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부당한 권리, 정당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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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부당한 권리, 정당한 권리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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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장이 전쟁광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재선되어서인가 세상이 아주 시끄럽다. 낙엽비가 흩뿌리는 고즈넉한 늦가을을 즐기고 싶어도 세상이 시끄러워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부시는 재선 기념으로 팔루자에서 이라크인의 대량학살극을 펼치고 있다. 부시가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만명의 이라크인이 살해되었는데, 그 중에서 10만명이 팔루자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라 안은 더 소란스럽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정치파업'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난 6월에도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회를 공전시켜 온갖 비난을 다 받더니 이번에도 역시 총리가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정치파업'을 감해해서 국회를 마비시켰다. 총리가 '거짓말'을 하는 게 옳은가? '정치파업'으로 기어코 '억지 사과'를 받아내고는 국회에 등원하기로 했다면서 하는 말도 가관이다. 한나라당은 총리를 총리로 인정하지 않겠단다. 그럴 거라면 '억지 사과'는 왜 받아냈는가? 한나라당에게 과연 이런 '정치파업'을 벌일 권리가 있는가? 이런 엉터리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그 법은 대체 어떤 것인가?

한나라당이 '정치파업'을 벌여서 혈세를 날리고 있을 때, 한나라당과 아주 친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교육자라고 내세우는데, 거리에서 외치는 내용은 도무지 교육적이지 않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면 학교를 폐교하겠단다. 그런데 현행 사립학교법은 차라리 '사립학교재단보호법'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한다. 재단이 학교 운영에 관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철저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립학교법을 지키기 위해 폐교 운운하며 공공연히 정부와 국민에게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학교의 운영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 제도적 근원이 바로 현행 사립학교법이다. 재단이 학교에 내는 전입금이라고는 2%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는 사실 학생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구태여 교육의 공공성을 말할 필요도 없다. 재단 쪽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사유재산'의 원리로 보자면, 사립학교는 아예 학생과 정부가 소유해야 옳을 것이다. 학교를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학생과 정부는 그저 돈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거리로 몰려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그들에게 학교를 멋대로 운영할 권리를 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한나라당이나 사립학교 재단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이 머리띠를 동여매고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그들이다. 겨울의 문턱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다. 공무원들이 파업을 하겠다니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원리적으로 따져서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당연한 권리일 뿐이다. 모든 노동자는, 그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떠나서, 노동권을 누릴 수 있다. 이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노조의 조합원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정부는 신분보장이 된 사람들이 무슨 파업권을 요구하느냐고 따진다. 이 빈정어린 질타를 들으며 나는 몇 해 전 새벽에 성산대교에서 당한 불심검문을 떠올린다. 문상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전경이 내가 탄 차를 세웠다. 왜 세웠냐고 물으니까 '새벽에 남자 두 명이 탄 차라' 세웠단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해서 영장을 가져오라고 하니 경찰이 와서 오히려 우리를 나무란다. '아저씨들이 잘못한 것이 없고 떳떳하다면 주민등록증을 못 보여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잘 가는 차를 세운 것부터 불법인데, 거기에 덧붙여 주민등록증을 무턱대고 보여달라는 불법까지 저지르고는, 오히려 두 사람의 착한 시민을 범죄자 취급하며 나무란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새벽의 성산대교에서 무려 한시간이나 잡혀 있었다. 황당하다 못해 치가 떨린 새벽이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는 떳떳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지 않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지키지 말라고 강요한 경찰이야말로 징계를 받아야 할 나쁜 경찰이었다. 아무리 신분보장이 되었다고 해도 파업권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그 정당한 권리를 못 주겠다고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말라고 강요했던 그 새벽의 경찰보다 더 나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무원의 신분도 바뀌고 있다. 나아가 공무원 노조는 강력한 내부 자정작용을 통해 정부의 개혁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올바로 읽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지,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권리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의 권리주장은 한나라당의 '정치파업'이나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막는 세력의 '폐교 주장'에서 드러나는 권리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개혁이 이루어지겠는가?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해 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기만 하다. 공무원노조와 대결을 벌이는 데 써야 할 시간과 노력은 공무원노조와 함께 정부를 개혁하는 데 써야 옳을 것이다. 개혁을 자신의 사명으로 주창하고 나선 정부가 오히려 개혁을 막는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에는 또 다시 금이 가고 말 것이다.

물론 공무원노조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노조는 노조가 완전히 합법화되면 정부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순서는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정부개혁을 열심히 추구했다면, 그 완전합법화에 관한 여론은 훨씬 좋을 것이다. 요컨대 '보호를 위한 노조'가 아니라 '개혁을 위한 노조'가 되어야 한다. 전자가 '이익집단'에 가까운 것이라면, 후자는 '시민단체'에 가까운 것이다. 이 차이를 잘 보고 운동을 펼칠 때, 공무원노조에 대한 기대는 훌쩍 커질 것이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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