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가는 길
상태바
프놈펜 가는 길
  • 이동호
  • 승인 2008.08.29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23

 

바탐방을 떠날 때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쾌청했습니다. 프놈펜은 바탐방에서 남동 방향으로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는 왕복2차선 국도를 따라 5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방향은 바로 톤레삽호수와 톤레삽강의 물줄기 방향과 일치합니다. 푸삿주를 지나고 캄퐁츠낭주를 거쳐서 수도 프놈펜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역이 전부 논입니다. 즉 바탐방에서 프놈펜 사이의 톤레삽 남쪽의 곡창지대가 바로 캄보디아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곡식창고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낡은 중고트럭에 열대여섯 명의 사람을 가득 태우고 달리는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만나는 풍경입니다. 사람과 짐의 구분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승차정원의 개념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두어 시간을 달리다가 들어간 어느 작은 마을의 휴게소입니다. 기본적으로 바탐방과 프놈펜 사이에는 대도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면소재지 정도 될까한 마을의 어느 가게에서 진하고 달콤한 캄보디아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여행의 여유를 만끽합니다. 노란 연유를 듬뿍 넣은 밀크커피의 맛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평소에 즐겨마시는 연한 아메리칸스타일의 커피를 이곳에서 찾기란 어렵습니다. 스타벅스나 던킨커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차라리 연유라도 듬뿍 넣어 마시는 편이 나을지 모릅니다. 몸에야 좋지 않겠지만요.

역시 가게주인은 중국계입니다. 가게 한편에 모셔놓은 작은 신주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중국인들의 신앙이 캄보디아의 소승불교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일까요? 사업번창과 가족의 융성을 기원하며 조상신에게, 땅의 신에게, 집의 신에게 정성껏 꽃과 음식을 차려내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정갈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지구상 어디에서나 그들은 참 잘도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이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의 시골구석에서도 그들은 장사로 모은 재산으로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냅니다. 캄보디아의 경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시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 참을 달려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남쪽에서부터 검은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논과 열대야자수들 위로 무거운 비구름이 덮이더니 저 멀리서부터 비가 쏟아지는 게 보입니다. 이내 차는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우기에는 이렇게 매일 하루 한 번씩 비를 쏟아붓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우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비는 짧은 시간이지만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 붓습니다.

캄퐁츠낭주의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차들이 갑자기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차창 밖을 보니 동네  한가운데가 완전히 침수되어 물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가 내린지 한 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마을 가운데 도로가 물에 잠기다니, 그런데도 길가 가게들의 사람들은 편안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곧 물이 빠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우기철에 물은 삽시간에 불어났다가 또 삽시간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를 지나치는데 운동장에 아이들이 빗속에서도 공을 차고 있습니다.

한바탕 쏟아붓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날이 다시 차츰 밝아옵니다. 아스라한 차창밖 풍경을 즐기는 사이에 차안의 낡은 오디오의 테이프에서는 민요풍의 조금 빠른 음악가락이 흘러나오고 운전기사 미스터 보레는 장단에 맞춰 핸들을 잡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가사를 흥얼거립니다. 여유로운 풍경입니다. 이제 곧 프놈펜에 들어서겠지요. 바탐방을 출발할 때엔 정오의 푸르른 하늘을 보았었는데 이제 해가 뒤로 기울면서 어둑어둑해집니다. 저 멀리 동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면서 톤레삽 호수 위로 맑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프놈펜은 활짝 개었나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