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 노무현과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치과의사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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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 노무현과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치과의사들의 모임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3.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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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대통령! 우리가 만들었어요.”


왕따였지만 열심히…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은 없었죠. 결과를 떠나 무언가 열심히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좋게 술을 마시는데…이게 웬걸? 뜬금없이 ‘정몽준 지지 철회’ 소식이 술집 TV 마감뉴스에 나오는 거예요…그날 잠 한 숨 못자고 밤새 걱정했던걸 생각하면….”

지난달 18일 저녁 7시 유성 레전드호텔에서 열린 ‘노무현과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치과의사들의 모임(대표 정상호, 이하 노정치)’ 2차 오프라인 모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20여 명의 회원들은 ‘정몽준 지지 철회’ 소식에 잠 한 숨 못잤다는 충남지역 개원의 민병진씨의 얘기에 모두 폭소를 터뜨린다. 웃겼다기 보단 같은 경험을 겪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지의식이랄까?

“노사모, 개혁당 등등 모임은 다른 모임인데 구성원은 똑같더라” 등등, 16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오가는 무수한 뒷 얘기, 그리고 웃음들…. 그러나 보수성향,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라는 치과의사 사회의 토양에서 피어난 ‘정치개혁 열망’과 ‘현실정치 참여’. 그것은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던 온갖 고충이 밑거름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게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 식당에서 뉴스만 나오면 ‘야 TV 꺼’ 하고 신경질을 내요.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라니까요.” 대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김세일씨는 선거기간에도 조심조심 사람들 만나고 다녔는데, 지금은 맞아죽을까봐 아예 조용히 죽어산단다.

또 경기도의 한 개원의는 치과의사 모임만 나가면 선배들에게 “야! 노사모 이리와봐!” 하며 시달림을 당하기도 하고, 또 서울의 한 개원의는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까봐 치과의사 모임에서는 아예 정치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고 하니…그날 대화들을 선거기간 왕따들의 뒷 얘기 또는 애환이라 한다면 지나치려나?

정치개혁 바라는 국민의 승리

부산에서 노무현 선본 정책특보로까지 활동했던 이희원씨는 “선거운동도 대부분 재야·시민단체 사람들이 진행”했고, “부산에서 얻은 29%의 득표는 민주당의 조직력도 지역감정도 세대갈등도 아닌 개혁을 바라는 부산 시민들의 열망”이었단다. “민주당은 왜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럴 수밖예요! 노무현씨가 대통령 되면 자신들이 바로 개혁의 대상이자 물갈이 대상인걸” 하며 웃는다.

그럼 18%만 지지한 대구 사람들은 대부분 개혁을 반대한다는 걸까?
“의외로 표가 적게 나와 의아했다”는 대구의 박준철씨, 그는 “대구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 5년간 피해의식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것을 반개혁적이니 지역감정이니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쨌든 개표 결과는 지역감정의 재현이었지 않은가?
전북 장수군에 개원하고 있는 이강주씨는 “최근 당 개혁바람이 일자 일부에서 전라도 지역의 몰표를 가리키며 동교동계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당선되기 힘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커다란 착각”이라며, “그들의 말대로라면 1월초 진행된 장수 군수 보궐선거에서 쌀수입개방 반대를 외치며 할복까지 했던 민주당 후보가 떨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갚라고 반문한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텃밭이라는 전라도에서 민주당 후보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16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세대 차이니, 지역 감정이니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본질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는 노정치 정상호 대표의 주장에서 찾아질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일차적 목표만 이뤘다
“존속이냐 발전적 해체냐?”
부산지역 김종민씨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날 모임의 핵심 화두는 역시 ‘노정치의 향후 진로’. 향후 정치지형과 노정치 진로를 둘러싼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김종민씨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아직도 시퍼렇게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데, 취임 이후에도 노 당선자가 ‘개혁’을 힘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잘하면 본전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된단다. 아마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을테며, “모이자”는 한마디에 이 일 저 일 다 제쳐놓고 유성으로 달려온 이유일 게다.

하지만 해법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법. 대구지역 박준철씨는 “현재는 개혁을 계속 밀고나가는 것과 함께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때문에 노정치를 언론개혁 등 당면한 현안과 2004년 총선을 대비하는 모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충남지역 민병진씨는 “모임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각 지역으로 내려가서 지역사업을 잘 하는 것도 필요하다. 총선 등 커다란 이슈가 있을 때 다시 모이자”고 반박한다. 굳이 무리하게 전체 모임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이를 통한 ‘개혁’이다. 우리는 일차적 목표만 이뤘을 뿐 아직 갈길은 멀다”는 전민용 건치 대표의 말처럼, 언론개혁, 민주당 개혁, 선거제도 변화 등 노정치가 해야 할 일들은 아직 산더미같기에, 그들은 해체 보단 존속을 선택했다.

또한 “노정치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했을 경우,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임’이 되는데, 관변단체도 아니고 조금 이상하다”는 김세일씨의 지적으로 명칭을 전환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존속 형태도 보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연계고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느슨한 형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 노정치 정상호 대표
더 많은 개원의와 함께
“치과의사들의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16대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작년 11월 9일 다음에 카페 하나를 개설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노정치.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노무현 후보지지 선언’ 발표, 모금운동, 강연회 개최를 비롯한 활발한 토론 등등 노정치가 벌인 다양한 활동은 치과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00여 명의 회원. 2만 명의 치과의사 수에 비하면 그리 큰 숫자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치과의사 집단 내에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치과의사들이 뭉쳐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의미”라는 한 회원의 말처럼, 노정치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과소 평가할 수는 없으리라.

이제 노무현 당선이라는 1차적 목표를 이뤘다. 앞으로는 진정 한국 사회에 개혁을 뿌리내리고, 전 치과의사들을 현실 정치의 주역으로 이끌어내는 노정치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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