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절망 속에서 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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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절망 속에서 피는 희망
  • 김형돈
  • 승인 2008.08.21 16: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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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0 - 김형돈(서울 85졸, 건치 대충지부 회장)

 

얼마전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시집 한권을 빼들었다. 그리고 한편의 시를 다시 읽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을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중략)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길을 걸었다
돌돌말은 달력을 옆에 끼고…
(하략)

사랑도 사치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낭만적인 문학, 음악, 스포츠 모두 버려야 할 대상으로까지도 생각했던 시기였다. 이 시를 읽은 때가 벌써 27,8년쯤 된 것 같다. 시를 읽으면서 피흘린 추억까지 팔아먹고 사는 낭만주의자들도 있구나라고 생각도 했었다. 물론 애잔하게 파고드는 빛바랜 사진같은 시상은 애써 접어두려는 젊음의 객기, 치기였을 것이다.

70년대 유신시대와 80년대 살인적이고 폭압적인 군사정권 같은 극단의 왜곡의 시대에는 젊은이, 지식인의 이성이 마비되는 시기였다. 1, 2차세계대전 때가 그랬고, 나치 하의 독일이 그랬고, 문화 혁명당시의 중국이 그랬다.

젊음 때문인지 당시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살았던 것 같다. 이런게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단지 불의에 침묵 할 수 없어서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당시 내가 2, 30년 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 하기도 했었다. 똑똑하게 비겁하지 못했음에 한 자락 회한도 남고, 상가집에서나 오래된 옛 동료 선후배 만남을 이룰 수 있게 된 지금, 아이들 걱정에, 건강 걱정에, 우리 모두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자화상… 그러저러하게 널려있는 삶의 모습이 나의 현재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대 우리가 원했던 민주, 자유, 평화가 성숙도 하기 전에 진부해 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치부해버리는 요즘이다.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많은 폭력적 상황이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20년 전 건치 창립 때를 생각 해본다.

암흑 같은 시대가 지속되고 민주 사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기였지만 20년 지난 지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비록 역사의 반동으로 지금 시대적 상황이 어렵지만 큰 물줄기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요사이 문득 건치 선배들이 그립고 후배들과 동료들이 그립다. 어둠의 시대에 버텨줬던 것만으로도 훌륭한 삶을 산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고 그들이 바로 건치 선배들이었고 동료들이었고 후배들이었다. 그들 모두 훌륭한 삶을 산 시대의 증인들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열정과 분노가 옛날만 못하다.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면서 흥분하는 정도가 옛날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냉냉해졌다. 이기면 좋고 져도 그들이 더 잘해서 졌다라고 생각하고… 그게 끝이다. 옛날에는 그 승패의 잔영이 오래 갔던 것 같았는데…

하긴 이 나이에  20대와 같이 흥분하면서 살면 잘 살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고 모든 것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명박 정권을 보면서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믿게 된다. 물줄기를 날카롭게 만드는 모든 것은 깎이고 깎여 퇴적물로 쌓이게 된다는 순리를 이제는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우 편향적 정책을 보면서 멀지 않은 장래에 반역사적인 수많은 침전물을 보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저들이 그토록 질기도록 건강 챙겨가면서 자자손손 대대로 호의호식하면서 권력과 부의 대물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도 너무 몸이 상할 정도로 분노하면서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수많은 인사들이 감당하지 못할 분노로 몸을 혹사시켜 암으로, 지병으로 단명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지켜봤다. 적어도 나는  주체할 수 있을 만큼만 분노하면서 살자라고 다짐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음을 알았고 단판에 끝나는 싸움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 건치가 함께하려는 진보적 가치는 우리가 안 되면 후배들이, 후배들이 안 되면 우리 자식들이 짊어져야할 짊이 아니던가? 역사의 강이 흐르는 한 이 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희망의 물줄기는 도도히 흐를 수밖에 없음을 믿는다.

얼마 전 성구 형 상가에서 희원이형, 영재형, 재용이 형이랑, 명식이 5명이 늦게까지 호프 한 잔하면서 7,80년대를 안주삼아, 젊은 시절의 전설적 객기와 쏟아낸 많은 에피소드에서 부터 촛불집회까지, 늦게 시작한 골프를 안주삼아 참 오랜만에 맛있는 술자리를 같이했다.

지금 우리 동료, 선후배가 다소 서운하더라도 우리끼리는 적어도 욕하지 말고 살자고 다짐도 하면서… 우리도 질기고 건강하게 잘 살자고 서로 격려하면서…

건치 어제의 용사들 한번 뭉칩시다!
9월 27일 학선이형 아들 혼례 날 겸사겸사해서 한 번 마시고 놉시다!
노래방도 가서 옛날 노래들도 한번 불러 봅시다!

글 쓰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제41차 열린 세미나 안내
대전 시민 아카데미
8.29일 7시 30분 사무실

참여연대 임원회의 8.25 사무실 필 참

5000콜 대리운전

원광 수요임상강좌안내

부고****발인…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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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동 2008-08-22 11:19:56
주체할 수 있을만큼만 분노하면서 살자...가슴에 와 닿는 말이네요...

임종철 2008-08-22 18:10:37
질기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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