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가입자 대표 ‘비전문가’가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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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가입자 대표 ‘비전문가’가 합당(?)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9.02.18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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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교수, 건보수가 결정체계 토론회서 ‘황당 주장’ 눈살

수가계약의 실질적 당사자인 가입자를 대표하는 기구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정치적 이념이 뚜렷하거나 권력화된 시민단체 위주로 구성돼 의료소비자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제기돼 눈살을 사고 있다.

또한 직종별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도입된 유형별 수가계약제에 대해 이로 인해 공단의 협상력이 극대화돼 단체계약성이 온전하게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에 요양기관의 협상력을 강화해야 하고, 현재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의료파업을 부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이상돈 교수는 지난 12일 오후 2시부터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과 대한병원협회 공동주최의 ‘건강보험 수가결정체계 이대로 좋은가?-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이와 같은 기묘한 논리의 주장을 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변웅전 위원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수구 회장 등 의료관련 단체 관계자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상돈 교수가 주제발표를 진행했으며, 병협 박상근 보험위원장, 의협 전철수 보험부회장,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공단 안소영 급여상임이사, 복지부 박용현 건강보험정책관 등이 참가한 가운데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저수가’로 의료의 왜곡 심화

2000년 이후 수가는 각 의료행위의 상대가치점수와 점수당 단가인 환산지수를 곱한 값으로 정해지는데, 현재 수가계약은 환산지수만을 계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상돈 교수는 “현재의 수가계약은 요양기관의 기대치에는 훨씬 못미치는 평균 수가조정율을 미리 고정시켜 놓고, 그 범위 안에서 공단 이사장과 요양기관 대표가 체결하려다 번번히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결렬되면 사실상 복지부 장관의 수가고시에 의해 대체돼 버리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렇듯 현 수가계약제도는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체계를 ‘저보험률-고보장성-저수가’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제로 이해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요양기관들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초래해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의료기관들은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영리사업 확장 ▲간호인력 최소화 등 의료비용 축소 ▲첨단고가장비 도입 ▲비급여 진료영역 확대 등 왜곡된 진료행태를 보이게 되고,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 파괴 ▲비급여 비중 대폭 확대 ▲의사와 환자 관계 상업적 관계로 변질 등의 결과가 초래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

이 교수는 “수가계약제의 실패는 정부에게만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고, 요양기관과 가입자에게는 각각 재정적자와 실질적인 보장성 약화라는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면서 “의료기술의 발전과 공단 가입자의 의료재향유의 수준향상을 이루면서도 보험자와 요양기관 모두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가입자에게도 합리적인 보험료 부담을 지우기 위해 ‘적정수가’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수가협상 공급자는 전문가가, 가입자는 비전문가가

이렇듯 수가계약제의 개혁을 통해 현재의 저수가를 적정수가로 바꿔야 한다는 이상돈 교수의 주장에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크게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대해 이 교수는 납득하기 힘든 주장들을 펴 논란이 됐다.

▲ 이상돈 교수
먼저 이 교수는 “공단 재정운영위가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정치적 이념이 뚜렷하거나 권력화된 시민단체 위주로 구성된 것은 문제”라면서 “의료소비자를 대표하는 단체, 즉 다른 영역의 ‘소비자’ 개념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특히 의료이념적으로 ‘중립성’이 있는 단체에서 위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비자 단체도 관료화와 권력화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가입자 대표의 구성에서 의료소비자 개인을 무작위로 선정하는 ‘시민패널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시민패널제도는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현행 재정운영위의 공익대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공급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옹호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자를 협상의 대표로 하고, 가입자는 무작위로 선정된 비전문적인 시민을 그것도 이해관계 옹호 없이 중립적인 인사로 대표가 구성돼야 한다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구성도 ‘가입자 8인, 공급자 8인, 보험자 4인, 공익대표 4인’에서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공익대표를 8인으로 늘려 실제 협상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도록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는 친의료계 인사가 더 많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최종 표결에 들어갈 때 공급자 쪽수를 늘리자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

이 밖에도 이 교수는 ▲유형별 수가계약제 하에서 요양기관 협상력 강화 기전 마련 ▲의료파업의 부분 인정 ▲총액계약제 도입 유보 등을 주장했다.

건정심 폐지 등 수가협상 과정서 ‘정부 개입 말아야’

이러한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반론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시간을 허비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아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다”면서 “큰 문제는 건강보험 저수가의 문제를 의사결정구조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가협상구조가 공급자측에 불리한 구조라는 주장에 대해 김 소장은 “최근 3~4년 사이 재정이 10조원이 증가했음에도 보장성 수준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서 “건정심 구조에서 정부측이 과도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가입자측도 불만과 문제를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소장은 “개인적으로 현재의 건정심을 폐지하고 수가는 가입자와 공급자의 협상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면서 “보험료는 수가와 급여확대를 반영해 결정하면 된다”고 피력했다.

경제논리상 집단구매자로서의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가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공급자와 가입자의 협상으로 수가협상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정부는 협상과정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도 아예 ‘건강보험 가입자위원회’로 재편하고 수가계약과 급여확대 및 보험료 조정도 엇갈려 격년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김 소장의 생각.

김 소장은 “수가인상을 ‘환산지수’ 만으로 발표하면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수가협상 단위별로 총지출예상액을 발표하고, 그 증가율까지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정수가 위해선 ‘표준서비스 개발’ 필요

“수가계약제가 수가고시제로 전락했다”는 이상돈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공단 관계자도 반박에 나섰다.

공단 안소영 급여상임이사는 “수가계약은 의료비 부담 주체인 일반국민들의 경제적 부담능력을 초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계약에 앞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가 조정률을 미리 판단해 보는 것은 계약당사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준비사항‘이라고 반박했다.

‘의료의 자율성’ 주장에 대해서도 안 이사는 “의료서비스는 국민의 기본적 수요이자 공공적 성격이 강한 분야기 때문에 국가의 적절한 범위 내에서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면서 “어느정도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는 진료의 표준을 설정하는 것은 비용적 측면 뿐 아니라 양질의 의료서비스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박용현 건강보험정책관도 “수가계약과 관련 공급자와 가입자 모두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양측이 모두 주인”이라며 “협상이 결렬되면 정부가 개입한다고 뭐라 하는데, 양쪽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계약을 성사시키면 개입할 이유가 없지 않냐”고 주장했다.

‘적정수가 보상’과 관련 안 이사는 “질병치료에 필요한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안, 즉 먼저 각 의료행위의 표준서비스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면서 “또한 표준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기관을 개발한 후 그 기관의 운영상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수입 등을 기준으로 적정한 보상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안 이사는 “전혀 조직화되지 못한 문외한과 자발적 여론주도층을 대상으로 시민패널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완전 비전문가를 협상대표로 세우자는 것으로 ‘대표성’에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상대가치 총점 고정’과 관련 안 이사는 “상대가치점수가 올라간 행위가 있으면 내려가는 행위도 있어야 용어 그대로 ‘상대적’인 점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만약 상대가치 총점이 변동된다면 과거 위험도 도입의 선례에 따라서 환산지수 계약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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