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그리움과 기다림의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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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그리움과 기다림의 쑥부쟁이
  • 이충엽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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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보라색이 확실하게 보이는 전형적인 쑥부쟁이
가을이 깊어간다. 너무 깊어 시리도록 깊다 못해 스산한 바람이라도 불면 떨어지는 낙엽으로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다. 힘든 세상살이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채비를 차리며 스스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있다.

인간이므로 항상 가을을 맞는 기분이야 늘상 같지만, 갈수록 현실에 얽매여 가을 마저 가슴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이 참에 가을을 한번 느껴보고자 가을 국화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라 했던가. 국화과에 속하는 많은 꽃들이 있으니, 구절초, 산국, 감국, 쑥부쟁이, 해국 등이 대표적인 이름일 것이다. 그중에 쑥부쟁이는 가을 햇살을 받고 자라면서도 노랑이 아닌 연보라색의 색감과 내음이 그윽한 야생화이다.

▲ 가을 이른 아침에 피어 있는 쑥부쟁이
가을이 시작하는 산야에 발을 들이면 어디서나 연보라색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는 우리 꽃이 바로 쑥부쟁이다. 서양의 코스모스가 도로 변에 무수히 뿌려져 있지만, 이 꽃을 알고 난 후에는 서양 꽃인 코스모스보다는 더 친숙하고 가까워 우리 꽃을 개량해 도로변에 심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쑥부쟁이란 이름은 쑥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의 이름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대장장이가 11남매를 데리고 오손도손 살고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 먹고 살기가 어려웠단다. 그래서 대장장이의 첫딸이 쑥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산과 들로 쑥을 캐러 다녔는데 동네 사람들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라 해서 쑥부쟁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랐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쫒기는 사슴 한 마리를 숨겨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노루는 고마워하며 은혜를 꼭 갚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숲으로 사라졌다. 그날 산을 내려오던 쑥부쟁이는 멧돼지를 잡으려고 파놓은 함정에 빠진 한 사냥꾼을 발견해 구해 주었는데, 이 사냥꾼은 아까 그 사슴을 쫒다가 그만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냥꾼은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갔다.

쑥부쟁이는 늠름하고 씩씩한 젊은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일하며,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이 되어 매일 사냥꾼을 만난 그 산을 오르고 또 올랐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고 타는 가슴은 서서히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집에는 다시 2명의 동생이 생기고, 어머니는 몸져 누워 버려 쑥부쟁이는 근심과 그리움이 나날이 쌓여만 갔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에 올라가 산신령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몇 해 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 노란 구슬이 3개가 든 보라색 주머니를 건네주며 말을 했다.

"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노루는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고, 쑥부쟁이는 구슬 하나를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 "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정말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

▲ 가을 산을 등산하다보면 많이 보이는 까실쑥부쟁이
그해 가을 다시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 사냥꾼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냥꾼이 오지 않자 구슬을 물고 사냥꾼이 나타나길 기도 했다. 그러자 사냥꾼이 정말로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사냥꾼은 이미 처자가 딸린 처지였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고 같이 살자고 했지만 쑥부쟁이는 그를 다시 돌려보내리라 마음먹고, 남은 하나의 구슬을 입에 물고 사냥꾼을 처와 자식에게 돌려보내는 소원을 얘기 했다.

가슴아픈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보내고는 그리움에 결혼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동생들을 보살피며 항상 산에 올라 나물을 캐며 열심히 살아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 올라 나물을 캐던 쑥부쟁이는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해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한다.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온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라 불렀다는 슬픈 얘기가 전설로 내려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꽃말은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사실 가을에 우리가 보는 쑥부쟁이는 대부분 개쑥부쟁이로 개자가 들어가는 꽃이름 중에 제일 예쁜 꽃 이름이 아닌가 한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종류로는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섬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등등이 있다. 꽃은 7-10월에 피며, 어느 조건에서도 잘자라므로 키우기가 용이하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선 쑥부쟁이를 비롯한 유사한 것들을 통털어 산백국이라 해 약으로 쓴다. 감기로 열이 나거나 목이 부을 때 잘 듣는다 하며, 해독작용이 있어 뱀에 물렸을 때 붙이기도 한다.

▲ 가을에만 피는줄 알지만 봄에도 이렇게 핀다
이 가슴시린 쑥부쟁이와 함께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키우는 또 다른 가을을 느껴보고, 경제가 어렵고 모두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힘과 용기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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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 2004-11-08 17:40:32
애절함까지
아름답고도 슬픈 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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