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반미! 이제는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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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반미! 이제는 못참아
  • 임종철
  • 승인 2003.0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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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50년의 금기를 깨다


촛불로 되살아난 월드컵 열기

아마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로 시작하는 민중가요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 소위 운동권들 사이에서 불려졌던 이 민중가요는 일반인들의 정서에는 상당히 거칠고 그야말로 과격하게 느껴지는 노래였다.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최근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노래를 한번 보자.

“이제는 못 참아 Fucking U.S.A.
살인마 양키놈의 뻔뻔한 저 미소를
이제는 못 참아 Fucking U.S.A.
오만한 미국놈의 전쟁협박 공갈을
(‥‥‥)
다 함께 외치자 Fucking U.S.A.
우리의 힘을 합쳐 미국놈 몰아내자”
(윤민석 작사·작곡 ‘Fucking U.S.A.2’ 중에서)

이 노래는 지난 12월 14일 미군궤도차량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 시청앞 집회에서 10만 명이 촛불을 밝힌 가운데 불려졌다.

지난 한 달 시청과 광화문 일대는 초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의 열기가 민족의 자존심을 요구하는 촛불로 다시 살아났다. ‘주권회복의 날’ 저녁 광화문과 시청을 환하게 밝힌 10만여 개의 촛불은 미국을 야유하는 그 어떤 과격한 노래나 욕설도 누그러뜨리며, 처참하게 죽어간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을 달래주고 있었다.

‘반미’는 이제 대중문화다

2002년. ‘반미’는 더 이상 시민단체나 학생운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네티즌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고 불가능해 보였던 미대사관 앞 시위도 치렀다. 시민들이 내건 ‘순수한 추모’와 ‘주권 확립’이라는 지금의 구호는 80년대의 반미와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반미운동’은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미’. 특히 “미국놈 몰아내자”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치도곤’을 맞을, 아니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방화살인 때문이기는 했지만 1982년 부산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문부식씨는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86년 4월 이재호(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정치학과 4년), 김세진(서울대 자연대 학생회장, 미생물학과 4년)은 ‘미제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 반대’, ‘반전반핵 양키 고 홈’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88년 5월 15일 조성만(24세, 서울대 화학과 2년)씨는 “민족통일을 위해 미국이 물러가야 한다”며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했다. 이렇듯 한국전쟁 이후 80년대까지 농민들의 수입농산물 반대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반미’투쟁은 학생운동권의, 그것도 비교적 소수의 극단적인 투쟁 형태였다. 81년 ‘조선일보’ 설문에 따르면 “미국은 우리의 ‘좋은 우방’ 또는 ‘우방’”이라고 답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92%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대중예술인, 프로야구 선수들의 소파개정 요구 선언, 중고생의 미국계 패스트푸드 불매운동에서 보여지듯 반미는 하나의 대중문화로 확산되는 느낌마저 든다.

다양하게 확산되는 반미문화

지난 12월 21일 부산에서는 촛불시위 도중 시민들이 맥도날드 앞에 계란 세례를 퍼붓는 사건이 발생해, ‘반미’를 풀어내는 국민들의 방식이 한층 달라졌음을 느끼게 한다. 80, 90년대야 계란을 투척하려면 그 대상이 용산 미군기지나 미 문화원, 미 대사관쯤으로 생각했을 텐데…. 이제 그 대상은 오히려 맥도날드나 콜라, 허리우드 영화 등 문화적 영역으로 전이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과의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주었던 골 세레머니처럼 미국에 대한 목소리는 그 주체, 대상, 방법 등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007 어나더데이’의 내용에 대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에서 보이듯 우리 민족에 대한 미국의 무지와 무시를 더 이상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간의 미군범죄와 지난 해 F15 전투기 구매 결정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이기적 모습, 거기에 곁들여 부시의 집권에 발맞춘 미국의 보수화, 지난 9·11 테러에 이은 미국의 강경일변도 대세계 군사정책과 그에 따른 한반도 긴장조성은 그렇지 않아도 높아질대로 높아진 우리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폭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반미’는 빠른 속도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갔다.

당장 나열할 수 있는 반미문화라 하면, 맥도날드 안가기, 콜라 안마시기, 007영화를 비롯한 허리우드 영화 안보기, 말보로 안피기 운동 등이다. 조금 수준이 높다고 한다면, 홍대 부근 카페 주인들의 미국 손님 안받기 운동이나, 주한미군 밖으로 못나오게 하기 운동 등이 있다.
이러한 분위기로 가다간 나중에 ‘영어 안쓰기 운동’이 진행될 지도 모를 터이다.

반미문화 일등공신은 인터넷

얼마전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가 현재 확산되고 있는 반미문화에 대해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실제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인터넷’.

지금의 활성화된 반미문화의 일등공신은 바로 인터넷이다. 반미문화는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문화적 산물들을 탄생시켰다. 다양한 교류와 멀티미디어 활용이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서 분출되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주장과 표현은 이전의 학생운동권의 구호에 머물렀던 반미의 문제를 우리가 쉽게 접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극복해야 할 민족의 문제로 와 닿게 했던 것이다.

“따르릉, 여보세요 조지 부시? 잉, 나여, 딴 것이 아니라 … 자네가 우리에게 팔겄다고 한 F-15라고 하는 그, 그 자전거 있잖여. 우리가 사면 나중에 부품 땜세, 상당히 골치가 아프지 않겄느냐 하는 그런 의견이 있어 가지고 시방 전화한 건디 말이여 … 뭐시여? 10년 후쯤은 공장을 폐쇄할지도 모른다고? 아, 그러면 쪼까 곤란하잖여 … 뭐시여? 음마, 이런 잡것이… 야, 이 xxx야 … 확, 너 뒤질래?”(김대중-조지부시와의 엽기전화통화) 여기에 깔리는 나레이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우리나라 모 대통령이 F-15 문제로 미국의 모 대통령에게 ‘했으면’ 하는 소리입니다.”

불공정한 소파의 개정과 나아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자존심과 생존이 보장되는 대등한 국제관계를 확립할 때까지 이런 소리를 듣고자 하는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최대의 대중여론 조성 수단인 인터넷에서의 반미문화 조장은 더욱 더 거세질 것이다.

임종철(편집위원)

“그날 너흰 무슨 말을 하며 걸어갔을까
봉숭아빛 두 뺨은 햇살 아래 반짝였고
어떤 꿈으로 하루가 설레였을까
얼마나 무서웠니 겁에 질렸니
탱크 바퀴 밑에 뒹구는 피 묻은 운동화
너희가 신고 갈 열다섯살 희망이었는데
물방울 터지듯 웃던 고운 아이들아
어린 새처럼 파들대다 죽어갔니
떠나라 이 땅에서(미친 탱크여 떠나라)
우리의 여린 희망(미친 탱크여 떠나라)
짓이기지 말고 이 땅에서 떠나라
피를 부르는 오만한 양키들아
(정지원 작사, 안치환 작곡 ‘피 묻은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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