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달리자] 얼어 죽은 거지 한명도 ‘우리의 책임’
상태바
[말(語)달리자] 얼어 죽은 거지 한명도 ‘우리의 책임’
  • 박태식
  • 승인 2008.11.20 14:1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릴레이 수필 대장정]19 - 박태식(부산대 97졸, 건치 부산경남지부 사무국장)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는 것을 한번쯤은 느껴봤을 일이다. 배석기 선생이 손수건을 사지 못한 일처럼…….

내가 아는 분 중에 사진관을 하는 분이 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었다는. 그런 연유였을까? 그는 한참 전에 긴 시간을 부산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노숙자들과 함께 ‘뒹굴었다’고 한다.

노숙자로 나앉게 된 사연부터 지금의 심경까지도 듣고 아픔을 나누었다고 한다. 너무 배가 불룩해 보여서 혹시 나쁜 병으로 복수가 차지 않았나 걱정했던 노숙자가 강아지를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이야기는 끊기 힘든 유혹이며 아픔이었다.

물론 노숙자에게 적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중간하게 적선했다가 술만 퍼마시게 되면 어떻게 하는가? 날씨가 추워질 때 괜히 소주 값 줬다가 얼어 죽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동냥하는 버릇이 들어서 자활이 더 어려워진다.…… 등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분의 답이 명쾌하다. “천원 주면 소주 사마시고 싸움질해요. 만원 주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목욕하는 분도 있어요. 만원 주면 돼요!”

서민들 사정에 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리라.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주일치 담뱃값, 한 가족 자장면 값도 되질 못하는 금액이 아닌가? 그래도 그렇게 많은 돈을 노숙자에게 줘도 되나? 차라리 아깝다고 솔직해지는 편이 낫겠다.

천원이든 만원이든 그 결과는 나의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효과도 따지고 보람도 따지고 전망도 세워야 하겠지만, 그동안 굶주리는 사람에게 ‘내일’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볼 일이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곤 한다.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나는 얼굴과 걸음걸이, 그 자체에서 괴로움이 느껴지는 한 노숙자를 보았다. 여느 노숙자와 큰 차이가 없어보였지만 춥고 길었던 전날 밤의 고통이 말없이도 느껴지는 그런 행색이었다.

분명 술을 마신듯 보였고 배고파 보였다. 첫 환자 약속에 늦은 나는 빠른 발걸음이었다. 그를 지나치면서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순간 그가 나를 지나쳤다. 나의 관성적인 빠른 걸음도 계속되었다. 그를 만난 곳에서 직장이 있는 출구까지는 4~5분은 되는 거리이다. 출구를 향한 계단의 반을 오르면서 이렇게 무거운 출근길은 없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기다리는 첫 환자도 잠시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귀찮음도 뒤로하고, 어떻게 하면 그가 아니 내가 어색하지 않게 일을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한 채……. 그는 아까 있던 자리에서 얼마 벗어나 있질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옆으로 슬쩍 다가서서는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아침 식사는 했습니까?” 그의 괴로운 얼굴이 옆으로 흔들리는 순간 누가 볼까 무섭게 주머니에 만원을 넣고는 도망치듯 돌아왔다. 오는 길은 길었고 얼굴은 뜨거웠다. 차라리 최루탄 뒤집어쓰고 거리에 서 있는 편이 더 낫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 참 힘들구나! 나쁜 짓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색할까! 그래.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구나. 그동안 대체 난 무얼 하고 지냈나?

그리고 자랑하고 싶었다. 무서운 불주사를 씩씩하게 이겨낸 초등학생처럼. 내 작은 용기를 자랑하고 싶었다. 저녁에 마누라에게 신명식 선생님의 둘째처럼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엄마가 아닌 마누라는 별 다섯 개의 칭찬을 해 주었다. 하지만 누구나 첫걸음이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 나는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욕심을 버렸다.

내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계획이나 불굴의 투지가 아니었나보다. 그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했던가보다. 스물 살이 된 청년 건치에게 수많은 작은 용기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신명식 선생님이 쓰신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

‘추운 겨울, 얼어 죽은 거지 한명도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배석기 2008-11-25 19:02:07
라고 말하고 싶네요. 근데 그 작은 용기란 것이 나이먹어가면 저절로 생기는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ㅠㅠ

조남억 2008-11-21 12:22:11
감동스럽게,,잘 읽었습니다.....첫걸음이 역시나 힘들고,,,중요하네요...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