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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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인연
  • 배석기
  • 승인 2008.1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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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5 - 배석기(부산 97졸, 울산지부 홍보부장)

 

울산건치 홍보부장이란 직책을 맡고 나서 나한테 맡겨진 중요한 올해의 사업은 울산건치 10주년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연초 간부 수련회에서 호기롭게 소식지 2회 발간, 회지 혹은 10주년 기념 자료집 발간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어느덧 연말로 다가와서 발등에 불이 되었다.

지난 화요일은 밀린 숙제를 할 겸 또 마침 쉬는 날이어서 울산 건치 여러 회원들의 병원에 방문하여 사진도 찍고 마침 날씨도 좋아서 자전거로 울산 이곳 저곳을 다닐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서늘해진 바람을 맞으며 강변의 자전거 길을 따라 이동하며 3군데의 병원을 방문하고 사진도 찍었다.

다음으로 갈 곳이 방어진인데 방어진은 울산의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곳이어서 자전거로 이동하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에 자전거를 주차시켜 놓고 좌석 버스에 올랐다. 한두 정거장 이동 후 한 아저씨가 버스에 오르는데 낯이 익었다.

그분은 버스에서 손수건을 파는 분인데, 혀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지 어눌한 말투로 사단법인 한국장애인 복지회의 회원증을 목에 걸고 힘들게 살고 있는 장애인을 위해 남자용 체크무늬 여자용 꽃무늬 손수건 한 장 2000원이라며 나에게 체크무늬 손수건을 건넨다. 손수건 뒷면에는 사단법인 한국 장애인 복지회 도장과 연락처와 헌옷 보낼 곳 주소와 후원계좌번호 등등 가짜가 아닌 진짜 장애인협회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구구절절하다.

마음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정확히 18년 전 울산서 부산을 통학하던 예과생 시절 시외버스 속에서 똑같이 손수건을 팔던 아저씨였다. 그때 당시 그분은 장애인이 아니었고 서울에 있는 강남 성모병원에서 아무개 박사님에게 치료받고 있는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다섯 살 딸아이를 위해 손수건을 팔고 있었다. 돈이 아니면 딸아이를 위한 헌혈증도 받는다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에 손수건을 안살수가 없었고 그 손수건은 ‘오늘 할 좋은 일을 다했다’는 뿌듯함을 내게 주었었다.

그분을 또 만난 건 그로부터 약 5년쯤 후 치과대학 졸업을 앞둔 때였던 것 같다. 부산 울산간 시외버스에서 아저씨는 여전히 손수건을 팔고 있었고 그때 소아암에 걸린 딸아이는 여전히 병세가 좋지 않았고 신기하게도 5년이 지났는데도 딸아이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인상과 특이한 말투 때문인지 첫 만남 때 산 손수건의 강렬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 순간 5년 전의 나의 선의가 속은 것이라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였다. 또 버스 속 사람들에게 이 아저씨가 말하는 딸아이는 거짓말이라고 말할까 말까 생각도 하고,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생각도 하고 했지만 소심한 나는 그냥 노려만 보았다. 그때 아마도 그 아저씨는 이 사람이 왜 이리 노려보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 약 10년 만에 그 아저씨를 방어진 가는 좌석버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몇 분간의 구구절절한 설명(자신은 장애인이고 다른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이렇게 버스 속에서 여러분께 불편함을 줘서 죄송하다)이 이어지고 그동안 나는 속으로 ‘참 레파토리도 다양하군’ 하고 약간의 경멸(정직하지 않게 돈을 번다는, 혹은 성실하게 살지 않아서 저 나이에 아직도 저런 일을 한다는)의 비웃음을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손수건을 다시 걷으러 나에게 온 순간 이 아저씨가 참 늙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흰머리도 없었고 얼굴에 주름도 이만큼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지난 10년간의 삶의 고단함이 다 보이는 듯 했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을 흉내 내는 듯 혀 짧은 소리의 ‘감사합니다’와 함께 내 손의 체크무늬 손수건을 가져갔다. 예전에 아팠던 5살의 딸의 진실과 상관없이 손수건을 사려했는데 약간의 시간차로 손수건을 가져갔고 다시 손수건을 사려면 손을 들어서 의사표시를 해야 되고,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것이고, 이런저런 것에 익숙치 않은 나에게는 불편한 것이었다.

결국 손수건은 사지 못하고 그것은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 정당하지 않은 2000원(왜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지는 지금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저 아저씨의 삶을 개선시킬 방법은 없었다, 등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정당화 되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후 내 머릿속에는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 아저씨의 고단한 삶이랑 10년이 지나 마흔이 가까워서도 버스 속에서 손을 들지 못한 나의 소심함이 주는 불편함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에 그 아저씨를 또 만나면 손수건을 5개 세트로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또 그때의 5살 딸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를 웃으면서 따듯하게 맞아주는  그런 집으로 그 아저씨가 퇴근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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