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4]1969년 그해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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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4]1969년 그해에 무슨 일이?
  • 전민용
  • 승인 2010.03.3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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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작가 정신

 

대학시절 무라까미 류의 ‘코인로커베이비즈’를 읽었던 건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일본말 류나 내 이름의 용이나 한자로는 같은 龍(용용)자 이다.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차역 유료보관함에 버려진 아이들이 커서 일본을 뒤집어엎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이야기 전개가 상식을 뛰어넘는 독특함이 있었다. 그 후로 무라까미 류의 책이라면 특히 할인해서 파는 책이라면 별 고민 없이 구입하곤 했다.

얼마 전 모 인터넷서점의 반값 할인행사에서 류의 ‘69’을 구입해서 읽었다. 제목을 보고 뭔가 야한 소설을 기대하신다면 꿈 깨시라.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다. 그야말로 착하고 이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이렇게 즐거운 소설은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 ‘69', 무라카미 류, 작가 정신
하기야 무라까미 류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오해를 할 만하다. 그에게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선사한 첫 작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마약, 혼음, 폭력 등 반사회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판매금지 되었다. ‘미소 수프’같은 작품은 잔인한 연쇄 살인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69’ 제목을 보고 작가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하고 아마 그도 그 점을 노리고 작명한 것 같기도 하다.

‘69’은 1969년 한 해 동안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쓴 작품이다. 거의 그의 자전적인 내용이다. 그는 나가사끼현 사세보시에서 태어났는데 그 근처에는 미군의 해군 기지가 있었다. 베트남전쟁, 유럽의 68혁명과 맞물리면서 일본도 반전평화운동이 들끓고 있었고, 미군기지 주변에서는 반전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반전운동, 종속적 미일관계, 억압적 학교 문화, 전공투 등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작가 자신이 고3 때 학교 건물 옥상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데모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부분이 의사를 꿈꾸는 명문고등학교에서 뭔가 다른, 즐겁고 개성적인 삶을 추구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낭만적이고 소심했던 사랑, 재기발랄했던 축제, 젊음의 에너지, 권위에 대한 저항 등을 그렸다. 그는 말한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두들겨 패보아야 손해보는 것은 우리다. 유일한 복수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유일한 복수방법이라고 한 즐겁게 살기를 하고 있는가? 요즘처럼 엄중한 시국일수록 무겁고 비장하고 결의에 찬 분위기보다 발랄하고, 가볍고, 치고 빠지는 즐거운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위와 음악과 놀이와 토론이 어우러지고 막히면 돌아가고, 잡으면 잡혀갔던 촛불문화가 그런 종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는 이 소설을 1969년 무렵에 태어난 세대가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의 세대이다. 이 나이는 인생의 중간이다. 지나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기에 적당한 나이이다.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페르조나)에 충실하게 산 성실한 사람일수록 진지하게 삶을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69’를 통해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의 삶의 방식을 간접 경험해 보기 바란다. 그의 어머니는 일제시대 때 조선에서 고등학생까지 살았던 분이다. 그 영향인지 그도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제목을 보고 실망한 분들을 위해 보너스 정보를 드린다면, 지난 1년 사이에 읽었던 가장 질펀했던 책은 역설적이게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렌커, 웅진이다. 당근 중국에서는 완전 출판 금지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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