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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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리마
  • 박종순
  • 승인 2004.10.27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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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도한 산 마르띤을 기념하는 산 마르띤 광장

처음 리마의 느낌은 꽤 삭막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워낙 미리부터 들은 좋지 못한 소리 때문인가?  누구는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택시를 탔다가 택시강도를 만났다... 또 정신 차리지 않음 소매치기 당하거나 가방이 없어질 수 있다는 등 많이 조심해야 하고, 그런 쪽으로 리마가 유명하다는 소리 등등...

무려 24시간 이상 비행기를 갈아타며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그곳 시간으로 자정을 넘겨 한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다행히 미리 예약한 리마 한인 민박집 주인이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우리랑 비슷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한다며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늦은 시간에 여러가지로 다행이었다.

▲ 아레끼빠에서 대한민국 티코의 위력
택시를 타고 가며 보이는 주변 풍경은 그런 선입관 때문인지 정말 더 긴장하게끔 만들었지만, 긴 비행시간 때문인지 도착후 너무 늦은시간이라 물이 나오지 않는다 했지만 씻지도 않고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간단한 아침 식사 후 민박집 아저씨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우선 페루에선 택시가 미터기가 없어 미리 갈 곳을 이야기한 후 가격을 결정하고 타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지리도 잘 모르고 어벙벙한 우리같은 관광객들은 바가지 대상이 되기 때문에 대략 오늘 갈만한 곳의 위치와 대략적인 택시 가격 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물론 그렇게 들을 땐 바로 알지만 실재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택시값이 싸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심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그냥 타고 다녔다. 특히 공항 주변이라든지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할 땐 정말 얼토당토 않은 가격을 부르기도 하는데 그럴 땐 괜히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거의 현지인 가격과 같게 부르는 경우도 많아 오히려 그럴 땐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며 그정도 돈 밖에 받지 않는 게 미안할 때도 있었다.

택시는 주로 웨곤형인 일제 도요다 코롤라와 우리나라 티코가 많다. 차 종류에 따라서도 가격차이가 날 수 있고, 가격흥정 할 때 뒤에 와서 기다리기도 한다. 잘 안되면 바로 자기에게 오라고...

우리의 일정상 리마에서는 처음 2일과 마지막 날 귀국 비행기 타기 전 정도였다. 그나마 잉카 트레일이 하루 줄어드는 바람에 리마 일정이 하루 정도 늘어 난 것이다. 그래서 리마 국립 박물관, 까떼드랄(대성당), 산 프란시스꼬 성당, 황금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라파엘 라르꼬 에레라 박물관 등을 시간되는 대로 둘러 보기로 했다.

페루에서는 어느 도시이거나 심지어는 조그만 마을에도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그리고 그 광장은 관공서와 성당으로 둘러싸여 있어 항상 먼저 찾게 되는 곳이고, 그 도시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여유있게 앉아 있는 모습들이 좋았다. 아르마스 광장 뿐 아니라 다른 이름의 많은 광장들이 발달되어 있었고 또 조그만 소공원들도 있어 전반적인 도시의 느낌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 아랍풍의 나무발코니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은 까떼드랄이 정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한 쪽은 대통령궁이 있다. 그리고 파스텔 톤의 콜로리얼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특이했던 것은 아랍풍의 나무발코니들이었다. 스페인이 아랍에게 지배될 때 영향 받은 건축양식인데, 멀리 페루까지 건너와 인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런 양식은 리마뿐만 아니라 식민지 도시엔 어디에도 있었다. 하지만 마치 장농을 걸어 놓은 듯한 느낌은 좀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리마는 리막(께추아어로 '말하는 자'라는 뜻)강이 흐르고 있는 곳에 세워진 식민지 수탈의 수도이다. 식민지 전의 리마는 해안지역의 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신록이 우거진 오아시스였다. 대략 기원후 200~800년 사이에 리마문화라는 지역문화를 꽃 피웠던 곳이고, 이후 와리 제국의 영향을 받다가 찬까이 문화의 시기를 거쳤고 이 때 빠차까막 신전은 특히 해양문화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주던 신전이었으며, 이후 잉카에 흡수되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스페인 침략자로 잉카를 정복한 후에 수 많은 수탈품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넓고 비옥하며, 태평양 연안의 자연항의 여러 조건이 맞는 이 곳을 수도로 세웠던 것이다. 이후 식민지 시대의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여 지금은 전 국민의 1/3 정도가 모여사는 거대 매트로로 성장해 있다.

특히 요즘은 페루 전 지역에서 많은 빈민들이 그대로 들어와 많은 도시빈민층을 형성하고 있고, 앞서 이야기 했던 그야말로 생계형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범죄자체도 그렇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라 한다. 그냥 훔쳐들고 달려가는 게 기술의 전부인 정도이다. 하지만 요즘은 팀을 이뤄 좀 더 조직적으로 발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행을 마친 지금 생각으론 그렇게 위협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조심해야함은 틀림없는 사실으로 여겨진다.

▲ 리마 아르마스 광장에서 보이는 대통령궁
대통령궁에서 의장대 교대 행진을 구경하기도 하고, 아르마스 광장에서 산 마르띤 광장을 연결하는 차 없는 거리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바닷가 쪽 미라플로네스(꽃을 보다 라는 뜻)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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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헌 2004-10-28 19:44:39
리마의 택시는 티코가 주종을 이루죠... ^^ 리마의 보통 사람들... 중고티코 사서 택시 운행하는게 큰 소원 중 하나랍니다. 사면 온 가족이 너무너무 좋아한다네요. 반면 장동차 부품 훔쳐 가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래선지 리마에서 보는 자동차들은 부품 못뜯어가게 bar를 댄다든지 2중3중으로 나사를 박아넣은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리마는 인구수로 보면 엄청난 대도시인데 그 안의 백인과 원주민사이 빈부격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가이드 분도 원주민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더군요. 한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갈등이었습니다. 리마... 비가 안오는 도시... 언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성훈 2004-10-28 15:18:29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남미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지상으로나마 여행을 하게돼서 매우 좋군요. 앞으로 기행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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