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의약품 정책 ‘접근성 문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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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의약품 정책 ‘접근성 문제’ 부각
  • 배은영
  • 승인 2010.02.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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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6) 의약품 급여정책

새 천 년이 시작되던 그 해, 보건의료 현장은 갈등과 불신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바로 의약분업 때문.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도 15년 이상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던, 그래서 모두가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제도가 2000년 7월, 진짜 시행된 것이다.

적어도 의약품 정책에 관한 한 의약분업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우선 의약품의 급여, 가격 결정, 적정 사용의 문제가 공론의 장에 등장하였다. 의약분업과 더불어 건강보험 급여권 밖에서 조제, 판매되던 약들이 급여권 내로 포괄되었고, 약가 마진이 공식적으로 사라짐에 따라 소위 말하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처방자들의 선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약제비의 급등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급여 정책을 검토하게 된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잡히지 않는 ‘약제비 급등’

약제비 통제를 위해 우선 의존한 정책은 가격 정책이었다. 보험 약가의 관리 업무가 제약협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이관되었고, 약이 처음 등재될 때뿐 아니라 일단 등재되고 난 후에도 3년을 주기로 가격을 재평가하여 조정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제네릭 약에 대한 가격 산정 기준도 선(先)등재 약의 90% 이내에서 80% 이내로 조정되었고, 기타 실거래가를 모니터링하여 조정하는 기전도 가동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제비는 계속 증가했다.

이에 약제 사용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의사들의 처방 내역을 분석하여 의료기관별 항생제, 주사제 등 사용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각 기관에 환류함으로써 적정 처방을 유도하는 약제 적정성 평가가 도입되었다.

소비자 대상으로는 일부 일반약을 비급여하는 조치가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무산되었지만 당시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던 참조 가격제의 도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련의 약가 관리 정책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약제비 증가율은 여전히 다른 보건의료비 증가율을 상회하였고, 실거래 상환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요양기관의 리베이트 수수 관행은 지속되었다.

다시금 약가 거품의 존재가 도마 위에 올랐고, A7 국가를 참조국으로 한 약가 산정 기준의 합리성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더구나 의약품 급여 정책이 한미 FTA 협상 의제의 하나로 다뤄지게 됨에 따라 그간 논의되어 온 의약품에 대한 급여-가격 정책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2006년 5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는 약가나 급여 정책의 문제뿐 아니라 안전한 의약품의 공급, 유통의 투명성 확보 등 약제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개선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핵심 전략을 꼽으라면 단연 선별 등재 방식, 약가 협상의 도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선별 등재 방식은 ‘가치(value)를 기초로 한 급여 결정’이라는 급여 결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의약품 공급·접근성 문제 표면화

약제비의 증가 외에도 지난 10년은 질병 치료에 꼭 필요한 의약품에 대한 공급, 접근성의 문제가 표면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2001년의 글리벡과 2008년의 푸제온, 모두 백혈병과 AIDS라는 중증의 질환에 사용되는 치료약으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진료에 꼭 필요한 약제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보험자)와 다국적 기업 간의 가격 협상이 난항에 부딪히면서 이들 약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전 세계적 가격 전략을 고수하려는 기업 측에서는 가격 인하안을 받아들이기보다 공급을 거부하는 편을 선택하였고 다만 일부 환자에 대한 무상 공급을 통해 도덕적 비난을 회피하려 하였다.

결국 두 경우 모두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시민 단체가 주축이 되어 강제 실시를 청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너무나 닮은꼴의 두 사례는 아직 진료상 필수 약제에 대한 공급 대책이 뚜렷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아직도 진행 중인 사안이라 하겠다.

양질의 의약품 사용도 이슈화

양질의 의약품 사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급여 정책과 연관하여 특히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하 생동성 시험)의 확대 실시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시험 기관의 자료 조작 사건은 생동성 시험의 신뢰도에 큰 상처를 남겼다. 시판 의약품에 대한 품질 보증은 여러 약가, 급여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전제가 되는 요건인 만큼 하루속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의약품 사용의 적정성 평가 또한 지난 10년간 시도되었던 주요 정책의 하나이다. 초기에는 항생제, 주사제 등 적정 사용 관리가 요구되는 일부 항목에 대한 사용 평가, 환류가 주된 내용이었으나 이후 그 대상을 점차 확대해 나가며 의약품 사용의 질적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약제 적정성 평가 외에도 처방 인센티브, 그리고 수가 협상 과정에서 결정된 약제비 총액 절감 목표, 모두 가격뿐 아니라 약제 사용 자체를 적정화함으로써 약제비 절감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종합하자면 과거 10년은 ‘약제비’가 주요한 정책 어젠다로 등장하였던 시기였으며, 이에 따라 약에 대한 급여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고, 세계 여러 국가들이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급여-가격 정책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의약품의 품질, 그리고 필수약제의 공급 보장, 접근성 측면에서의 과제도 동시에 제기된 시기였다.

향후 10년 ‘접근성 문제’ 부각

그렇다면 향후 10년은 어떠할 것인가? 우선 가치를 기반으로 한 급여 결정의 원칙은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치료적, 경제적 가치에 대한 과학적 평가의 방법론도 더욱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며 서로 다른 가치를 절충하는 원칙, 방법론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의 질적 사용 문제는 지난 10년보다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단순한 약제비 절감 차원이 아니라 의료의 질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촉진할 다양한 인센티브,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수 약제의 공급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일단 제한적 형태의 리펀드(refund, 정부나 보험자가 제약 기업이 요구하는 약가를 수용하는 대신 제약 기업은 정부가 원하는 약가와의 차액을 상환하는 것―편집자 주)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협상의 카드를 다양화한다는 효과는 있으나 궁극적 공급 대책은 되지 못한다. 다양한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0년이 ‘비용’이 논의의 출발점이 된 시기였다면 향후 10년은 비용 문제와 더불어 질, 접근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기가 되리라 본다

배은영(상지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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