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미국견문록] 미들클래스 제이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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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미국견문록] 미들클래스 제이콥의 꿈
  • 이상윤
  • 승인 200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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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도 나와같이 돌아다니는 내 어시스트다. 제이콥은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이제 어시스트 경력이 1년도 안되는 셈인데 아주 영리하고 민첩한 19세 백인 청년이다.

제이콥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 집(house)을 사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사도 빚으로 사니까 집값이 당장 없어도 한국보다 쉽게 집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다운페이(down payment)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운페이라는 것은 처음에 내는 목돈을 말한다. 예를 들어 20만불짜리 집을 사는데 다운페이를 20퍼센트로 한다고 하면 4만불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운페이는 꼭 20퍼센트일 필요는 없지만 다운페이를 적게 하면 다달이 물어야 하는 원금도 많아지고, 대출금에 대한 이자도 비싸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련해 두어야 집을 살 수 있다. 물론 당장에 모아둔 돈은 없어도 다달이 갚아 나갈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면 10프로, 5프로, 심지어는 제로 다운페이를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더구나 제이콥처럼 한시간에 9불씩 받는 초보 어시스트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대출을 해주는 몰기지(mortgage) 회사에서 대출 규모와 다운페이를 정할 때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와 월수입을 철저히 체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옆에서 볼 때 제이콥이 자신의 돈으로 집을 사 자신의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대견해 보이기도 하지만, 일년 수입이 2만불도 안되는 제이콥이 어느 세월에 다운페이 마련해 집을 사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이콥은 현재 아버지, 새어머니,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이야기 했지만 미국에서 아파트라 함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회사에 월세를 내면서 거주하는 곳으로 저소득층의 상징이다. 우리로 말하면 임대주택이라고나 할까.

물론 집을 관리할 힘이 없는 노인네들이나 비즈니스 등으로 방문하여 잠시 거처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아파트에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그저 뭐니뭐니 해도 자신의 백 야드(back yard)가 있고 차고가 있고,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는 하우스에 사는 것을 정상으로 생각한다.

제이콥의 말에 따르면 제이콥네도 원래는 집에서 살았다 한다. 아버지가 이혼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아버지 혼자 버는 수입으로는 집을 유지할 형편이 안되어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제이콥의 말에 따르면 아주 멋진 집이었다고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은 제이콥이 그렇게 좋하하던 집만 날린 게 아니다.

이혼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 양육문제나 기타 분쟁을 서로 유리하게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여 다투는 바람에 그동안 아버지가 모아두었던 돈도 거의 변호사의 수입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변호사에게 ‘날린’ 돈이 몇만불 정도 된다는데, 미국사람들이 다달이 날아오는 각종 청구서를 해결하면서 저금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금 몇만불은 미국인들에게 정말 큰 돈이다.

그러니 미국사람들이 변호사를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악덕상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2년 전, 그러니까 2002년 2월에 23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제이콥의 아버지는 기계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제이콥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열 아홉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금의 제이콥 나이에 그 직장에 취직하여 42살까지 그 직장에 다녔다 한다.

한데 어느 겨울날 아침 출근했는데 해고 통보를 받았고, 그날이 그 직장에 나가는 마지막 날이었다고 한다. 제이콥의 아버지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매니저의 직급에 있었는데 월급을 제일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그냥 잘린 거다. 제이콥의 아버지처럼 해고되는 경우는 나도 많이 봤다.

30년 일한 직장에서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해고 된다. 출근했는데 책상위에 핑크슬립이 놓여져 있으면 잘린 거다. 어떤 회사는 그날 아침에 정문에서 수위가 막기도 한다고 들었다. 회사의 기밀을 빼갈까봐 건물안에도 못들어가고 정문앞에서 자신의 소지품들과 이메일을 담은 씨디와 함께 해고통보를 받는 것이다.

하여 현재 제이콥의 아버지는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저녁에는 술집에도 나가고 결혼식 피로연 등의 출장행사가 있으면 그런데도 가서 하객들에게 써비스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제이콥은 집을 사면 동생만 데리고 들어가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싫으냐고 하니까 아버지는 좋은데 새어머니가 싫다면서 만약에 둘이서 헤어지면 아버지도 같이 집으로 부그겠단다.

알다시피 요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기간이라 미들 클래스(middle class)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우리말로 생각하면 중산층 정도로 이해되는데, 케리는 부시가 미들 클래스를 배반하고 부유한 자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해왔다며 공격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제이콥에게 너는 어떤 계층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제이콥은 스스로를 미들 클래스라 생각하고 있었다. 제이콥을 보면 부시의 중산층정책이 실패하긴 한 것 같다. 그런데도 제이콥의 아버지는 골수 공화당지지자라니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권자 수준은 거기서 거긴 거 같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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