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YMCA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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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YMCA야구단
  • 강재선
  • 승인 2002.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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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처럼 부피를 늘려간 한국 영화산업은 조폭 코메디로 그 길을 좁혀가면서 스스로를 자멸의 궁지로 몰고 있다.

걸걸한 욕설과 폭력, 무의미한 말장난의 지루한 반복 속에 ‘YMCA야구단’이 나를 웃겼다. 생각해 보니 1905년 대한제국에 비운의 항일투사나 비열한 일본군, 궁중사람들만 있었던 건 필시 아닐 것이며, 늘상 눈물과 한숨만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연도별 사건으로 정리된 역사책에 오르지 못하고, TV 사극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신나서 웃고 춤추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일에 몰두한 모습을 누렇게 바랜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뽑아내며, 공놀이를 하는 ‘YMCA야구단’이 그 시대 사람들인 양 슬며시 화면 속으로 들어오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YMCA야구단’은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 웬 야구단 하나가 이러저러한 곡절 끝에 치르는 한일전,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를 외치는 감동의 역전드라마이다. 익숙한 전개방식이지만, 간도 적당하니 맛깔나게 요리되었다. 승리와 화해, 정정당당 스포츠 정신과 유머, 우정과 사랑이 가미된 스포츠영화의 공식에 충실하다. 스포츠영화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영화에 호의적인 건 아무래도 4번 타자 송강호 덕분인 듯하다.

혁명과 변혁의 의지를 무마시키는 효과적인 방법과 대상… 서양의 신문물을 보고 매혹과 경멸을 동시에 느끼며 어지러워했을 민중들. 나라가 기울고 세상이 뒤숭숭해 시름에 젖었던 백성들. 과거제 폐지로 암행어사가 되는 목표를 잃었던 선비 호창.

가버린 시대의 꿈에 미련을 접지 못하고 근대를 따라잡지도 못하는 그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방법으로, 구겨진 민족자존심을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작은 공 하나를 택한다. 택했다기보다는 주어졌다는 것이 옳겠지만,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아들이 우정을 나누고, 양반과 머슴이 서로를 위하고,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용광로 같은 지점이 스포츠라는 건 확실히 ‘무마용’ 혐의가 있다. 백년 후, 또 다른 공놀이에 열광했던 백성들이 한 순간 모든 것을 잊었듯이….

영화 자체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니다.
난 이 영화 재미있게 봤다. 단지, 윗사람들의 형편없는 잘못을 모두 아랫사람들이 짊어지고 이 나라를 끌어왔다는 것과, 아름다운 인간의 육체를 이용한 즐거운 공놀이 하나에도 음모론을 제기하는 나의 정서가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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