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반갑지 않은 손님 맞이, '액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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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반갑지 않은 손님 맞이, '액땜'
  • 공형찬
  • 승인 2009.05.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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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2009년 39호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새해 벽두부터 반갑지 않은 손님맞이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일명 '구안와사'라고 불리는 편측성 안면신경마비를 겪게 된 이야깁니다.

1월 1일 신년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계양산에 올라 올 한해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가벼운 산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춥지도 않은 날씨라 싫어하는 가족들을 재촉해서 간 산행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올라갈 때는 불평불만이 하나 가득이지만 내려올 때는 그래도 기분이 나아져서 내려오곤 합니다.

꼭대기에 올라 육개장 컵라면을 먹을 때는 즐거웠습니다. 땀 흘리고 먹는 간식이야 말로 꿀맛 아니겠습니까? 올 한해는 기필코 살을 빼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삼산체육관에 헬스를 다닐 거야 하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다음날 왠지 얼굴이 뻑뻑한 느낌이어서 얼굴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 일 없이 잘 출근해 근무하고 퇴근한 후에 가족들과 저녁 먹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데 집사람이 "왜 얼굴을 한쪽으로만 찡그려?"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한쪽으로만 찡그리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곧바로 거울을 보며 안면근육들을 움직여봤죠. 그런데 왼쪽이 모조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감각은 약간 둔해지긴 했어도 크게 이상이 없는데 운동신경만 마비가 온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듣기만 했던 안면 신경마비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을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는데 온 것입니다.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몸 관리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못 속이는 것인지 아님 제대로 관리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참 한심하더군요.

안면마비의 증상은 웃을 때 한쪽만 입 꼬리가 올라가니 소위 썩소가 되어 이상합니다. 이마를 찡그려 봐도 왼쪽은 보톡스 맞은 것처럼 완전히 펴져있는 것입니다. 이때 이마의 주름이 있다는 게 소중하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눈은 왼쪽만 감는 것은 안되더군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것이 되지 않으니 계속 눈을 뜨고 있는 셈이 되고 그러니 눈물은 계속 나오고 눈물 때문에 왼쪽 눈은 초점이 맞지 않고 답답하더군요.

그때부터 이곳저곳 인터넷을 뒤지며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인불명에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온 설들이 바이러스나 또는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스트레스 등등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들은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최소 2주는 간다는 것입니다. 귀밑 삼차신경이 나오는 곳이 묵직하게 통증도 있고 좌우간 한방이든 양방이든 확실한 치료법이 없고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2주 정도면 60%이상이 좋아진다고 하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주위 의사들이나 한의사들은 입원하는 게 좋지 않겠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나름 마비증상이 아주 심한 편은 아니라는 한의원 원장의 말도 있고 당장 치과를 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참에 한 일주일 푹 쉬어버릴까 하다가도 환자도 걱정, 돈도 걱정 이래 저래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때는 대형치과에 대한 부러움이 샘솟더군요. 월요일 하루만 후배한테 대진 시켰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며 많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집 앞 한의원에 가서 침 맞으면서 한약 먹고 이비인후과에 가서는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지어먹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거의 차도가 보이지 않더군요. 1주일이 지나 2주에 접어들어 가니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 나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오래 가는 사람도 있어 속으론 걱정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집, 치과, 한의원만 다니면서 찬바람 쐬지 않으려고 마스크 쓰고 손난로로 얼굴 온찜질도 하면서 나름 조심하면서 치료했습니다.

2주경부터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주 지나고 70~80%정도 좋아지고는 나머지는 천천히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벌써 마비가 온지 3달이 되어가지만 다 완쾌되지 않고 있으니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치과의사라는 게 나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정해 준다고 하지만 막상 개인에게는 찌질한 점방주인을 못 벗어나고 몸상하고 다쳐도 맘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 게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축복임을 깨우친 것만 해도 다행이지 싶습니다. 올해는 달마다 액땜을 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좀 평안하게 지나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공형찬(건치 인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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