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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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강재선
  • 승인 2002.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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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 이른바 베를린 금곰상에 빛나는 ‘세련되고 힘있는 판타지’. 있는 그대로의 줄거리를 따라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재롱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전혀 귀엽지 않은 괴물들이 귀엽게 구는 것도 웃기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상징과 은유를 음미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변함 없이 낡은 방식과 오래된 철학을 고수하지만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 미야자끼 하야오 할아버지는 멋지다!!!

미야자키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무대는 온갖 잡귀들이 등장하는 이상한 마을. 망자의 음식에 손을 댄 후 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하고 이상한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0세 소녀는 유바바와의 계약에 따라 치히로라는 이름을 버리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안온한 부모의 그늘에서 받는 것에 익숙해 있던 소녀가 생경한 공간에서 남에게 무언가를 주고 헌신하는 것을 배운다.

줄거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평범한 소녀의 환상적인 모험과 성장담이랄까.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 현대를 사는 일본인들의 공통된 얼굴을 보여주고자 했다. 돼지로 변하는 치히로의 부모는 고도성장기를 겪으면서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욕심 많은 현대인에 대한 풍자이고, 온천마을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는 이기적인 모성에 대한 야유다. “우리들 중 가오나시가 있다”고 한 미야자키는 말과 정보가 넘쳐 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의사 소통의 기회가 상실되고 있음을 얼굴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통해 보여준다.

치히로가 빠져든 세계에서 말은 힘을 갖는다. 힘없는 공허한 말들이 무의미하게 넘치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말은 힘이고 자아이며 의지임을, 감독은 치히로의 성장을 통해 강력히 주장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온천장에 오물신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커다란 똥덩이다. 다들 피하고 코를 막느라 정신없다. 만만한 치히로가 시중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 물을 갈아주며 시중을 들던 중, 오물신에게 박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힘껏 잡아 당겨 본다. 자전거가 뽁 하고 나온다. 뒤이어 시커먼 기계류와 각종 쓰레기들이 물밀 듯이 몇 초 동안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피했던 오물신은, 인간이 버려놓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병이 든 강의 정령이었던 것이다. 미야자키와 인류의 영원한 화두, 인간과 자연, 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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