장 외국병원 유치로 얼마나 줄어들지 누구도 추산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향후 해외진료가 점차 늘어날 것이 자명한 만큼, 외국병원 유치로 인한 효과가 점차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 김동원 논설위원은 "국민의 위화감이 커진다고 하는데, 외국으로 진료나가면 위화감이 없고, 특구에 가면 위화감이 생기냐"고 비난하고, 또한 "기껏 외국병원 1∼2개 설립 가지고 한국 보건의료체계 근간이 붕괴된다는 등 과장이 너무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인천자유구역청 강상균 팀장도 "병원간 경쟁을 유발시켜 국내 의료의 서비스 질을 상승시키는 등 긍정적 영향이 오히려 크다"면서 그럼에도 "한국보건의료체계 전체가 흔들린다는 황당한 주장 등 부정적 부분만 부각시키는 저의가 뭐냐"고 반문했다.

 

'삼성' 뛰어들 때도 그랬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일부 찬성측 토론자들이 과거 삼성 등이 병원산업에 뛰어 들 때를 예로 들며, 반대측의 '악영향 증폭'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경희대 정기택 교수는 "과거 삼성이 진출했을 때에도 반대가 심했다"면서, 그러나 "국내 의료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서울대나 세브란스 병원의 환자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반대론자들을 비판했다.

또한 정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들도 인천에 500병상 이상의 병원이 설립돼도 국내 병원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주장한다"면서, "대다수의 국민들도 찬성하는 상황에서 악영향을 부풀리는 것보단 의료허브 구축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게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국제클리닉 문영호 원장도 "과거 삼성이 병원산업에 들어와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몇몇 중소병원이 망하기는 했지만, 의료체계 근간이 붕괴되지는 않았다"면서, "외국병원 유치로 촌지가 사라지고 서비스 질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경부·복지부 경제특구 공청회② - 경제특구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 입장'에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