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人和)를 무시하는 이성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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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人和)를 무시하는 이성의 가벼움
  • 편집국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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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영(논설위원, 강릉 치대)
나라 안과 밖을 따질 것 없이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장엄하게 넘실대는 붉은 물결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지만 텔레비젼을 통해서 화면이 터져나갈 듯 뿜어내는 붉은 색의 힘을 보며 우리 국민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현상만큼이나 다양한 반응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간다. 심판판정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에서 시작된 논란이 패배주의적 국민의식 논란으로 비화하고, 자조섞인 냄비근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한 귀화한국인 교수는 국가주의에 빗대어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고, 심지어 최근 인권운동을 주창하는 한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현상을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파시즘의 전조라고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획일화를 강요하기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고 그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재시절의 우민화·획일화 시도는 혁파의 대상이었고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보수적 강압 역시 비판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오로지 다양성의 잣대 하나만으로 모든 세상사를 재단하여 판단하려는 자세 또한 획일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붉은 악마를 통해서 국민이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인화(人和)의 경험일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같이 어깨를 걸 수 있는 경험은 남북이다 지역이다 정치노선이다 하여 이리 저리 분열된 세상에서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잊지 못할 경험이다.

사회전반의 모순을 지적하고 인식하는 것이 이성에 근거한다 해도, 이러한 모순을 개혁하는 거대한 힘은 인화에서 나온다.

개혁을 위해 갈등을 있는대로 증폭시켜서 터뜨릴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인화가 없으면 터진 상처가 치유되기보다 농양의 근원을 남긴 채 다른 터질 기회를 기다릴 따름이다.

이성이 없는 인화는 부화뇌동으로 위험할 수 있겠지만, 인화가 없는 이성은 기계적 이성일 뿐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말라버린 마음에 오랜만에 찾아온 유대감과 감동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을 이해하고 예의에 벗어나지 않게 우려를 표현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논어(論語)에서 이르는 “부화뇌동하지 않지만 화합하는” 군자의 모습을 이 시대 지성에게 기대하는 마음은 탁상머리의 공자왈 맹자왈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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